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파리에서 출산을 하게 되었다.
결혼도 그렇고 프랑스로의 이주도 그렇고 임신도 그렇고, 무언가 철저하게 인생의 다음 단계를 대비하고 계획하며 사는 기질의 사람은 아니라, 그저 '어쩌다보니'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임신을 했을 즈음 우린 유학생 부부였고, 생각보다 팍팍한 도시-파리 생활에 지쳐서 서로를 원망하고 있었고, 난 사서 고생을 자처한 것에 대한 일말의 자책과 우울감에 빠져 있을때였다. 아마도 추운 베를린 여행에 함께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태아, 그렇게 선물처럼 친구가 우리집에 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건을 하늘로부터 온 응원이라 여겼다. 신기하게도 모든 한(?) 같은 감정들이 스르르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동안 친구를 기다리고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워낙 한국 매스컴에서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프랑스의 육아 시스템을 경험해보면 '휴- 정말 ---해서 다행이다' 를 되뇌이게 된다. 아무 걱정없이 친구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할 때에도 양육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지난 3년간 친구를 키우면서 느낀 일종의 '안전함' 때문이라도 앞으로 낼 세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 파리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우리같은 상황의 사람들에겐 수많은 좋은 점이 있다. 우리같은 상황이라한다면, 공부와 취업을 위해 대도시로 상경해 도움을 줄 수있는 가족들은 멀리 있고 늘 바쁘게 일상을살아가는, 육아 도움도 물려받은 재산도 없는 일반적인 30대의 부부들 말이다.
몇년 전, 한국에 대유행했던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책이 있었다. 미국인 기자 엄마가 프랑스 남자랑 결혼해 '미국'인 입장에서 평가한 '프랑스 육아'에 관한 책이었다. 한국에 사는 친구가 프랑스에 사는 나에게 추천했을 정도. 프랑스에 사는 한국 엄마들이 읽으며 따라한다는 이야기도 들렸을 정도. 그러다가 그냥 포기한다는 그 책 말이다. 당연히 책을 집필하면서 단순화 된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려져있지만, 커뮤니티의 문화가 아이들의 태도에 영향을 준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에는 너무나 동의가 된다.
즉, 문화로서의 육아.
그리고 타문화에서 아이를 키우는 나에겐, 곧 나의 정체성 혹은 타자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이슈이다. 프랑스에 살기 때문에 한국처럼 키울 수 없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프랑스 아이처럼도 키울 수 없는. 그리하여 나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친구 키우기 이야기를 정리해 두어야겠다고 계획해본다.
주로 친구를 키우면서 경험한 프랑스 육아 시스템에 관한 글.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관계와 정체성 문제에 관한 글. 부모로서 타문화에 적응하기에 관한 글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