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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Oct 26. 2022

우크라이나, 샤갈 그리고 육아용품

#1. 최근에 본 2차 세계대전 관련 다큐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전쟁에 관한 다큐는 아빠들이나 보던 거라 치부했는데, 이번에 디지털로 복원된 세계대전 다큐멘터리를 며칠 밤에 걸쳐 세계사 공부 겸 다시 보면서 다시 전쟁의 공포가 체감되었다. 

인상적인 여러 지점들이 있었지만, 연합군도 아니면서 독일군의 탱크에 맞서 ‘홀로’ 승리를 거둔 러시아군의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다. 뛰어난 여성 스나이퍼들의 활약상은 잘 몰랐던 사실이었고 러시아 군의 끈기와 저력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의 위협이자 생존전략인 추위까지! 와우! 


어학원에서 만났던 러시아 친구는 자신의 고향에 눈이 허리까지 오는데, 겨울에는 마을까지 내려온 곰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이 다큐에 나오는 여성 스나이퍼들과 겹쳐졌다. 



#2. 러시아 그리고 나치


그러다가 오늘 아침, 침대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했대!” 

어? 이 장면은 어제 내가 본 세계 2차대전 다큐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하는 데자뷰! 

게다가 푸틴이 자신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나치를 다 색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러시아의 것이었던 곳을 다시 되돌려 받겠다는 것이다.  


두 나라의 오랜 역사적 '원한'을 뒤로하고, 푸틴의 선언을 듣노라니 어제 보았던 히틀러의 나치즘과 다를 바없는 선언에 끔찍한 살육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나치가 아리아인들의 우월성을 뼛속까지 믿었던 것처럼, 러시아인들도 키예우가 자신들의 것임을 믿고있으며 그것을 재 탈환하기 위해서는 살육도 불사하겠다는 논리도 닮아있다. 


정확하게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는 똑같이 날카로운 두 개의 칼날. 

군사적인 주요 시설 만을 전략적으로 파괴하겠다는 주장, 이런 블랙코미디라니. 


2022년의 나는 1940년의 유럽을 떠올려본다. 일상적인 하루를 시작하던 사람들의 머리위로 떨어지던 폭탄들을.. 




#3. 러시아와 혁명, 나치즘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샤갈이다. 


샤갈의 인생 여정이야말로 이 혁명과 전쟁, 반유대주의의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샤갈은 화가로서 엄청난 명성을 얻고 미국에서 호화로운 말년을 보냈지만, 그에게 있어 죽을 때까지 집은 러시아에 있는 작은 유대인 게토 마을 비텝스크였다. (그림의 제목이 나와 마을이라니..) 


무능한 차르에 대항하는 볼셰비키 혁명에는 동의했지만, 그 이후 여전히 자유롭지 않은 소비에트 연합의 공산주의를 피해 베를린으로 이후에는 프랑스로, 다시 프랑스에도 드리워진 나치의 그림자를 피해 미국으로. 그의 인생은 자유, 영혼의 자유가 아닌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자유를 위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며 이동하는 나그네의 삶이었다.  그가 자신의 시대의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싶어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름다운 색채로 알려진 샤갈의 그림은 왠지 싸하다. 매력적이라고 하기엔 괴상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염소의 눈을 한 사람, 머리가 두동강 난 채 하늘을 나는 천사의 형상, 반인반수들이 마음대로 뒤섞인 그의 캔버스. 아름답기보다는 슬프다.  


샤갈을 좋아하는 이들도 잘 모르는, 아래 그림 

마르크 샤걀, <세계의 밖 어디든,Anywhere Out of the world (1915-1919)>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사랑이 남아있던 그의 그림에서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어제 다큐에 나와 증언하던 아우슈비츠 생존자 할아버지의 얼굴. 41명의 친인척 중 유대인 수용소에서 혼자 살아남아 그 기록을 담담히 말하는 그의 얼굴이 겹쳤다. 울면서 말하는 것보다 조용하게 말하는게 더 슬플 때가 있으니까. 


마르크 샤갈 <에펠탑의 부부> (1938-1938), 파리 퐁피두 센터 소장



#5. 그리고 우크라이나 엄마들


프랑스에는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아이와 엄마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이들을 위해 도착하는 역에 놓인 유모차들의 행렬이 찍힌 보도 사진이 많이 공유되고 있다. 내가 가입되어 있는 온라인 지역커뮤니티에도 우크라이나에서 남편을 전장에 보내고 아이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온 엄마들을 위한 글로 도배되어 있다. 이들을 돕기위한 페이지가 따로 개설되기도 했다. 


물가, 기름값 폭등 이상의 긴장이 체감된다.  


이들을 위한 임시거처를 구하는 글들과 거기에 자신들의 방을 내주는 사람들의 제안, 이 엄청난 속도와 양에 깜짝 놀랐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된 동네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아이들이 쓰던 유모차와 작아진 옷들을 보냈다. 나는 사실 부끄럽게도 처치곤란이었던 물건들을 버리기 아까웠는데 잘됐다는 마음으로 연락을 했을 뿐인데, 차에 가득실린 구호 용품들과 생필품들, 육아용품들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출산을 하는 전쟁 난민에게 전해질 이레와 이든의 물건들에 영혼과 기도를 담아보았다. 



2022년 3월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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