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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속초맛집

속초 면사무소에 다녀오다

by 시냇물

속초 면사무소에 다녀왔다. 속초가 도농복합시가 아님에도 면사무소에 다녀왔다.


***강원도의 춘천, 원주, 강릉, 삼척 4개 도시는 도농복합시이고, 속초는 순도시이다. 4개 도시에는 동과 면사무소가 있으나 속초시는 산하 행정조직에는 동사무소만 있고, 면사무소는 없다.


다녀온 곳은 지역주민을 위한 행정을 보는 면(面)사무소가 아니라 면(麵), 즉 밀가루 음식을 만드는 면사무소(식당)에 다녀왔다.


영랑호 가는 길 주택지 사이에 길지 않은 이면도로를 따라 세 개의 꽤 알려진 칼국수 맛집이 있다. 속초 장칼국수의 대장이라 할만한 ‘정든식당’과 영특한 손녀가 운영하며 쌀칼국수를 잘하는 ‘매자식당’이 있고 그리고 이 집 ‘면사무소’가 있다.

정든집과 매자네는 두어 번씩 다녀와 매콤쏠쏠한 즐거움을 누렸으나 속초공설운동장 위편의 면사무소는 처음이다.


매자식당은 깊이 우려진 국물맛이 일품인 국숫집이나 쌀국수를 기본으로 하는지라 면을 쓰는집들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영랑호길 입구 삼거리의 정든식당과는 장칼국수 등 메뉴가 거의 같은 지라 비교해 보면...

주문을 받고 조리를 시작하며,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얼큰시원한 국물맛이 나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식후에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은 두 집 모두 후한 점수를 줄만하다.


먹고난 뒤에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 식재료가 신선했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한다.


반면 다른 점은 식당분위기이다. 정든식당은 힘들었던 시절 하꼬방(판잣집) 추억이 생가나는 곳이다. 초등학교 책상같은 앙증스러운 식탁이 다닥다닥 배치된 모습과 겨울에 쥐꼬리 같은 햇살에 의존해 비닐막 뒤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청춘들을 보면 더욱 정겹다.

그에 비해 면사무소는 조금 살만해졌을 때 읍내 양옥집 내부 같은 분위기이다. 식탁 위에 차려진 안심포장 수저부터 하나하나가 좀 세련되어 보이고 메뉴도 장칼국수와 맑은칼국수를 주메뉴로, 만두를 보조메뉴로 과감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여 깔끔하다. 밥은 셀프로 무료다.


주말 관광객이 물러간 월요일 점심시간인데도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하다. 여성이 70% 가 넘는다. 현지인 선호 맛집으로 속초의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한다.


그동안 음식 평가에 관심 없던 아내가 은근하게 말한다. 이곳이 분위기, 맛 모두 정든식당보다 조금 나은 것 같다고... 혹시 무료로 제공하는 밥 영향인가? 나는 현재론 비교평가 불가하고 몇 번 더 다녀와서 평가해야겠다.


6.25 전쟁 끝나고 힘든 시절 미국 원조물자인 480 밀가루로 힘겹게 살던 시절! 어머니들이 매일 똑같은 칼국수만 식탁에 올리기가 미안해서 칼국수에 고추장이나 막장을 넣어 만들어 먹기 시작했던 장칼국수!

그 추억의 음식을 찾아 장칼국수집을 꾸역꾸역 찾아드는 젊은이들을 보며 DNA는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속초여행을 와서 장칼국수가 그리우면 이 골목을 찾으시라. 두집다 맛도 수준급이며 한집이 쉬는 날이라도 옆집은 영업을 하니 허탕 칠 날 없으리...정든식당과 면사무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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