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야?"
요즘 부쩍 이레가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조금 어렸을 때는 친구들이 어느 나라 말을 할 줄 아는지 이야기했고,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의 눈 색깔을 유심히 들여다보았고, 그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주변 사람들의 머리카락 색깔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만 6세가 다 된 요즘은 '드디어'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해진 모양이다.
언젠가 이레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지 시뮬레이션을 해보곤 했다. 막상 이 질문을 받고 보니 내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아직 결괏값을 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해본 적도 누군가 던지는 국적에 관한 질문에 대해 대답할 때 머뭇거렸던 적도 없었는데, 막상 내 머릿속은 좀 복잡해졌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떠 안긴 것 같은 오버스러운 착잡함도 든다. 그로서는 별 뜻 없는 일상적이고 가벼운 의문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야 당연히 한국사람이지,라고 말해줄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문화, 사회에서 성인이 되고 심지어 결혼까지 한 한국인 엄마 빠의 딸이니까. 그녀의 부모는 아마도 자신들이 받았던 교육과 문화의 맥락 안에서 그녀를 키우고 있을 테니까. 게다가 집에서는 한국말로 대화하고, 한국 음식도 자주 먹고, 한국어로 된 잠자리 동화를 읽어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 당연히 너는 한국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도 좀 우기는 거 아닌가 싶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한 달 정도의 여행 말고는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프랑스 문화에 훨씬 더 익숙하고, 한국 사람들을 만나 한국말을 하는 게 조금씩 어색해지는 중이며, 일상의 시간 대부분을 학교에서 친구들과 보낸다.
이미 그녀가 던진 찰나의 질문은 지나가 버렸지만 허공에 대고 김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넌 한국 사람이기도 하고 프랑스 사람이기도 해."
엄마 아빠는 한국사람이고, 엄마 아빠가 한국에서 살면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게 너에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넌 한국 사람이야. 그런데 넌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프랑스 말도 잘하고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으니까 프랑스 사람이기도 해.
"그게 좋은 거야?"
"좋고 나쁜 건 없어. 넌 두 가지 말도 할 수 있고, 두 나라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한국에도 프랑스에도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그래서 더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거야.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깔, 외모 때문에 네가 한국사람 혹은 프랑스 사람인 건 아니야.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르게 생겼거든."
# 이레야, 앞으로 조금씩 커가면서 너의 국적에 관한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질문을 듣겠지. 그때마다 네 생각이 바뀔 수도 있어. 어떤 날에는 네가 프랑스 사람이 아닌 것 같을 거고, 어떤 날에는 네가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을 거야. 네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중에는 너의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색, 눈동자 색이 너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 이미 시작된 미래의 질문들이 조금 달라 보이는 타자들과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고, 너 자신의 다름을 즐기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길 응원할게.
그리고 아마도 네가 엄마 나이쯤이 되면 국적 따윈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올 거야. 비행기 탈때도 여권 필요없는 시대가 오겠지? 전주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늘 '쌍꺼풀 없는 배우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날이 올 거야'라고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