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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Feb 21. 2022

마달리 중대장님!

나는 임관 후 맨 처음 강원도 고성 최전방 부대에 부임을 해서 1년간 근무를 하였다. 6개월은 건봉산 정상에서, 두 번째 6개월은 감호가 내려다 보이는 바닷가 쪽 GP에서였다.     


건봉산에서는 노무현 벙커로 알려진 대대 OP 부근의 철책 통문 소대장을 하였다. 철책에서의 생활은 긴 무료함과 약간의 긴장이 필요한 곳이었다.


하여튼 대과 없이 임무를 마치고 후방 예비대로 내려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의외의 전출명령이 떨어졌다. 소대장은 대개 1년간 한 부대에서 근무하는 게 기본인데...    

 

그 이유는 우리 여단에서 초대형 악성사고인 월북사건이 나서 수색대대의 GP장들을 전면 교체하는 데 나도 차출된 것이다. 덕분에 또 다른 부대를 경험하고 졸지에 중대장 두 분과 근무 인연을 맺게 되었다.


두 분 다 나름의 리더십을 가진 괜찮은 군인이었지만 특히 기억나는 분이 내가 마달리 중대장님이라 부르는 두 번째 분이다. 마달리는 동해안 최북단의 마을 이름인데, 내가 새로 속하게 된 수색중대 본부가 거기에 위치하기에 그렇게 불렀다.  

    

그분의 지휘방침은 먹는 게 남는 !’였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던가 백골과 같이 부대원에게 부담 가는 캠페인이 아니고 함께 어울려서 맛있게 잘먹고 즐겁게 일하자는 의미였다.


물론 공식적으로 문서에 기록되거나 내무반에 게시된 지휘방침은 아니고 구두로 농담 반 진담 반 전파되는 것이었지만 중대원들의 반응은 좋았다.      

마달리에서 며칠간 임무수행 준비를 하고 각 GP로 투입되었다. GP에서는 하루에 한 번 유선전화로 소통을 하고, 1달에 1~2회 현지 GP 방문 간 접촉을 통해 대면하는 데 부하를 완전 신뢰하고 위임하는 형태의 리더십이었다. 잔소리가 아예 없었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참는 것 같았다.     

  

저렇게 방임해도 되나 생각할 정도였는데 예상보다 중대는 무난하게 임무수행을 하며 큰 사고도 없이 잘 굴러가고 있었다. 중대장님은 일을 최소화하며, 일을 하는 목적(이유)을 분명히 하고 중대에서 지원 가능한 역량(차량이나 물자, 예산 등)을 알려주는 식이었다.     

  

10여 년 뒤에 육군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 그 의문이 풀렸다. 소위 독일군의 '임무형 지휘'가 그것이었다. 19세기 후반의 보불전쟁 이후 독일군이 유럽 최강의 군대로 등장한 이래 1, 2차 세계대전까지 주도한 군사 강국이 된 비결인데 독일 군인들에게 내재화되어있는 군사사상이다.     

부대가 작전을 하는 목적(이유)과 지휘관이 원하는 최종 상태를 주지시키고 방법은 부하에게 위임하는 리더십이 임무형 지휘다. 시시콜콜 따지고 부대를 피곤하게 지휘하는 사단장을 ㅇ하사라고 비꼬며 눈에 보이는 것만 하는 시늉을 하는 부대의 반대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신뢰, 위임, 지원이 키워드인 것이다.     


이를 위해 리더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보통의 리더들은 알타미라 동굴의 낙서처럼 부하를 잘 안 믿는다. 그러기에 단기성과에 급급해하는 공무원 조직이나 회사에서 적용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리더십은 공조직은 물론 민간기업 등 사회 어떤 조직에서도 통하는 지배적 원리다. 부하직원의 자발적 참여의식과 창의력 발현으로 기대 밖 큰 성과가 기대되는 리더십이기도 하다. 이제 성숙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도 적용해 볼만한 리더십이 아닐까?     


최근 통일 전망대 방문길에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명파를 지나가며 옛 생각이 났다. 명파 바로 옆에 있던 마달리 마을은 찾아가지 못했지만 그때 받았던 리더십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대진항에서 중대장님과 맛있게 먹었던 한치회가 그립다. 나는 자율의 힘을 믿는다. 그러기에 자유대한민국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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