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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Mar 30. 2023

우산왕

아내는 우산왕이다. 집안 곳곳에 우산이 있고, 비 예보가 조금만 있어도 과민하게 준비한. 차에도, 백에도, 손에도...

     

우리 집 살림살이 스타일은 미니멀 라이프라고 할 것까지는 안되나 세간은 별로 없다. 거실과 침실이 휑하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이들 대부분도 한 마디씩 하며 공감한다. 나도 너저분한 것 싫어하는지라 그 부분은 의기소통한다.      

 

그러데 우산은 예외다. 현재 우리 집의 우산을 헤아려 보니 14개다. 현관 붙박이 장에 10, 차에 2(트렁크, 조수석 수납함), 골프채에 2개다. 둘이 사는 가정집 치고 너무 많은 것 아니가?   

아내는 우산을 잘 버리지도, 남에게 주지도 않는다. 아내의 우산 욕심에 은근히 짜증나 저항하는 마음에 지난주 내가 외출 후 거의 멀쩡한 우산 하나를 아내 모르게 분리수거함에 버리는 만행(?)도 저질렀다.  

    

아내가 우산에 정말 집착하는 걸까?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특별한 우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흰 비닐우산도 있으나, 대부분 검정색 평범한 우산이다. 양산은 내가 퇴직 전 기념품으로 받은 수수한 접이식 양산 하나뿐이다.   

   

그러니 무슨 이상한 병은 아닌 것 같다. 뭐 수석이나 옛날 물건들 모으는 취미 같은 것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뭘까?


혹시 원인규명에 도움이 될까 하고 난생처음 우산에 대해 공부를 해보았다.      


우산의 순우리말은 넷플릭스로 유명해진 슈룹이며, 고려시대부터 우산을 사용했다 한다. 고려를 다녀온 송나라 사신이 쓴 보고서 계림유사에 기록이 남아 있다.      


초기에는 왕족들이나 양반 등 사회고위층들이 우산을 사용했다. 그러나 서민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한다. 농경사회에서 비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이를 피한다는 건 불경한 일로 여겼다한다;

    

그러던 우산이 조선 말기에 대나무 살에 기름먹인 종이우산이 만들어지면서 점진적으로 확산되었고, 한국전쟁 후 산업화 시대에 석유화학의 산물인 비닐이 생산되고 값싸고 기능성 좋은 비닐우산이 만들어진 뒤로 모든 사람들이 쓰는 생필품이 되었다 한다.


우산 관련 학문이 있을 리는 없고 이게 파악한 대강이다. 뭔가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우산과 관련된 글을 조금 써놓고 아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비를 맞으면 머리 젖고 옷 버리니 불편하고, 우산이 잘 망가지니 여유 있게 보유하며, 날씨가 흐리거나 비 예보가 있으면 사전준비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지 않냐는 답을 듣고 너무도 이상하지 않아서 우스웠다. 허망한 건 나의 의심이었다.     


그러고 돌아서서 다시 생각해 보니 원인은 나였다.


사관학교 다닐 때 우산을 쓰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임관 후에도 장교가 우산을 드는 것은 매우 불량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일종의 군대문화였다.   

  

전쟁터에서 우산은 시계를 차단하고, 적에게 쉽게 노출당하는 문제가 있기에 그런 것 같다. 그 대신 우의를 많이 착용했었다. 훈련이 많은 보병전투부대에서 군생활을 한분들은 판초우의에 대한 추억 한두 가지는 다들 있을 것이다.


군인에게는 우의는 익숙하나 우산은 무척 불편한 존재였던 것이다.       


난 아내 속에 이상한 나라에서 온 공주라도 숨어 있었나 기대를 했건만 우스운 해프닝이 되었다.     


아내는 그런 글 쓰지 말고 내가 밥 빨리 먹는 버릇에 대한 글이나 쓰라고 타박을 한다. 그러면서 '싹싹이'란 별명을 붙여준다! 빨리 밥그릇을 비운다는 뜻이다.


건강에도 좋지 않을 그 빠른 식사습관은 지난번 초행길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관학교 신입생 훈련 때 체득된 건데 아직까지 못 고치고 있다.  

    

몸에 밴 서로 다른 습관이 오해의 주범이었다. 한 이불 덮고 평생을 살면서도 서로 알지 못하는 게 부부다. 참 인생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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