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와 내 친구들이, 나와 결혼한 한 남자가 나와 집안에서 동등한 역할과 집안일, 육아를 맡고 있음을 자랑처럼 이야기하며 보란 듯이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 자상한 남편의 모습을 sns에 전시하는 것. 우리 세대에겐 이런 행위가 나를 증명하는 또 다른 방식인 것 같다. (엄마 세대들이 잘 된 자식 자랑하는 재미로 사는 것처럼)
언제까지 이런 게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자랑거리가 되야하는 걸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우리 아빠는 그렇지 않았지만 내가 선택한 나의 남편은 최소한 개념있는 남자여야만 한다는 암시가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내가 괜찮아 질 수 있다면, 내 딸의 세대에는 정말 무엇인가가 달라질수 있을까?
베르토 모리조가 그린 <아빠와 딸>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여성 화가로서 명예와 부를 누릴 수는 없었지만,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그녀의 시선에는 이런 존재 증명의 노력들이 보인다. 모성애 가득한 엄마와 딸이 아닌 건조한 관찰자의 눈으로 멀리서 관조하는 <딸의 아빠와 그의 딸> , 굉장히 공감되는 시선.
2.
인상주의자들의 그룹에서 눈에 띄는 여성화가. 에드워드 마네와 우정을 나눈 여자로 어려서부터 언니와 그림을 그렸고, 결혼한 언니가 화가로서의 커리어를 버리고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된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에드워드 마네는 모리조에게 자기 동생 유진 마네를 소개시켜주었고, 그와 결혼한 후에도 베르트 모리조는 '자신의 방식대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길을 갔다.
아내의 모델이 된 유진 마네로 말할 것 같으면, 신남성으로서 덕분에 모리조는 결혼 후에도 성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하며 창작을 이어갔다.
물론 일상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이들이 다 인상주의자들이지만 모리조에게는 그들의 그림과는 한끗 다른 시선이 있다. 남성화가들이 그렸던 그림에는 등장하지 않는 '아빠와 딸'의 모습을 소재로 한 것이다. 아빠가 아이와 노는 일상적 모습이 그림에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이 그림은 너무 희귀하고 새롭다.
화가인 여성이 그리는 자기 남편과 (그녀의 딸이기도 한) 그의 딸.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처럼 인물들의 표정이나 그림을 그리는 이의 감정은 최대한 생략되었지만,
나는 나의 남편이 그의 딸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정상적인 삶의 과업들을 잘 수행하는게 (아마도 여성에게는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낳고 그들을 교육시키고, 혹은 내조를 하고 등등)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나 자아성찰보다 중요해지는 삶은 여전히 낯설고 우울하다.
82년생 김지영 비스무레 태어나 아빠의 재털이 심부름 하며 자란 딸 둘엄마의 푸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