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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Jan 23. 2022

어느 마사이족 집에서의 긴 하룻밤

몇 해 전에 운 좋게 아프리카를 여행하였다. 동호인끼리 뭄바이를 경유하여 케냐와 탄자니아를 다녀왔다. 쉽지 않은 오지여행이라 설레었다. 출발 전 황열병 예방주사도 맞으라니 약간 긴장되기도 하였다. 주요 일정은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사파리를 하는 것과 마사이족 마을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경유지 뭄바이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를 돌아보는 일정도 있기는 했다.    

  

내심 기대했던 사파리! 처음 국립공원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바로 옆에서 기린 가족이 나무 위로 목을 드러낸 채 지축을 울리며 달리는 모습에 모두 탄성이 나왔으나 한두 시간 정도 지나자 초원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만나는 온갖 야생동물들에게 점점 둔감해지기 시작했다.     

 

얼룩말이나 톰슨가젤은 지천이고, 운 좋게 사자 가족을 만났는데 식사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우리가 10m 정도까지 접근했는데 개의치 않고 단잠을 자는 모습에 모두들 실망했다. 공원 내 근사한 로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틀째를 기대했지만 첫날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BIG 5(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를 다 만나 보았지만 높아진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사자가 얼룩말 사냥을 해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거나, 누우 떼가 마라강을 건너는 장관 정도는 보아야 직성이 풀릴 듯... 이게 인간의 못된 욕심인가 보다.   

   

다음 일정은 마사이족 마을 방문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사나운 종족으로 알려져 긴장도 되었다. 큰 키에 강인한 인상, 붉은 색조의 화려한 복장 및 장식을 한 그들의 환영 춤과 노래는 인상적이었다.   

   

현지에서 들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사회에서 진정한 남자가 되는 통과례 즉 전사(‘모란이라 부름)가 되는 과정이었다.  이를 위해 훈련촌에 수용되어 수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과정을 겪어야 한다. 묵언수행 과정이며 특히 마지막 단계는 창 하나로 야생의 사자를 사냥하는 무시무시한 시험과정이다.


성공하용맹스러운 전사로 인정됨은 물론 그날 병사촌에 위문을 오는 소녀 중 그가 원하는 소녀를 선택 잠자리를 함께할 특권이 부여된다고 한다. 유목민들의 적자생존과 남존여비 존재의 엄연함을 실감하였다.    

 

그래도 전사가 되는 지난함을 생각해보면 여기도 남자 노릇 하기 만만치 않구나 생각 들었다. 이들의 풍습을 소개한 남자는 자신은 현재 마사이족 중에 사자를 제일 많이 죽였다고 했다. 일곱 마리라 했다. 이제는 정부의 통제로 전사 후보생들이 사자와의 결투는 중단되었다 한다. 일곱 마리 사실이겠지!   

    

마지막 날 마사이족 집집마다 우리 일행이 한 명씩 그들과 하룻밤을 자는 일정이었다. 나는 15세 정도 되는 남자아이와 함께 그의 집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1.5평 정도 크기의 토담집인데 해충을 막기 위해 벽은 진흙과 소똥을 섞어 만들었고, 실내에는 나무를 엮어서 만든 딱딱한 그것도 웅크려야 잘 수 있을 정도 작은 크기의 침상 겸 벤치와 그릇 서너 개가 전부였다. 전기가 없으니 밤이 일찍 찾아왔다. 적도 부근이라도 해발고도가 있어 밤이 되자 서늘했다. 염소젖에 뭘 섞은 음료를 주는데 먹기도 힘들었다. 술 같기도 하고...     


이윽고 자야 하는 데 참나무 같은 나뭇가지 여러 개를 엮은 거친 침상에서 이불이나 요도 없어 누우니 한 자세로 1분도 견디기 힘들었다. 밤이 멈춘 것 같았다. 한숨도 못 잦다. 내 인생 제일 긴 하룻밤이었다. 간혹 토담집 옆에 있는 축사의 염소들의 굼틀대는 소리와 이름 모를 벌레소리가 이따금씩 들린다.      


이윽고 이른 새벽녘 이 집 안주인이 염소를 부려 젖을 짜려고 준비하는 기척이 들린다. 한참 지나니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만 이 정도 불편함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내가 군대생활 제대로 한 거 맞나 자문도 해보았다.     


그런데 저 강인한 종족인 마사이족들은 사는 모양이 저럴게 궁핍할? 또 괜한 궁금증이 발동한다. 거주지역이 적도 부근이라 하나 사바나 지역이라 높은 온도라도 견딜만하고 적지만 어느 정도 강수량도 있어 부근에 대초원이 형성될 정도로 괜찮은 지역이다. 지형도 비교적 완만한 구릉지대라 유목하기가 더 좋지만 농경도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나의 어설픈 식견을 동원해보면 그들은 유목을 하고 있는 종족인데 기마 유목민이 아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 같다. 역사를 돌아보면 마사이족처럼 말()을 사용하지 않는 유목민들은 기마 유목민에 비해 열세하고, 유목민들은 정주권 문화를 가지는 정착민에 비해 더 열세하다. 한두 번의 전투나 전쟁에서는 유목민이 이기지만 긍극적으로 정착민이 승리한다. 중국 청나라가 중화권 문화에 흡수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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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민들은 문자로 기록의 축척을 통한 문명의 발전이 되는데 이에 비해 유목민은 대부분 문자가 없어 구전에 의해 정보가 전달되니 문명의 축척이 안된고 이동을 하며 하루하루 생존에 급급하니 자본축적도 어렵다. 그리고 말을 사용하지 않는 유목민들이 기마 유목민들보다 살아가기 어렵다. 그 이유는 유목민들의 이동속도는 생산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사이족들이 어찌 된 연유인지 정착을 안 하고 비기마 유목민이 된 것이 가장 잘못된 선택이 아닌가 싶다. 세렝게티의 동물들로부터 적자생존의 본능을 몸으로 배웠을 마사이족! 자신들이 적자생존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제일 빠르다는 우리 격언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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