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 잔 클로드 <파리 Paris!>
지난 5월 31일 유명을 달리한 크리스토 쟈바체프(Christo Vladimirov Javacheffe, 1935-2020)의 <파리!> 전시가 퐁피두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주로 공공장소나 도시의 상징적인 공간이나 건축물들을 천으로 포장하거나 둘러쌓아 하나의 미술관으로 바꾸어버리는 크리스토의 작업은 주로 대지미술로 분류되지만 막상 예술가 자신은 하나의 규정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80년대 초 마이애미의 버려진 섬들을 주목하게 만든 <surrounded Island(1980-1983)>, 미국과 일본에 설치한 <The Umbrellas (1984-1991)>,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천으로 포장한 1995년의 작업을 비롯해 2000년대 센트럴파크(2005), 이탈리아의 섬(2014-2016)등 전 세계를 망라하는 거대한 궤적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외부에 전시된 작품의 최대 전시기간은 2주. 기획과 사전조사, 현지 지역사회의 허가 과정만 해도 몇 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허무하게 짧은 기간이다. 하지만 그는 순간적인 공간의 인상을 바꾸고 싶어 하며, 자신의 작품이 '성지화'되는 것을 거부한다.
타인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로서의 경제적 독립이 중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업에 필요한 돈은 건축 작업에 참여하거나 스케치 작품 판매 수익을 통해 직접 벌어 전시를 연다. 크리스토의 아내인 쟌-클로드(1935-2009)는 그의 협업자이자 지원자, 그리고 그의 예술적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투자자이자 그의 회화작품을 갤러리에 판매하는 역할을 했다. 이번 퐁피두 전시 역시 혼자만의 이름이 아닌 "크리스토, 잔-클로드"라고 명명하는 것이 당연한 이유이다. 완벽한 콜라보란 이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퐁피두 전시는 올해 열리기로 되어 있었던 <개선문> 프로젝트와 맞물려 1985년의 <퐁뇌프> 프로젝트를 조망하는 기획이다. <개선문 포장> 프로젝트는 코로나 19와 함께 내년으로 미루어졌고, 퐁피두의 전시도 6월이 되어서야 관객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사이 뉴욕의 작업실에서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크리스토는 아쉽게도 전시 오픈에 함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번째 파트는 <퐁뇌프 프로젝트> 이전까지 크리스토가 했던 물질성 탐구와 패키징 작업, 공간 탐구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 프로젝트에 안착하기 전까지 그가 완성해가는 매체 발굴의 과정들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대지와 매체의 질감과 유동성을 탐구하던 다음과 같은 초기작들,
본격적으로 포장기술을 연마하던 시절의 작품들, 일상의 사소한 오브제들을 이용하던 다다의 영향이 보인다.
천과 포장지 조명, 공간의 구획 나누기 등을 실험하던 시절의 작업들.
이 첫 번째 파트를 통해 크리스토의 '대지미술'작업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게 된 궤적을 이해할 수 있다.
전시장의 중반에 이르면 <퐁뇌프 프로젝트>를 기록한 영상 작업을 볼 수 있다. 영상은 준비과정부터 1985년 9월 황금빛 포장지로 2주간 온통 뒤덮인 퐁뇌프와 지나가던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다큐 형식으로 담았다. 어쩌면 이 영상자료가 그들 스스로는 설명하지 않았던 크리스토, 쟌-클로드의 예술세계를 이해시키는 중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통해 논쟁과 토론의 장을 만들고 익숙한 공간을 '다르게 보도록'의도하고, 그냥 걸어보고 경험해보도록 해준다.
"이게 예술작품이라고? 그냥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나 하는 게 낫겠어."지나가던 할머니가 던진 한마디에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이 할머니와 비슷한 의문을 가졌더라도, 스펙터클한 이 장관 앞에서는 눈이 먼저 반응한다. 포장된 퐁뇌프 위로 꽉 찬 시민들은 레드카펫을 걷듯, 퐁뇌프의 딱딱한 돌이 아닌 부드러운 천의 감촉을 느끼며 산책을 즐긴다.
이 영상을 중심으로 전시의 후반부는 오롯이 파리 퐁뇌프를 포장하기 위한 10년간의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까다로운 파리시의 허가를 받기까지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자크 시락과의 면담이나 주고받은 편지들, 각종 공문서, 문화부 장관 자크랑의 지지, 따로 금전적 지원을 받지 않은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팔았던 스케치 작업들, 최종 허가서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모아 놓은 아카이브들이다. 실제 알프스의 프로 등반가들의 도움을 얻었고, 밤낮으로 외부에 설치 재료들을 두어야 해서 몇백 명의 아르바이트 생들을 고용하기도 했던 기록도 흥미롭다. 실제 프로젝트에 사용하던 천이나 큰 안전장치도 전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크리스토&쟌-클로드 부부는 이 프로젝트와 함께 10년을 보냈다. 기획부터 도시의 담당자들의 허가를 받는 일까지 어느 하나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10년을 준비한 프로젝트는 달랑 2주의 눈 깜짝할 순간만 전시되었다. 순간적이고 일회적이었던 이 프로젝트는 비록 사진과 영상으로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내년이면 실제 눈앞에서 황금빛 천으로 포장된 파리의 개선문을 드디어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특별한 코멘트나 의도를 설명하지 않았던 그들은 추상적인 아이디어나 거대한 주제의식보다 예술이 어떻게 풍경과 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더 많은 작업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christojeanneclaud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