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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Feb 09. 2020

바간, '호의'를 둘리 취급한 죄를 받다.

소유와 침범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엉덩이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니.

버릇이 된 의심하기

어떤 사람이 나에게 하는 행동의 ‘본심’이 무엇일까 파악하는 것. 즉 의심하기.

23년 간 인생이란 걸 살면서 배운 것은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여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호의라는 포장을 벗겨보면 쭈글쭈글 말라비틀어진 요구가 들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자주 의심했으며, 본심이 나왔을 때 그럴 줄 알았다며 실망했다.


익숙한 장소에서도 끊이질 않았던 나의 의심하기는 여행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관광지에 사는 현지인들의 생계 수단인 ‘외국인 관광객’ 신분이 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 긴장하게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야말로 등 처먹기 딱 좋은 대상인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여행에 출발하기 전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를 되뇌면서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의 본심을 의심해댔다.


하지만 적중률 99%를 자랑하던 나의 ‘의심하기’는 미얀마에서 여러 번 뒤통수를 맞았다. 미얀마 사람들은 내게 호의의 본심이 ‘호의’ 그 자체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타나카

바간에서의 첫째 날, 동생과 이바이크를 빌리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가까운 곳에서 대여점을 발견했지만, 주인이 없는 상태.


어떡하나 기웃대고 있는데 맞은편 가정집에서 아주머니가 나왔다. 바디랭귀지로 이바이크 대여를 원한다고 말하자 대여점 주인과 전화를 연결해주었다. 1대당 4,000짯에 흥정을 한 뒤, 주인을 기다리며 아주머니 집 앞 평상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아주머니의 볼에 한 타나카가 눈에 띄었다. 미얀마의 천연 자외선 차단제인 타나카를 꼭 발라보고 싶었던 나는 볼을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는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집에 들어가더니 타나카 도구를 가져오셨다.

타나카를 빻는 판과 절구를 보고 순간 당황했다.

'발라줘 놓고 돈을 요구하면 어떡하지?'



볼을 아주머니의 손가락에 맡긴 채 걱정되는 맘으로 아주머니의 소지품을 주욱 살펴보았다. 아뿔싸. 지갑처럼 생긴 파우치를 들고 나온 것이다. 직감적으로 돈을 달라고 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타나카 발림을 당하고 있는 동생에게 작게 외쳤다.

‘이거 백퍼 돈 달라고 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이렇게 훈훈한 순간을 돈으로 마무리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동생은 별생각이 없이 거울을 요리조리 보며 ‘굿굿! 땡큐’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마치 계산대에 서서 '누가 계산해야 하나' 긴장한 사람처럼 경직된 입꼬리를 올리며 쩨주바(감사합니다)를 말했다. 아주머니는 타나카를 한 우리가 귀엽다는 듯 웃으시며 도구를 갖다 놓으러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뿐이었다. 타나카를 발라주던 아주머니의 본심은 호의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제서야 타나카가 주는 시원한 감촉이 느껴졌다.




주차와 엉덩이

과연 외국인에게 외상을 줄 수 있는 식당이 몇이나 될까? 내가 식당 주인이라면 처음 본 외국인에게 절대 외상을 주지 않을 것이다.


타나카를 바른 뒤 이바이크를 빌린 우리는 택시 기사가 추천해준 맛집, 블랙로즈 레스토랑으로 갔다. 이름이 맘에 든다는 이유였다.


운전이 서툴러 근처 공터에 대충 이바이크를 세우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장님이 나와 편한 곳에 앉으라고 하며 '저기 세운 바이크가 너희 바이크냐'고 물었다.



순간 아차 했다.

‘내가 다른 식당 주차공간에 주차한 모양이구나.’

당연히 식당마다 주차 구역이 있을 텐데,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당장 바이크를 이리로 가져오기 위해 키를 챙겨 나가는데 사장님이 하는 말.


‘저기에 주차하면 시트가 너무 뜨거워져. 여기 그늘에다가 대.’


상투적 표현이지만 정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소유와 침범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엉덩이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니. 물질보다 사람이 앞선 호의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얼음


바간에서의 첫 끼였던 우리는 요리 2개를 라지 사이즈로 시켰다. 수박주스와 콜라도 하나씩 주문했다.


사장님은 콜라를 따라주며 혹시 얼음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동남아에선 더러운 얼음을 먹고 식중독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하라고 들은 우리였지만, 너무 더운 날씨였기 때문에 마다할 수 없었다. 얼결에 yes를 외쳐버렸다.



부엌에서 얼음을 몇 개 챙겨서 나올 거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사장님은 갑자기 트럭 키를 가지고 나오셨다. 얼음을 사러 마트를 다녀온다는 것이었다. '얼음 값을 청구할 생각인가?'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렇게라도 얼음 콜라가 먹고 싶었기 때문에 사장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의기양양하게 얼음을 잔뜩 사 온 사장님은 우리 콜라 컵에 얼음을 넣어주신 후 옆 테이블 서양인 커플에게도 얼음이 필요하냐 물었다.

그들은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고 있었지만, 사장님의 호의를 거절했다. 정말 얼음이 필요 없었을 수도 있고, 미얀마 얼음의 청결이 걱정돼서일 수도 있고, 청구할 얼음 값이 걱정됐을 수도 있겠다.


외상


사장님의 호의만큼이나 음식은 맛있었다. 전날 슬리핑 버스를 타느라 지치고 허기졌던 우리는 밥 두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그렇게 우리에게 청구된 값은 16,500짯. 얼음 값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지갑에 15,000짯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최저시급이 600짯인 나라에서 1,500짯을 외상으로 하고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착했던 사장님이 갑자기 길길이 날뛰면서 화를 내면 어떡하지, 설거지라도 해야 하나.'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일단 솔직하게 고백하기 위해 용기를 내 입술에 침을 바르고 사장님을 불렀다. 불쌍한 눈을 장착하고 '우리가 지금 1,500짯이 부족한데 한 명만 환전소에 갔다 와서 내도 되겠냐'라고 물었다.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사장님은 대답은 뜻밖이었다.

괜찮으니까 오늘이나 내일 시간 날 때 들러서 주라고, 별일 아니란 듯 웃으며 15,000짯을 가져갔다.


사장님은 외국인 관광객을 뭘 보고 믿은 것일까?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거지?

만약 한국에서 똑같은 일이 있었다면 나는 근처 은행에 가서 천 원을 바로 뽑아와야 했을 것이다.


식당을 나오면서도 동생과 나는 어리둥절했다. 사장님이 우리를 그냥 보내준 것에 대한 쇼크 때문이었다.




하루 만에 타나카에 이어 이런 친절 4단콤보를 겪게 된 우리는 많이 놀랐다.

‘미얀마 사람들은 정말 나를 부끄럽게 하는구나.’

이때 처음 느꼈다.

이 부끄러움이란 건, 겉으로 티를 낼 순 없지만 속에서 일렁이는 감정 같은 것이었다.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삶을 통째로 바꾸는 감정이었다.


처음엔 

미얀마사람들은 어찌 이렇게 착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질문은 점점

‘왜 나는 호의를 믿지 않았을까?‘ 바뀌었다.


호의를 의심하는 행위는 나를 괴롭힐 뿐이다. 설령 그 안에 요구가 들어있더라도 그가 베푼 호의가 나에게 선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저 호의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은 여유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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