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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Mar 04. 2020

백투더퓨처, 3020년에 보는 2020년의 미술관

다니엘 아샴 <Paris, 3020>

뉴욕에서 태어나 활동하는 다니엘 아샴(Daniel Asham,1980)은 서울 페로탕 갤러리의 2017년 개인전을 통해서도 한국에 소개된 바 있는 소위 미술계의 트랜드 세터 작가이다. 영화와 건축, 패션에 이르기까지 이미 다양한 장르와의 활발한 협업을 이룰 뿐 아니라, '시간' '고고학' '연금술'이라는 연속되는 주제를 갖고 반복과 변주를 이룬다. 다니엘 아샴의 새로운 시리즈를 소개하는 전시가 파리 페로탕 갤러리에서 2020년 1월 11일부터 3월 21일까지 열린다. 아샴은 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프랑스국립 미술관 협회의 조각 주형 작업실을 제공받았고, 이곳에서 새롭게 제작된 서른 점 정도의 조각과 데생 작품으로 <Paris 3020>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다. 필자가 방문한 토요일 오후는 마레의 갤러리들이 북적거리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아샴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페로당 전시장 전경


학창시절 <미술사 개론>같은 교양과목 시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미술사의 마스터 피스들이 있다. 그 중 빠지지 않는 것이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이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조각사는 그리스 조각의 그늘 안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성도에 있어서나 예술적인 가치에 있어서 조각이 가장 뛰어났던 시대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루브르에는 <밀로의 비너스>를 보려는 사람들이, 바티칸에는 미켈란젤로의 <모세>를 보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약 1000년 후 쯤에 우리가 <밀로의 비너스>를 보고 있다면 어떨까? 그녀는 여전히 현재의 단단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건재할까? 사람들은 한 1000년 쯤 뒤에도 비너스를 보며 탄성을 내지를까?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맥북은 1000년 후에 고대의 유물이 되어 있진 않을까? 이런 누구나 해볼 법한 상상이 다니엘 아샴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매우 직접적인 해답을 보여주는 전시가 바로 <paris, 3020>이다.


전시를 이루는 조각들은 누구나 한번에 알아볼 법 한, 미술책에서 봤던 고전을 대표하는 흉상과 전신상들이다. 첫번째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 좌상부터 <밀로의 비너스>는 원래의 단단함을 보여주기 위해 석고틀을 이용해 시멘트로 주조하고 원작의 형태를 그래도 재현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게 있다. 누군가 일부러 훼손해버린 듯 한 조각의 상처들이다. 모세의 무릎과 이마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돌이 깨져있다. 비너스의 팔은 이전보다 더 줄어들었다. 아마 자연상태에서 그 조각들이 전시되었다면 만났을 만한 바람, 화산재, 다른 광물들과의 부딪힘, 지진등의 흔적이 이렇게 표현된 것이다.


이에 맞춰 페로탕의 전시 구성도 마치 루브르의 그리스 조각실을 걷는 듯한 전통적인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구멍나고 시간에 의해 '훼손된' 조각들을 미술사의 맥락처럼 그리스-로마-르네상스의 순서로 볼 수 없다. 이제 이 조각들에 대한 반가움과 탄성보다는 낯설고 기괴한 느낌이 자리잡는다. 우리가 있는 곳은 더이상 미술 책 속이 아니고, 이 조각들이 있는 곳도 고대의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 아니다. 존엄과 신성을 상징하는 고전 조각의 상징들이 흠집난 순간을 발견할 뿐이다.


두번째 전시실에서도 시리즈는 이어진다. 메소포타미아 신전의 벽들, 프리즈 부분을 조각한 벽, 부서져가는 조각을 지탱하는 광물 조각 틀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전시는 조각 뿐 아니라 작품 구상을 위한 스케치도 소개하고 있다 .


아샴은 지난 시리즈들에서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기계문명의 생산품에 시간에 흐름에 따른 침식작용이 더해진 시간의 산물로 만들어 내곤했다. 애플의 PC라거나, 유선전호기, 미키 마우스, 라이카 의 카메라등은 그가 포여주고자 했던 허구적인 고고학을 반영한다. 과학과 학문으로서의 고고학이 아닌 과거에 허구성을 더하는 고고학은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이어주는 역학을 한다. 과거는 늘 현재의 해석에 의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유명한 미술관에서나 감상할 수 있는 그리고 누구나 마스터피스로 알고 있는 그 클래식한 조각들은 이 예술가에 의해서 그 조각이 만들어진 과거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지금의 관객이 보고 있는 현재의 '시간'으로 되살아난다.


가장 단단한 매체로 가장 유동적인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 하는 방식,

미술관의 고전 조각실을 걷는 것 같은 익숙함과 부식된 조각에서 오는 낯섦이 공존하는 공간을 창조한 흥미로운 전시였다.


https://www.perrotin.com/exhibitions/daniel_arsham-paris-3020/7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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