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 어머니는 문화센터에 다니시며 여행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수줍게 고백하셨다. 다닌다고 하기도 애매한 게, 바빠서 수업을 두세 번 가본 게 전부인데, 그 두세 번의 참석만으로도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기 충분했었나 보다. 아니면 영어 공부를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는 순간이 된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만 빼고 다들 몇 학기씩 다닌 사람들이더라고. 그 사람들은 척척 잘도 읽고 대답도 잘하더라. 나랑은 비교도 안돼. 집에 와서 연습도 해봤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 있지.
너희 아버지가 한글 발음이 아래 달린 영어책을 사 오셨어. 나 연습시켜준다고. 노인네 둘이 앉아서 주거니 받거니 해봤는데, 머릿속이 하얘지기만 하더라.
아들 내외가 미국도 아니고 저 유럽에 프랑스라는 나라를 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안정을 추구하는 김의 성격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인데, 이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막내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 간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던 것이다. 시시콜콜 일상을 공유하는 성격도 아닌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의 질문에 늘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를 후렴구로 달고 살았다.
반면 ‘신남성’이었던 김의 아버지는 본인 또래 다른 이들에 비해 해외 경험이 많은 편이셨고, 해외 출장으로 들렀던 유럽에 대한 아주 좋은 기억을 갖고 계셨다. 그리고 아들 내외의 결정을 흐뭇해하셨다. 젊었을 때 넒을 세상을 봐야 한다며.
이제 이 분들은 언젠가는 아들 내외와 손녀를 만나러 갈 마음의 준비를 하면 되었다. 아직 부모님을 초대할 정도로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우리는 언젠가는 한번 오시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는데, 어머니는 언젠가 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여행 영어를 배우신 것이다. (여행 불어 아님 주의. 불어의 장벽이란 이런 것)
어머니에게 있어 공포스러운 상황은 돈도 아니고 먼 곳에 가는 긴 비행시간이나 몸 상태에 대한 걱정도 아니고, 공항 출입국 검색대에서 하는(아니한다고 들었던) 영어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 질문을 못 알아들어 못 가면 어쩌나, 비행기 안에서 작성해야 하는 출입국 확인서는 또 어떻게 적나. 뭐 이런, 우리는 미쳐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것들이었다.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 안에는 대부분 한국 승객들이라 눈치껏 따라서 가면 되고, 항공기 안에 승무원들도 한국사람이라고 몇 번이나 설명해드려 본다. 하긴, 말 안 통하는 외국에서의 그 두려움이 이해되지 않을 리 없다.
본인의 삶에 대해 자신감 있고, 당당하신 어머니의 귀여운 푸념을 듣노라니, 그 세대만이 소유한 물질적 풍요로움과 소유하지 못한 새로운 정보나 지식 사이의 괴리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외국 생활하는 아들 내외가 한국에 있는 또래들에 비해 물질적인 안정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시며, 남들이 가진 만큼의 삶의 재화를 축적하는 것이나 남들이 하는 단계의 삶의 절차를 밟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시다가도..
그래, 너희들은 똑똑하니까… 식으로 허무하게 대화가 끝나버리던 것도 어쩌면 소유하지 못한 정보와 지식에 대한 주눅 듦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이해해본다.
아마도 그 세대의 콘텍스트는 이런 것이리라.
더 많은 지식과 배움에 대한 욕망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필수적이었던 물질을 통해 가족을 보살펴왔던.
그리고 몇 년 후,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오신 어머니는 아버지가 비행기에서 외국인 승무원에게 와인을 부탁한 것에 대해 이런 코멘트를 남기셨다.
‘너희 아버지는 비행기에서 와인도 잘 시켜서 드시더라. 난 그런 건 다 사 먹는 건 줄 알았는데… 하여튼 그럴 때 보면 할배가 세련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