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냄새 하나에
읽은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을 길어 올리고, 그 문장에 대한 저만의 해석과 책의 내용,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작 에세이 '나와 당신의 문장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열네 번째 이야기로, 주드 스튜어트의 『코끝의 언어』를 통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후각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해 보려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좋은 문장이 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코끝이 하는 일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향으로 세상을 감각하게 하고, 잊었던 기억을 소환하며, 때로는 위험을 경고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주는 것. 문장이 그러하듯, 냄새 또한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감각의 미학을 탐험하는 저널리스트, 주드 스튜어트
『코끝의 언어』의 저자인 주드 스튜어트는 『슬레이트』, 『애틀랜틱』 등 유수의 매체에 디자인과 문화에 대한 글을 기고해 온 저널리스트입니다. 오랫동안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며 직업적인 시야를 넓혀왔던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후각’이라는 감각에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후각으로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하고요.
작가는 이 책을 빌어 비 오는 날의 흙냄새, 갓난아기 냄새, 달콤한 바닐라, 시원한 바다 내음 등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온갖 냄새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과 숨겨진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맡을 수 없는 냄새부터 예전에는 없다가 새로이 생겨난 향에 대한 낯설고 참신한 지식까지, 냄새라는 작은 주제가 과학, 역사, 지리, 예술을 넘나들며 거대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 자신의 감각적인 경험과 최신 논문, 전문가 자문까지 거친 꼼꼼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는 냄새의 놀라운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시각이나 청각을 가장 중요한 감각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후각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이고 즉각적이며 순수한 감각이라고 말합니다. 눈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을 코는 냄새로 알아채고, 이 절대적인 판단의 수단이 위험, 음식, 쾌락 등 삶을 형성하는 모든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멀쩡해 보이는 음식이라도 악취가 나면 먹지 않고,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이어도 낯설고 불쾌한 냄새가 나면 발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후각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하고, 삶의 감각을 뒤흔드는 경이로운 코끝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냄새, 그 숨겨진 언어의 비밀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냄새가 가진 이중적인 면모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무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사실은 완벽하게 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랬습니다.
‘무향’ 제품은 꾸며진 무대의 허구와 같다. 자극적이거나 나쁜 냄새를 제거한 뒤 희미하지만 기분 좋은 냄새를 입혀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향이라고 믿었던 제품들 속에서조차 은은하게 조작된 향을 맡고 있었던 것이죠. 이는 우리가 얼마나 냄새에 대해 무지하고, 또 얼마나 많은 냄새들이 우리의 인지 아래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완벽한 무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에는 미세하게나마 그 고유의 향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또한 자연 속 냄새들이 가진 놀라운 비밀에도 많은 관심이 갔는데요. 비로 인해 흙에서 피어나는 독특하고 기분 좋은 냄새, ‘페트리코’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식물이 토양에 분비하는 지방산(주로 팔미트산과 스테아르산)이 비가 오는 동안 더 농축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뭄이 끝난 뒤 종종 식물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사벨과 토머스는 혹시 마른땅의 비 냄새, 즉 페트리코가 천연의 비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페트리코는 주변 다른 식물의 성장을 지방산으로 지연시켜 물이 귀해질 때 경쟁에서 이기려는 식물의 방어책이었다. 다시 말해 식물이 분비한 화학물질의 축적물이 우리가 맡는 바로 그 비 냄새의 정체다.
우리가 비 오기 전이나 이후의 상쾌함으로만 알았던 냄새(페트리코)가 사실은 식물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자연의 향기 속에도 이처럼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처럼 냄새는 단순히 감각적인 것을 넘어 생존과 경쟁, 그리고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식물들이 냄새를 통해 서로 소통한다는 이야기도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요.
대부분의 식물이 그렇듯이, 풀잎은 냄새를 수단으로 서로 소통한다. 꽃이 피는 식물은 자신의 향기로 꽃가루받이를 해줄 매개자를 유혹하고, 과실수는 냄새로 자신의 씨를 퍼뜨려줄 동물을 부른다. 식물은 자기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동물과 달리 식물은 한 장소에 뿌리를 박고 살아간다. 천적이 다가와도 도망칠 수가 없다. 그래서 냄새로 천적을 피하고 서로에게 경고를 보내준다.
갓 깎은 잔디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냄새가 사실은 식물들이 공격을 받았을 때 다른 식물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라는 사실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냄새를 통해 천적을 피하고 서로에게 경고를 보낸다는 점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연의 지혜를 엿보는 듯했습니다. 냄새는 자연의 숨겨진 언어이며, 우리는 그 언어를 통해 자연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냄새, 삶의 이면을 드러내다
냄새는 단순히 기분 좋은 향기만을 지칭하진 않죠. 때로는 위험을 알리는 경고가 되기도 합니다. 작가는 청산가리와 같은 독극물이 가진 냄새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청산가리는 동물의 세포가 음식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생체역학적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세포가 산소를 쓰지 못하게 막는다. 청산가리에 의한 죽음은 기본적으로 세포 수준에서의 질식사다.... 사과와 복숭아의 경우에는 딱딱한 씨 안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다. 우리가 먹지 않고 버리는 부분이다. 다른 식물의 경우 찧거나 빻아서 물에 헹궈버리면 청산가리가 씻겨 나간다.
살인을 다룬 여러 소설을 살펴보면 희생자가 비터 아몬드 냄새를 느끼면서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른 독극물들은 나중에야, 그러니까 살육의 냄새를 한참 풍긴 후에야 자취를 드러낸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쓰였던 수포작용제 루이사이트에서는 제라늄 향이 매우 강하게 난다. 또 다른 수포작용제 디포스겐에서는 아니스 냄새가 난다. 또 어떤 신경작용제는 과숙된 또는 혹은 썩은 과일 냄새가 난다.
달콤한 아몬드 향이나 꽃 향기가 치명적인 독극물의 냄새일 수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면서도, 냄새가 가진 강력한 이중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운 향기 속에 숨겨진 위험, 그리고 그 위험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인간의 무력함이 대비되며, 냄새가 우리 삶의 얼마나 깊은 곳까지 관여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반대로 식욕을 돋우는 냄새의 비밀도 흥미로웠습니다. 고기를 굽거나 빵을 구울 때 나는 고소한 냄새의 정체인 '마이야르 반응'에 대한 설명이 그랬습니다.
식품이 가열되면, 식품에 함유되어 있던 당분이 분해되어 아미노산과 반응한다. 이때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 화합물이 많이 방출되며 특별한 풍미가 나타난다. 마이야르 반응은 바로 이 일련의 화학반응을 칭한다. 방출되는 화합물은 대부분이 탄화수소와 알데하이드다. 마이야르 반응은 끓이거나 볶거나 굽는 동안 갈색으로 변하는 모든 음식이 왜 그렇게 유혹적인 냄새를 풍기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맡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복잡한 화학반응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냄새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감각이며,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뇌가 모든 냄새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뇌는 동시에 네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냄새를 처리하지 못하고 곧 그 냄새에 취해버린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향수 매장에서 풍기는 복잡 다단함이나 향신료 가득한 시장에서 금세 코가 마비되는 듯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후각은 놀랍도록 예민하지만, 동시에 한계 또한 명확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는 우리가 냄새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를 설명해 주는 듯했습니다.
코끝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감각하다
『코끝의 언어』를 읽는 내내 우리가 얼마나 시각 중심적인 삶을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에만 집중하며 코끝의 언어를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냄새가 가진 놀라운 힘을 일깨워줍니다. 인간의 기억은 냄새를 띠고 있고, 냄새가 없는 체험은 대체로 쉽게 잊힌다는 말처럼, 후각은 우리의 기억과 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프루스트의 소설 속 홍차와 마들렌 향미가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듯, 냄새는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특정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강력한 매개체가 됩니다.
이 책은 단순히 냄새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냄새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갓난아기의 체취, 오래된 책 냄새 등 일상 속의 냄새는 물론 유령의 냄새나 성자의 향기 등 신비로운 향까지, 그 냄새가 나는 이유를 화학적으로 분석하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비밀을 드러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매일 지나치는 수많은 향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코끝의 언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코끝이 보내는 언어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하고요.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판단하려 하지만, 사실 코끝은 그 어떤 감각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본능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던 것이죠.
이 책을 통해 삶에서의 잔잔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냄새 하나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냄새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냄새는 우리에게 과거를 상기시키고, 현재의 위험을 알리며, 미래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장들을 만나고, 그 문장들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냄새 또한 우리 삶의 중요한 문장들 인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하는 코끝의 언어들이겠지요.
이 책을 통해 여러분도 코끝의 언어를 익히고, 그 언어를 통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감각하는 경험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어쩌면 바로 우리의 코끝에서 시작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