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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n 22. 2022

언젠가 세상은 바뀔 거라고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을 읽고


피프티피플 / 정세랑 / 창비 / 2016


#피프티피플


2019년 11월,  경향신문은 매일 3명이 사고성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가 아카이브된 홈페이지에는, 2018년 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1,748명이라고 적혀 있다. 


2021년 4월 22일, 23세 이선호 씨가 평택항 개방형 컨테이너 내부 정리 작업 도중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다. 현장에 안전관리자도 없었고, 안전장비도 지급되지 않았다. 원청은 무리하게 작업을 지시했고, 사내 보고 3단계를 거치느라 119 신고도 늦었다.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재해와 참사는 계속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된다. 2014년 이후로 해마다 4월 16일이 되면 마음이 아리다. 아직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수시로 몸서리가 치고 인류애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

정세랑의 소설 『피프티 피플』에는 참사와 재해뿐 아니라 수많은 차별과 폭력까지 난무한다. 나는 가끔 책에서라도 도피처를 찾고 평안을 얻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소설을 정말 사랑하는 이유는 50명의 (고막 브레이커는 빼기로 한다) 주인공들 때문이다.  


팥으로라도 며느리를 지켜주고 싶은 '최애선', 시위를 하는 화물연대 사람들에게 샌드위치 세트를 사다주는 '장유라', 규익의 팔목 위를 스카프로 묶고 '너는 다르다'라고 말해주는 '배윤나', 자신이 평생 운이 좋았다며 이제 잃어도 좋다고 말하는 '이호', 가지고 있는 특권을 활용해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이설아', 커밍아웃한 친구에게 '너인데 내가 왜 불편하냐'라고 말하는 '강한영'까지.


이들은 '사람의 목숨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 시스템'과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잘못되었음을 안다. 그래서 개인을 탓하지 않고, 그 너머의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말한다. 눈앞의 힘없는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건 참 쉬운데 말이다. 정세랑 작가는 구조를 봐야 한다고 지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지금 현실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수도 있다. 정세랑 작가는 '이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리 젊어도 그다음 세대는 옵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p.381)


당장 누가 돌을 뒤로 던지는 것 같아도, 내가 던진 돌은 세대를 거쳐가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후회 없이' '하는 데까지만 하면' 언젠가 세상은 바뀔 거라고.


그래서 나도 (정세랑 작가에 입덕하면서) 이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힘이 빠질 때마다 이 책을 다시 펼쳐보고, 분명 50명의 사람들이 현실에도 존재할 거고, 지금도 무언가는 변하고 있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정세랑 #피프티피플 #수요일의랜선페미니즘 #북스타그램 #정세랑사랑해요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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