봄밤의 모든 것(1) -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by 세잇

상실의 토양 위에 돋아난 아주 환한 온기

사랑은 필연적으로 상실을 예비하지만 그 상실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온기가 머물렀던 자리의 넓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백수린의 소설집 『봄밤의 모든 것』, 그중에서도 문을 여는 첫 작품 「아주 환한 날들」은 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한 여성이 예기치 못한 존재를 통해 굳건했던 자신의 고립을 허물고 다시금 사랑의 고통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백수린은 한국 문학계에서 '빛의 소설가'라 불린다. 그의 문장은 단정하고 우아하지만 그 이면에는 삶의 비루함과 내면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강인함이 서려 있다. 작가는 주로 관계의 어긋남,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흔적,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요동치는 인간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번 소설집 역시 겨울의 한복판 같은 상실을 다루고 있으나, 결국은 '봄이 온다고 믿기로 선택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립이라는 자부심, 그 단단한 껍질

주인공은 일흔이 넘은 여성이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 혼자 사는 삶을 타인들은 동정하지만, 그녀에게 홀로 있음은 능동적인 선택이자 자부심의 근거다. 변기를 고치고 전등을 가는 일을 스스로 해내며 일상의 질서를 완벽히 통제하는 그녀의 모습은 얼핏 견고해 보인다. 하지만 그 견고함은 사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겹겹이 두른 방어막에 가깝다.


딸과의 관계는 서늘하다. 과거에 생계를 위해 치열하게 과일 장사를 하느라 딸의 운동회에 가지 못했고, 고단함에 지쳐 아이를 밀쳐냈던 기억들은 이제 '존댓말'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닫았고, 그 결과 고요하지만 메마른 평화를 얻었다.



앵무새, 무용한 존재가 가져온 유용한 균열

이 정체된 일상에 사위가 맡기고 간 앵무새 한 마리가 날아든다. 그녀에게 새는 시끄럽고 거추장스러운,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존재였다. "아, 시끄러워." 이 한마디는 타인의 침범을 거부하는 그녀의 실존적 선언과 같다.


그러나 생명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힘을 가졌다. 손바닥 옴폭한 곳에 머리를 비벼오는 앵무새의 놀랄 만큼 부드러운 감촉은 잊고 지냈던 감각을 깨운다. 앵무새는 그녀에게 아무런 이득을 주지 않지만, 그녀의 곁에 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체온을 갈구한다. 효율과 생존의 논리로만 점철되었던 삶에 무용한 사랑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의 공포와 황홀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글쓰기 수업의 교실에서 강사가 던진 이 첫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다. 그녀에게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그 안에는 딸에 대한 미안함, 죽은 첫사랑 춘식이 삼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스스로를 돌보느라 외면했던 수많은 상실의 흔적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앵무새가 떠난 뒤 비로소 깨닫는다. 새가 앉아 있다가 날아간 마룻바닥이 "새가 닿았던 자리만큼의 크기로 따스"했다는 사실을. 그 조그만 온기를 느끼는 순간 자신이 여전히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임을,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다시 고통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받아들인다.



사랑의 엔트로피와 상실의 미학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 상실에 익숙해질 것이라 착각한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만큼 단단해지거나, 혹은 무뎌질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백수린에게 상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주인공의 삶을 통해 사랑의 비효율성을 수용하는 용기를 깨닫는다. 사랑은 결국 잃어버릴 것을 전제로 하는 행위다. 앵무새는 떠날 것이고, 자식은 멀어지며, 육체는 쇠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가 머물렀던 자리에 남은 한 뼘의 온기를 기억하며 "앵무새가 가버렸다"고 쓸 수 있는 힘,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삶의 아주 환한 날들은 고통이 없는 날이 아니다. 오히려 상실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타자에게 내 손바닥의 가장 부드러운 자리를 내어주는 순간들이다. 주인공이 느꼈던 앵무새의 발바닥 온기는, 우리가 타인과 맺는 모든 관계의 본질이다. 그것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온기를 느껴본 사람만이 겨울의 한복판에서도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


묻고 싶다. 당신이 최근에 느꼈던 가장 무용하고도 따스했던 감촉은 무엇이었는가. 그 온기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만져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상실을 두려워하기보다 내 삶에 온기가 머물 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더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