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솔 Feb 11. 2020

바간, 그거 진짜 금팔찌야?

노노 온리 아웃사이드 골드


미얀마의 올드바간에는 냥우마켓이 있다. 모든 게 관광객에게 초점이 맞춰진 관광객 천지삐까리 바간 중심과 달리, 바간 끝자락에 위치한 냥우마켓은 현지인들이 바글바글 모인 시장이다. 나는 미얀마 스타일의 옷도 사고 현지인들의 삶도 엿볼 요량으로 이바이크 속력을 높였다.


흙먼지를 함빡 마시며 도착한 냥우마켓은 로컬 로컬 노래를 부르며 현지인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어 하는 내게도 조금 버거웠던 마켓이었다. 물론 청결이나 냄새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관광객이 너무 없는 나머지 유일한 외국인인 우릴 봉으로 잡으려는 상인들로 가득했다. 혹은 ‘너 따위 여기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가버려!’ 하는 눈빛을 쏘아대는 상인들.



예쁜 코끼리 바지를 골랐다. 500짯만 깎아달라는 흥정이 통했다.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고 나니 기념품에 눈이 갔다. 금색 파고다가 새겨진 마그넷까지 사고 나니, 이번엔 작은 부처상을 파는 상점이 보였다. 불교를 믿는 엄마를 가진 딸로서 발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엄마 또래쯤 된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희끗희끗 센 머리를 하나로 단정하게 묶은 상인에게 손톱만 한 옥색 코끼리 상 가격을 물어봤다. 3천 짯이라고 했다. 절대 상인이 제시한 금액으로 바로 사버리면 안 된다. 호갱 방지법 1조 1항 시행.


‘너무 비싸다, 깎아 달라.’


아주머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맘에 쏙 들진 않았기 때문에 땡큐하고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2000짯에 해줄게’


역시 지갑이 헤픈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놓칠 리 없다. 관광객이 없으니 이 가격에라도 팔아야지 하는 착잡함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살만하겠다 싶어 하나 달라고 했다.

상인은 불상을 얇고 바스락거리는 동남아 특유의 비닐봉지에 넣어줬고, 나는 돈을 건네며 봉투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그때, 상인이 문득 내 손목을 가리키며 예상 밖의 질문을 던졌다.


골드?
리얼 골드?


문제의 팔찌


그의 손가락은 내가 차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던 금팔찌를 가리키고 있었다. 설마 날 금덩어리를 팔에 차고 다니는 부자로 오해한 건가 싶어 황급히 소리쳤다.


‘노노 온리 아웃사이드 골드’


금이 동그란 팔찌 알을 감싸고 있다는 손짓도 함께했다. 그러자 상인은 부러움의 눈빛으로 내 도금 팔찌를 보며 웃어주었다.

얼마 하지 않는 팔찌지만, 그리고 그는 불상에 금박을 붙이는 다른 미얀마인처럼 금을 정말 좋아할 테지만. 평생 이런 팔찌 하나 가져볼 수 있을까? 그 눈빛은 우리가 가게를 떠날 때까지 죽 이어졌다.



상인의 부러운 눈빛이 종일 생각났다. 막상 나는 이 팔찌의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엄마께 생일선물로 받은 소중한 팔찌지만, 이 팔찌가 다른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을 카피한 제품이란 걸 알게 된 후부터 왠지 부끄러워진 것이다. 그 후부터 이 팔찌는 내게 브랜드도 아니고, 보석이 박힌 것도 아니고, 금으로 겉만 칠한 ‘그냥 팔찌’가 되었다.


물질적 가치의 무게를 재느라 ‘22번째 생일선물’이란 상징적 의미를 잊어버린 채, 내겐 가치를 잃은 팔찌였다.

소중히 여기던 물건이 물질적 가치가 낮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실망하는 변덕은 참 웃기다.  사실 한국에서 이런 일은 참 흔했다. 잘 어울린다고 좋아했던 맨투맨은 유행이 지났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옷장 구석에 처박히게 되었다.



내게 가치 있으면 되지,
왜 그 가치를 남의 잣대에 
맞추려고 하는 걸까.



물질적 가치를 묻는 상인 덕분에 나는 내게 팔찌가 갖는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정 소중한 것을 뒷전에 둔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했다. 

이제 나의 가치가 남의 잣대에 흔들릴 때마다 팔찌를 보며 다잡을 것을 약속한다. 


브랜드건, 도금이건, 플라스틱이건, 어떠하랴.

나를 생각하며 팔찌를 고른 엄마의 사랑이면 어느 것이든 다 똑같을 텐데.






솔향을 머금은 글과 사진을 담습니다.

Copyright  솔닢 All right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바간, '호의'를 둘리 취급한 죄를 받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