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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눈 Mar 09. 2016

10. 산 넘어 산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칼은 함부로 쉬이 뽑으면 안 된다.

 수행이 잘 되어 있는 상태에서 심사숙고 후에 칼을 뽑았어야 했다. 그러나 집 짓는 것에 내공도 하나 없이 너무 쉽게 칼을 뽑아 들었나 보다. 아는 게 없으니 용감했고 무모했다.


 우리의 요구를 반영한 평면도와 외부 마감재를 최종 결정하고 나니 처음 계획한 예산보다 4500만 원 정도 더 필요하게 되었다. 별수 없다. 그만큼 대출을 늘리는 수밖에..

 대출금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안타까웠다. 하지만 처음 계획한 예산은 하급 자재에 기본 평면으로만 가능한 것으로 우리가 원하는 집을 얻기 위해서는 추가 대출을 감수해야만 했다.


 공사비를 예측해야 했던 1라운드 경기 결과는 자재에 대한 공부 없이 덤벼든 집짓기 도전자의 뼈아픈 패배다.


 가격으로 인한 마음고생을 일단락하려니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집 짓는데 첫 삽을 뜬 이후 석 달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평수가 작고, 목조건축인 데다 더욱이 시공기간이 짧다는 SIP공법을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석 달이면 넉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토지 판매 회사의 단지 조성 완료가 9일 정도 늦어지더니.

 토지를 우리 명의로 등기 이전하는데 추가로 7일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인허가 신청을 한 때가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는 여름휴가철이었다. 건축사 직원들, 공무원들, 그리고 나 또한 잠시 일손을 놓고 피서를 즐기는 때였다. 그래서 인허가 처리 기간이 일주일 정도로 길어졌다.

 그리고 또, 까맣게 몰랐던 착공신고가 다시 7일이 소요되었다.


 결국, 집을 지을 수 있는 시기가 예상보다 한 달 가까이 늦춰진 것이다.


 큰일이다.

 처음 예상한 완공일에 맞춰 지금의 아파트를 비워주기로 계약했는데 이렇게 되면 한 달 동안 우리 가족이 머물 곳이 없게 된다.


 '이럴 수가.'


 누구의 잘못인가?

 '아파트를 너무 일찍 판 것 아닐까?'

 '건축 기간을 너무 짧게 생각한 것 아닐까?'

 '토지 판매 회사의 단지 조성 일정을 너무 곧이 곧대로 믿었나?'

 

 내 잘못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변수가 많은데 나는 이사 날을 잡는데 단 하나의 변수도 고려하지 않았다.

 여름엔 태풍도 지나가고, 장마 전선도 올라오고, 폭염도 있고, 휴가철도 있는데 말이다.


 순진한 걸까? 둔한 걸까?


 한 달 동안 머물 곳을 어떻게 찾을 것이며, 어렵사리 찾는다 해도 생각지 못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사를 두 번해야 되고 자칫하면 짐 보관비도 내야 할 판이다. 안 써도 될 돈이라 너무 억울하다. 돈도 돈이지만 안 겪어도 될 불편을 겪어야 되는 우리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다.


 공사 기간을 예측해야 했던 2라운드 시합도 무모한 도전자의 참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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