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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Mar 22. 2023

동해안의 봄 시샘꾼

영랑호에 봄이 오고 있다. 마구마구 몰려온.      


지난주까지 영랑호 호반길 벚꽃나무가 무덤덤하더니 오늘은 분홍과 연두색이 은은하게 어우러진 꽃망울이 확연하다.      


장천천 변에는 수양버들에는 새순이 보이, 개나리 꽃봉오리가 수줍게 열리고 있다. 무더기 영산홍들은 아직도 태연하다.    

   

바람이 온다! 남실바람(light air)일까? 산들바람(gentle air)일까? 잘 알리 없지만 봄기운 물씬 느끼게 하는 몽환스러운 영랑호 호반길이다.      


봄의 전령사들을 만나서 좋은 데다가 아내의 건강이 확연히 좋아져 나를 씩씩하게 따라오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산책을 하는 젊은 아가씨들의 옷차림도 봄스러운데, 문득 걱정이다. 동해안에는 이 찬란한 봄을 시샘하는 몹쓸 방해꾼이 있기에...


작년 벚꽃이 만개할 4월 첫 주 주말에 오랜만에 만난 손녀들과 연분홍빛 웨딩드레스 입은 영랑호 호반길을 6인승 자전거를 타고 훌훌 달려보려는 꿈을 깨트린 건 얄밉게 몰아친 바람 있었다.     


야속하게 며칠을 보내고 영랑호에 가보니, 산산이 흩어진 꽃잎들이 여기저기 휘날려 쓰러져있고, 파도에 밀려 수변 곳곳에 구석구석 쌓여있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다.  허망하게 무너진 나의 벚꽃길 산책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거셌던 그 바람은 바닷가라서 바닷바람인가 했는데 산바람이었다.  태백준령 미시령 쪽에서 불어오는 양간지풍이었다.    


양간지풍(襄杆之風)’은 봄철 이동성 고기압에 의해 영서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바람 중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바람을 양간지풍이라고 하는데 오래전부터 전해왔다.      


조선중엽 1633년 이식의 수성지통고지설(通高之雪), 양간지풍(襄杆之風)’ 통천과 고성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양양과 간성사이에는 바람이 세게 분다’라는 구절이 있고, 택리지에도 쓰였다 한다. 오래전부터 영동지역의 기후를 설명하는 말로 쓰인 것이다.    

  

계절적 요인으로 주로 봄에 자주 발생하는 이 바람은 한반도 주변의 남쪽에 고기압이, 북쪽에 저기압이 놓이고, 따뜻한 서풍이 불게 되면 이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푄현상을 일으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한다.


2019년 영랑호를 덮친 큰 산불의 상처가 방치되었다가 올해 초부터 조금씩 철거, 복구를 하고 있다. 동해안의 봄 시샘꾼 양간지풍이 이 산불의 주범인데 한국전력()이 대신 처벌을 받았다.     

 

영랑호 곳곳에 산불 감시원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그들의 노고 덕분에 내가 아름다운 영랑호의 봄을 즐기려 아예 작정하는 것 같다.       


이곳에 이사 온 후 어떤 분에게 들은 말 속초는 봄이 없다는 말을 조금 실감한 했다만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데 누가 내 마음의 봄을 빼앗으랴!      


올해는 아내랑 둘이 손잡고 다녀와야겠다. 그리고 양양장에 가서 개두릅을 잔뜩 사서 소똥령 사는 친구 부부를 불러다가 봄나물 잔치를 한번 벌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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