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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의 눈 Sep 12. 2022

착하다는 말은 왜 욕이 되었을까?

착하게 착해지는 법

 착하다는 말을 떠올리면 긍정의 이미지만 떠오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 나를 '음... 착해..!'라고 소개한다고 생각하면 왜인지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분명 칭찬인데 말이다. 착하다는 말은 왜 욕이 되었을까?

걔 어때?
음... 착해..!


출처: SBS 예능 플러스, '언니한텐 말해도 돼'
타인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왜 착하다는 말을 칭찬 외 목적으로 사용할까?


 인간(人間)은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사회를 구성하며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삶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했을 정도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은, 먼 과거에 무리에서 낙오된다는 것은 곧 생존 문제에 직결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무리(사회)에서 낙오되고 싶지 않은 우리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한다. 모르는 타인이더라도 좋게 보일 필요는 못 느낄지 언정 최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현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청자와 착하다고 소개되는 당사자, 모두에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에둘러 '착하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나(너)는 착해서 탈이야.

 경험상, 지난 대화들을 곱씹어보면 착하다는 말을 굳이 나쁜 사람에게 쓰지는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 착하다고 칭해지는 사람들은 실제로 착한 경우가 많았다. (말이 조금 이상해진다.) 그러한 사람들은 왜인지 모르지만, 조금 불편하게 착한 경우가 있다. 너무 배려해줘서 불편하다고 여겼던, 너무 착해서 매력 없다고 느꼈던 사람들 말이다. 문요한 작가님의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는 '미숙한 착함'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들을 정의한다. 

출처: 유튜브 채널, '픽고PICKGO', '착한데 질리는 남자'


 인간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통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먼 과거부터 신체적 고통은 물리적 위험을 벗어나라는 신호로 사용되었듯이, 사회적 고통은 사람과의 관계를 더 잘 유지해야 하는 신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틀어지거나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면 우리는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회적 고통은 인간에게 무척이나 괴롭다.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질 것이 예상될 정도의 신호라면,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나을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사회적 고통을 특히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착한' 사람들이다.


 사회적 고통이 두려워서 착한 사람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1. 누군가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못 견딘다.
2. 거절이나 부탁 그리고 솔직한 자기표현이 어렵다.
3. 종종 자신의 감정이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혼란스럽다.
4. 갈등을 빨리 해소하기 위해 성급하게 사과하거나, 상대 요구에 따른다.
5. 자신은 착한데, 세상이 얌체(?) 같다고 느낀다.

- 책, '관계를 읽는 시간' 참고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두렵거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착하게 대할 경우 끝이 좋기 어렵다. 선의나 대가를 바라는 착함이었기 때문에 상대가 나에게 빚을 지었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내가 배려해준 만큼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것을 보고 상대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게 된다.


난 착하게 했고 너는 나에게 갚아야 해


 '착하다'라고 소개받는 이러한 사람들은 나보다도 관계를 위한다는 측면에서는 정말 착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라도 조금은 나빠져야 할까? 착하게 착해질 수는 없을까?


착하게 착해지는 법

 

 책,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는 해결책으로 '자기 결정권'을 소개한다. 자기 결정권이란, 싫은 것은 싫다고 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은 원한다고 말하는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다는 뜻이다. 책에 의하면, 자기 결정권을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결정과 선택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스스로 선택했다면, 그 결정이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해도 받아들이고, 책임지고, 다음에 더 좋은 결정을 하기 위한 밑거름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자아를 건강하게 형성해 나가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착하게 착하다는 것은 '배려를 바탕으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내가 자기 결정권이 있음을 알았다면, 상대방도 자기 결정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오늘날, 지나치게 나의 자기 결정권만 외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결정권을 행사한다면, 거절도 정중하게, 부탁도 신중하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정한 호의를 베풀고, 내가 호의를 받는다면 감사를 표시할 수 있게 된다.


착하게 착해지자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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