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 산책길에서 만난 사연

by 시냇물

봄이 가까워지는 데 영랑호로 나섰다. 이제는 익숙한 길이라 만나는 사람들 안면은 없지만 반갑다. 아직 움이 돋지는 않았지만 힘들게 겨울을 견뎠던 나무숲들이 대견하다. 봄이 와도, 오지 않아도 다닐 길이다.

신세계 리조트 안내석이 보이는 곳을 지나 수변 길로 들어선다. 산책객들이 제법 보인다. 호수 중간으로 새로 놓인 사잇길 다리가 궁금한 모양이다. 범바위를 돌아서니 라이더도 보이고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 젊은이도 보인다. 흥미진진 & 부럽다.


골프장과 이어진 길이 끝나는 곳에 울타리가 가려 놓치기 쉬운 내가 못 가본 황톳길이 보인다. 지난번 몇 번 눈여겨 보던 길이다. 사람들이 다닌 흔적도 꽤 있다. 문득 저 길이 괜찮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황톳길로 들어섰다. 정겨운 고향 아무 데서나 보던 시골길처럼 생긴 길이다. 그냥 사람들 다니던 그런 익숙한 길!

왼쪽으론 화마의 상처가 남은 자그마한 야산이 있고 오른쪽은 봄이 미쳐 오지 않은 약간 그늘진 밭 자락이 있다. 과수원은 아닌 데 울타리가 제법 단단히 쳐진 밭두렁에는 두릅나무도 몇 그루 보이고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을 여기저기 느낄 수 있다.

고갯마루를 넘자마자 탱자나무 울타리 농가를 만났다. 대농은 아니고... 인적이 없어 주인은 출타중인 듯하며, 집 보는 검정개는 짖지를 않는다. 산책객을 구분하나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건가. 농갓집은 아무리 정리를 해도 수더분하다. 그게 인간미 나는 모습일 수도 있지.

오른편으로 돌아 올라가니 좌측으로 낮은 산기슭에 하얀 기념탑 같은 게 보인다. 입구에 영흥 군민회 묘지란 안내석이 보인다. 영랑호 주변 곳곳에 함경도 지역단위 망향동산들이 산재해 있나는데 그것 중 하나구나. 조금 더 가니 오른편에 황해도민 공원묘지 안내석도 보인다. 1.4 후퇴 시 황해도 분들도 많이 오셨구나!

흥남철수 작전 때 UN군의 배로, 일부는 육로로 위험한 전선을 돌파해 이곳 속초로와 고향을 그리며 살아왔건만 세월 앞에는 장사 없듯이 고향도 못 가시고 타계한 분들이 망향의 한을 함께 묻으셨네... 그래도 고향 친구들과 함께 계시니 다행일쎄.

농경생활을 하고 정주권 문화를 가진 우리들은 이런 류의 연고주의적 생활 행태가 많다. 혈연, 학연, 지연... 이게 지나치면 사회통합이나 국가발전에 짐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 걸 보노라면 정서적 공감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군집생활을 하는 인간들의 본성인가?

논두렁길을 돌아 영랑호 수변길로 합류하니 생경한 기념비가 눈에 띈다. 못본건 관심이 없었던 탔이고... 화접사 시비다. 반가운 시인데 이 시를 어디서 만났지? 대학인가? 절인가? 기억이 불명확하다. 삶과 시의 행로가 일치했다는 최명길 시인의 대표작이다. 강릉 분이지만 줄 곳 속초에서 활동을 한 문인으로 영랑호에서 그 흔적을 보니 반갑다.


그분의 시에 깊은 이해는 못하겠지만 불교의 윤회관이 보이고 구도자적 태도를 느끼겠다. 고전명품의 해석은 보는 이의 마음대로 라는데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산책길에서 편안한 시한 수 읊고 가면 이게 행복 아닌가?

❰화접사❱

나는 나비가 되오리/그대는 꽃이 되오시라/내가 벼랑을 날아 그대에게 다가 가오리/알 수 없는 그대 비밀 엿들으러 내 속마음 삐끔 내어 보이고/여시인 여시과 이렇게 읊조리면/그대 닫힌 입술 조금만 벙글어 주오시라/첫새벽 바다와 하늘 빙긋 열리듯이 그렇게 빙글어 주오시라/한 즈믄해 지난 다음쯤에야/그대가 나비 되오시라/나는 꽃이 되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