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눈 Mar 05. 2016

5. 배포 없이 꿈 없다

 이제 감당할 수 있는 예산으로 훌륭한 집을 지어야 한다.


 계약일은 2015년 초 봄이고 잔금일은 한 여름이다. 한 여름이 오기 전까지 분양 회사는 단지 안의 토목 공사를 한다. 토목 공사가 끝나고 잔금을 치른 후에 집 짓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집을 짓는데 3~4개월의 시간이 더 든다. 그러면 우리가 이사하는 날은 2015년 늦은 가을이 된다.


 집 짓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서너 달의 시간이 남아있다. 이 기간에 건축사를 선정하고 설계를 진행하면 되겠다. 우리는 건축사를 찾아 또 한번 검색과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접촉한 곳은 순수 자연 소재로 벽을 쌓아 시공하는 곳이었다. 아내가 예전부터 관심을 두었던 곳이다.  그곳에 이렇게 일찍 연락하게 될 줄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그곳으로부터 방문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온라인상에서 해당 건축으로 유명한 분이 건축 상담을 위해 우리 집에 방문했다. 얘기가 술술 풀렸다. 


 "마당이 있으니 아이들은 주로 마당에서 놀 것이다."

 "밥 먹을 때와 잠잘 때만 아이들이 집 안에  들어올 것이다."


 우리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니 그 말이 맞았다.  


 "마당을 크게 하려면 2층 집으로 하되 1층은 낮 생활에 필요한 주방과 거실을 만들고, 2층에 방들을 만들면 되겠다."

 "저녁에 아이들이 화장실을 찾을 수 있으니 욕실은 층마다 두는 게 좋겠다." 


 예산을 넉넉히 계획하지 않은 우리에게 딱 맞는 맞춤형 상담이 이뤄지고 있었다. 첫 단추가 잘 채워지는  듯했다.


 상담이 무르익어 갈 즈음  그분이 땅값을 물으신다. 알려드렸다. 주로 시골 땅에서만 건축하셔서 그런지 깜짝 놀라신다. 그 돈은 어떻게 마련하는 지도 궁금해했다. 


 "처음에는 아파트와 땅을 담보로 대출할 것이며, 아파트는 월세를 놓아 대출이자를 충당할 것이다." 

 대출 이자보다 월세 수익이 더 높은 저금리 시대이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월세 계약이 끝나면 아파트를 팔 것이다.  이때 대출의 상당 부분을 상환할 수 있다." 등의 자금 계획을 말했다.  

 그분은 우리 얘기를 다 듣고, '"이 말을 꼭 해 드려야겠습니다"라고 운을 띄우시고는 경제에 대해 암울한 전망을  풀어놓으신다. 


 "2008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3차례 양적완화. 그로 인해 미국의 기준금리가 실질적 제로 금리가 되고, 지금 까지 유지해 왔지만 이제 곧 금리를 인상할 것이며 그 여파로 많은 나라에 경제 불황이 올 것이다.  우리나라도 피해갈 수 없다. 가계부채 등 경제 지표가 불안하다. 이런 때에 그렇게 큰 돈을 땅에 깔아 놓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어서 땅을 되팔고, 아파트 하나만 잘 유지하는 게 좋겠다. 훗 날 그 땅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조용히 인사를 건네고 집을 나가셨다. 언제 설계 상담을 했었냐는 듯 조용히 나가셨다. 


 망치로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서 땅을  되팔고..."

 "어서 땅을  되팔고..."

 "어서 땅을  되팔고..."


 이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당장 내일 불황이 올 것만 같았다. 걱정이 물밀듯 들이쳤다.

 '너무 성급하게 일을 저지른 것일까?'

 내  마음속은 원망과 고마움 그리고 걱정이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그분 제대로 임팩트 있으시네. 


 그분 말씀에 틀린 부분은 없어 보였다. 마당 집 짓기라는 꿈에 취해서, 그 꿈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행복감에 도취되어 우리가 꼭 봐야 할 위험요소를 못 본 것은 아닐까? 아니 안 보려 했던 게 아닐까? 잘 못된 판단으로 우리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무능한 가장이  될까 봐 두려웠다. 난 잠시 작은 방에 틀어 박혀 고심하기 시작했다. 


 차분히 생각해보자. 


 그분의 전망은 극단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분은 우리 집 주변 특성을 자세히 모른다. 전체적으로 불황이 올지라도 지역적으로 그 여파가 다를 수 있다. 올해 안에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것이 기정  사실화된 것은 뉴스를 통해 많이 들었다. 그러나 금리 인상 시기만큼 또 중요한 것은 속도다.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그리 가파르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연준과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면 금리 인상으로 인한 충격을 줄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미국은 금리 인상 속도를 완만하게 조정할 것이다.

 또 어쩌면 중국과 유럽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의 여파가 우려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장밋빛 전망들을 떠올려 보며 시간을 썼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리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분 생각이나 내 생각이나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믿고 있는 어쩌면 믿고 싶은 미래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난 집을 짓고 싶다.  그분 말 한 마디에 우리 꿈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 싫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그 어떠한 위험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위험이 실제 닥치든 안 닥치든 혹시 모를 위험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분은 위험을 보려 하지 않은 내게 경종을 울렸다. 


 나는 번뇌를 가라앉히고 최종적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1. 배포 없이 꿈 없다. 

 2. 예상되는 위험은 피한다.


 땅은 되팔지 않는다. 우리가 계약한 그 땅 위에 집을 짓고 말 테다.

단, 위험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땅과 아파트를 같이 들고 있지 말자. 금리가 인상되기 전에 아파트를 팔겠다. 금리가 인상되면 작든 크든 시장의 구매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그 전에 팔자. 


 매도 후 아파트 인기가 더 높아진데도 괜찮다.

 다시 말하지만 희박한 위험일지라도 가족의 행복을 담보로 도박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가자. 

 반대로 땅 값이 떨어져도 괜찮다.

 이 땅은 우리 네 식구가  오래오래 살 곳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4. 성큼 다가온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