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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산균 Oct 26. 2022

우리 집의 연대기

1. 홈, 스위트 홈? 


집, 한번도 스위트 홈이라고 할 만한 심정적인 '나의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 


기억나는 최초의 우리 집은 한 주택가에 딸린 단칸 방.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 집에 살았었고,  마당이 있는 집이었고 주인 집 딸 언니와 자주 놀았던 추억이 있다. 진짜 순정만화에 나오는 얼굴을 하고 예쁜 인형이 많고, 집 안에 계단을 통해 자기 방으로 우리를 데려가곤 하던 이름도 기억 안나는 그 언니. 어린 시절의 사진으로만 어렴풋하게 확인할 수 있는 그 마당. 그리고 동물원이 가까워 아빠와 종종 놀러가곤 했던 집이었다. 

  

그 뒤에는 막둥이와 살겠다고 큰 아들 집에서 탈출하신(!) 할머니와 함께 다섯명이 거실이랄 것도 없는 작은 방 두개의 집에 낑겨 줄곧 살았었다. 주공아파트가 신도시에 건설되면서 초등학교 3-4학년때쯤 전학을 갔다. 비슷비슷한 크기의 집에 높은 아파트 단지 안에 살았고, 따뜻한 물이 펑펑나오고 난방이 잘되는 14층의 집은 피아노가 처음 생긴 날의 즐거움과 방의 크기에 비해 너무 큰 책상 두개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친구들도 다 아파트 단지 안에 살고 고만고만한 집들이어서 길 건너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친구집에 가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그 후로도 고등학교때까지 한 두어번 더 이사를 했던 것 같은데, 집에 대한 감상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다. 사춘기 시절 나에게 집은 얼른 탈출해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최초로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봤자 기숙사에 동기들과 같이쓰는 방이었지만. 


대학에 간 후로는 그렇게 기숙사와 자취방을 전전했고, 결혼 전에 친구들과 살던 반지하 방에서 신혼살림을 꾸렸고, 결혼 1주년이 되기 바로 직전 파리에 왔다. 헥. 이렇게 몇줄로 정리되는 집의 역사라니.


파리에서 집을 구하기 전까지는 외각의 민박집의 3층 방에서 두달정도 지냈다. 책에서만 보던 지붕에 창문이 달린 방에 눈도 왔었던 겨울이라 너무 낭만적이었지만, 우리는 여행자가 아니었으므로 집을 구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조금 우울했다.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던 부잣집 아들인 선배의 모습이 조금 짜증났다. 



2. 하우스 혹은 홈 


나에게 있어 집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쉼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어린 아이 둘이 있는 4인 가족이 넉넉하게 쉴 공간을 얻게 되었다. 


그동안 방 한쪽 구석에 간이 칸막이로 간신이 몸만 뉘일 공간이 있었던 이레에게 방이 생겼다. 방에 이층침대와 -중고-인형의 집, -이미 가지고 놀기에는 철이 지나버린, 집이 좁아서 살 수 없었던-주방놀이 세트를 세팅해두고 이사한 우리집에 처음 발을 들일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몇 달 후면 이 집도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겨지겠지만, 지금은 햇볕이 너무 잘 들고 하늘이 커다랗게 보이고, 아이들의 소음을 피해 잠깐 혼자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감히 '행복하다'. 

이레야, 이제 친구들 집에 초대해서 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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