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눈 Mar 15. 2022

교사의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

수업이 시작된다.

교사는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화면에 띄운다.


교사 : 20년 후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학생들 : ....

교사 : 고도의 과학 기술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되지요. 또 고도의 여행이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답니다. 고도의 여행이 자유로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학생 1 : ....교통수단?

교사 : 교통수단? 지금 비행기가 있으니. 뭐가 더 필요할까요?

학생들 : ...

교사 :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학생 2 : ....시간?

교사 :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겨나진 않죠. 하루 24시간은 늘 일정하니까.

학생들 : ....

교사 : 생각해보세요.

학생들 : ....

학생 3 : ....통역?ㅋㅋ

교사 : 뭐라고요?

학생 3 : 통역이요.

교사 : 통역. 그렇지 영어가 필요해요.



난 이 교실에서 학생 3이었다.

교사의 물음에 이 대답을 하기까지 내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뭐가 필요하지? 교통수단? 어 아니라네.. 그럼 답이 뭐지? 나 같으면 통역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런 건 아니겠지? 큰소리로 말하긴 너무 부끄러운데.. 왜 다들 아무 말도 안 하지? 에이 틀리면 내가 대표로 웃지 뭐. 작은 소리로 말해볼까?'

"(작게, 웃으며) 통역?"

'안 들리신다고?'

"(크게) 통역이요."


교실에서 내가 자발적으로 소리를 내서 말한다는 건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모두가 내 대답을 주시하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될 터였다. 게다가 만약 틀리기까지 해서 다른 이들이 웃기라도 한다면 그 학기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잊지 못할 순간이 될 것이다. 학기 내내 나는 수업에서 고개도 못 들고 다녔을 거다.


그랬던 내가 수업시간 교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럼 많은 학생이다. 아직도 부끄러운 순간에는 순식간에 귀 끝까지 빨갛게 된다. 교사의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학생은 틀리기 위해 거기 있다는 것을 안다. 

모르기 때문에 배우러 오는 것이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당연하다.

한 번 가르쳐 준건 알아야 한다고?

이해 속도에는 모두 차이가 있다.

교사는 학생의 이해를 도와주기 위해 필요한 존재이다.


수업 시간에 이렇게 질문으로 학생들의 생각을 유도하는 교사라면 적어도 단순히 정답만을 강요하는 교사는 아닐 것이다. 학생들이 생각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생각했고 생각했다는 표시로 대답을 했다.


정답이든 오답이든 교사와 함께 생각하며 소통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교사가 오답이라고 말할까 봐 무서워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사실 쪼금 무섭긴 했다.) 틀려도 괜찮다고 스스로 용기를 주었다.


나에겐 참 소중한 수업이다.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얻었다.
예전처럼 수동적인 자세로는 공부가 깊어질 수 없다.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최선을 다하자.

매일같이 이렇게 다짐한다.


이 수업을 통한 배움이 나에게 너무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더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모두가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질문과 발표는?


초등학교의 교실은 서로 대답하고 싶어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이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학생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학생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은 오답에 대한 공포가 매우 크다.

그 속에는 말했다가 틀리면 부끄럽다는 생각,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한다는 생각, 이도 저도 귀찮다는 생각들이 숨어 있다.

교사가 그것을 알고 있고, 학생들에게 틀려도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줘도 학생들은 입을 떼지 않는다.(지금의 나 같은 깨달음을 얻은 학생은 극히 드물다.)


학생들에게 안전장치를 해주어야 한다. 누군가와 상의해 볼 시간, 자기 생각을 검증해 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자기 생각을 만들 시간을 주어야 한다.


위 수업에 적용해 보면

1. 각자 생각하기 : 고도의 여행이 자유로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각자 1분간 생각해서 써 봅시다.

2. 에게 설명하기 : 그럼 각자가 생각한 것을 짝에게 한 번 말해볼까요? (각자 1분씩)

3. 전체에게 발표하기(나누기) : 00 학생. 짝에게 설명한 것 한 번 발표해 줄래요?


짝에게만 말하는 것은 훨씬 부담이 적다. 좀 틀려도 괜찮다. 짝 생각도 들어보면 더 좋은 생각이 나기도 한다. 짝에게 한 번 말하고 검증받은 것은 전체에 말할 때도 자신감이 조금 생긴다.


걸리는 시간은 위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업이 훨씬 역동적이다.
모든 학생이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
서로 생각을 주고받는 학생들 모습이 매우 사랑스러워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720번의 연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