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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Oct 26. 2022

한국 여행 후기

이레가 돌이 되기 전 한국에 다녀왔으니 약 6년만에 한국에 갔다. 


그 중간에 부모님들, 가족들이 한번씩 여행으로 프랑스에 방문을 하셨으니 가족들을 본 지도 엄청 오래 된 것은 아니었고, 

우리 둘다 한국을 그리워한다거나 꼭 가야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으며, 

아이와 함께했던 한국 행이 엄청나게 피곤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굳이 가야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것 같다.


코로나 기간에 태어난 이든을 처음 만나는 가족, 그동안의 피로감을 좀 해소하기 위해 잠깐 공간을 옮겨야할 이유들이 생겼다. 한국 행은 그렇게 결정되었고, 때마침 한국에서 해외 입국자 의무격리도 해제되는 시기라 타이밍이 여러모로 잘 맞았다. 


'소문으로'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체험하지 않아서 모르던 한국의 변화를 잠깐 머무는 '여행자의 눈'으로 보니 또 새로웠다. 검은머리 외국인은 우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프랑스의 속도에 익숙해진 우리는 어디서든 어리버리 했으며, 서울 대중교통 출퇴근 시간을 한번 체험하고는 얌전히 동네만 돌아다니기로 했다. 애초에 아이들과 가족들의 상견례자리였으니, 이번 여정은 오롯이 가족들과 보내는 짧은 시간이었다. 


#1. 수많은 삼촌과 이모, 그리고 용돈문화


이레가 만나는 모든 어른은 삼촌, 이모!

일단 엄마빠 친구는 다 삼촌 이모고, 가족 중에 이모도 있고. 고모도 있고 고모부 이모부, 할머니와 할머니 동생이 있는데, 할머니 동생도 할머니고.... 총체적 난국. 

이름으로 상대를 호명하는 문화에 익숙한 이레는 '엄마 너무 헷갈려!'를 외치시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용돈. 서로 돈을 직접 건네는 문화가 없는 프랑스에서 온 이 검은머리 외국인 아이는 어른들이 용돈을 줄 때마다 그게 뭐에 쓰는건지도 모를 뿐더러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약 3일차가 되니, 자기 용돈 지갑을 따악 챙기며 무엇을 살수 있는 돈인지 가늠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용돈 문화가 김과 나도 이제 어색해져서 둘다 우왕좌왕. 고맙습니다 대신 뭐 이런걸...로 때우기 일쑤. 


용돈 받는 재미를 알게 된 것이 한국 문화체험의 정수라고 할 수 있지. 하하하



#2. 경주 불국사, 역삼역에서의 호캉스


친한 동생은 이레의 한국행 소식을 듣고 불국사와 경주 박물관을 데려가 주었다. 경주 한옥마을 숙소의 온돌방에서 등을 지지며 자는 호사도 누려보고 밤에 족발을 배달시키는 알흠다운 일정이었다. 

경주 박물관의 전시 방식이나 아이들을 위한 체험장은 정말 입이 떡 벌어졌다. 디자인하며, 알찬 콘텐츠들이라니. 초등학교 저학년, 이레 또래의 아이들로 가득한 전시장은 정말 활기찼다. 

석가탄신일을 준비하는 불국사의 장식과 에밀레종 첨성대를 둘러보고 나니, 파리의 성당들, 별거 없네! 


호캉스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라니... 여튼 나도 도심의 호텔에서 숙박하는 호캉스를 보냈다. 이런 식으로 주말에 쉬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한다. 연휴가 끼면 예약하기도 어렵다고... 우리는 역삼역의 호텔에서 모였다. 야식은 필수, 조식도 필수! 

뭐 딱히 호텔에서 인상적인 것은 없었으나,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이 이 검은머리 외국인에게는 너무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3. 가족


친가외가의 가족들과 꽉찬 2주를 보내고 김과 먼저 프랑스로 출국한 이레는 이런 감상을 남겼다고 한다. 


‘아빠는 전주 할아버지 본 적 있어서 좋겠다.’ 


외가서 본 울아빠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나보다. 지금 나의 나이 즈음의 아빠가 사무실에서 멀끔하게 찍힌 사진을 보며 이레는 이런저런 질문을 했더랬다. 아마도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고 환대해주는 다른 모든 가족들처럼 그도 자신에게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했을 것이다. 


난 아빠랑 1도 닮은 곳이 없다. 그래도 엄마와는 쌍커풀 없는 길쭉한 눈매와 자유로운 영혼과 자기 주장과 호불호가 강한 면 등등 내적으로 그나마 교집합을 찾을 만한 곳이 있지만, 아빠와는 전혀 없었다.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늘 저 머나먼 우주의 외계인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여전히 아빠에 대한 좋은 기억들은 희미하지만 나쁜 기억들은 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할때도, 아이를 낳을 때도 그리고 한번씩 이렇게 대명절같은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때만큼은, 그는 우리에게 그리움의 대상이다.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100% 꽉찬 그리움.  


전주 할아버지가 있었다면 너를 많이많이 사랑해줬을텐데. 비록 그의 방식이 너의 코드랑은 맞지 않았겠지만.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한국행을 마무리 하고, 조금 더 자주가도 좋겠다는 감상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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