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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n 19. 2022

자신만의 색으로 빛나는 페인트

이희영의 《페인트》를 읽고

페인트 / 이희영 / 창비 / 2019



버려진 아이들의 부모 면접


‘Nation’s Children’, 소설에서 NC는 국가의 아이들이라는 의미다. 아이를 낳은 부모가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을 때 국가에서 맡아서 키워주는 보육센터를 NC 센터라고 부른다. NC 센터의 아이들은 열세 살이 넘으면 입양될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버려진 아이들이 오히려 부모를 선택할 권리를 갖게 되는 아이러니다. 현실에서 절대 고를 수 없는 부모를 선택한다는 설정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이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받는 면접을 ‘페인트 Parent’s Interview’라고 부른다. NC 센터의 아이들은 NC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모를 원하고, 예비 입양자들은 입양 이후 주어지는 국가의 금전적 지원을 원한다. 열세 살이 넘은 청소년을 입양한다는 것은 배우자나 반려인을 찾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양쪽 모두 얻게 되는 득실을 따져 ‘부모’라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현실과 《페인트》의 관계 맺음의 차이


《페인트》 속에서는 세 차례의 인터뷰와 한 달간의 합숙을 거쳐야 입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선택한 부모가, 아이가 서로 백 퍼센트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이십 년 넘게 다르게 살아오던 사람과 좋아서 결혼했어도, 살아보면 반드시 싸울 일이 생긴다. 현실 부모는 때로 자신이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사실을 뜻 모를 ‘권리’의 증거로 여기기도 한다. 내가 낳았으니, 아이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반면, NC를 통해 맺어진 부모 자식은 근본적으로 남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어서 입양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았다’와 ‘입양했다’는 방법의 차이일 뿐, 결국 아이가 부모와 살게 된 이후의 관계 맺음에는 별 차이가 없다. 부모 자식이든 부부 사이든 모든 관계는 상호 존중에서 시작된다. 부모가 보거나 알지 못하는 것도 아이가 느끼고 알 수 있다고 인정하는 태도, 즉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긋남과 다툼이 있더라도 손을 잡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무엇’(p.167)이 된다. 



각자의 색이 어울려 더 아름다운 페인트


“NC 출신이라는 사실을 물감으로 지워 버리고 싶었을까? 혹은 자신의 미래를 원하는 색깔로 물들이고 싶었던 걸까. 각기 다른 색이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부모 면접이었다.”(p.34) 소설에서 페인트의 의미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주인공 제누301의 최종 선택은 자신만의 색으로 삶을 칠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는 부모 면접에서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꿈꾼다. 나아가 사회에서 NC 센터 출신이 겪는 차별에도 새로운 페인트를 칠해보려고 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 중에서 가족이나 친구로 만나게 된 것은 인연임이 틀림없다. 인연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는 각자에게 달렸다. 좋은 관계는 혼자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자신만의 페인트 색을 알고, 서로 색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맞추기를 바란다면, 색은 마구 섞이고 탁해질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보색이 만나 더 또렷하고 조화로운 그림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있는 여러 색의 페인트는 함께 쓰여 서로 아름다워진다. 



#페인트 #이희영 #창비 #부모면접 #국가의아이들 #중편소설 #창비청소년문학상 #2018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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