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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Jan 11. 2022

큰눈의 추억

성탄전야인 어제밤에 속초에 큰 눈이 내렸다. 몇 년 만이며 얼추 70cm는 되어 보인다. 하루종일 도로에는 차들이 다니지 못했으며 사람 다니는 길들도 오솔길처럼 눈이 치워졌고, 제설작업으로 쌓여진 잔설로 곳곳이 막혀 이용하기 어려웠다.     


집을 나서 시내를 돌아보려다 얼마가지 못하고 돌아오다 도로변에 허리춤까지 쌓인 눈을 보았을 때 문득 이 무지막대한 눈이 40여년전의 안타까운 추억으로 나를 소환했다.      


나의 군생활 첫 부임지는 속초북방 간성지역의 건봉산이었다. 그 산은 900m가 조금 넘지만 바닷가라 상대적으로 무척 높은 고지이다. 6.25 전쟁 말기에 주인이 일곱번 바뀔 정로도 격전을 치뤄서 산높이가 5m나 낮아졌다는 월비산도 서로 잇닿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곳에서 군생활을 하셨다 한다.      


최전방 경계작전부대였는데 그곳에서의 생활은 긴장과 무료함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유독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겨울철 제설작전은 만만치 않은 임무였다. 어쩌면 병사들에겐 더 경계작전보다 더 고역스러운 임무였을 것이다.      


1월 하순 어느날! 밤새 내린 많은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중 비보를 전해 들었다. 인접대대에 근무하는 오ㅇㅇ 동기생의 사망소식이었다. 몇일전 부친상을 당해 고향 함평에서 장례를 모시고 귀대길에 실종된 뒤, 관내도로를 제설중인 소대원들에 의해 눈속에 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임무완수를 위해 너무도 위험한 눈내리는 산길을 혼자서 오른 것이다. 스스로를 독촉한 귀대길이 었다.   

   

허리춤까지 쌓인 눈을 초인적인 힘으로 헤치며 산꼭대기의 소초로 귀대를 하다 소초막사가 막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서 안도의 방심으로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젊은 청춘을 마감한 것이다.     


눈이 무서웠을까? 아닐꺼야! 푸른제복을 입은 용감한 국군이기에 가슴까지 차오르는 두려움을 두손으로 헤치고 두발로 짓밟아 버리면서 한걸음 한걸음 소초로 향했을 것이다. 마치 적진을 향해 나아가듯이....기진할 때 까지 소초가 있는 건봉산과 연접한 까치봉 꼭대기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보이기 시작한 소초의 따뜻한 불빛은 엄마 품과 같았고 서서히 따뜻하고 무거운 졸음의 평강함이 그를 엄습했을 것이다.   

     

산아래 건봉사(乾鳳寺) 부근에서 치루어진 장례식 때 아들을 부르고 부르다 여러번 실신하셨던 모친의 애절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일주일 사이에 남편과 아들을 여의었으니 얼마나 청천벽력이셨을까?      

 

그후로 오동기생은 서울 현충원 마지막 묘역에 안장되었고 현충일 추모행사 때 묘역에서 만나곤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동기회 간부를 하면서 그 모친의 부고를 접했다. 동기회에서 준비한 조화와 부위금을 전하며 자식을 먼저 보내고 40년을 사신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리움과 안타까움에 지쳐 눈물도 마르고 가슴이 미어지고 애타는 심정만 가득 남아있지 않을까? 어찌 이 부족한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큰 눈 내린 밤! 두 분 이제는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원드린다!      


동작동 현충원 언덕에는 오ㅇㅇ 동기생 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던 수많은 호국영령들이 안식을 하고 계신다. 각각의 주검마다 이같은 애절한 사연 없는 분이 없을 것이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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