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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n 23. 2022

엘사가 뭔지 알아?

김혜진의 《불과 나의 자서전》을 읽고


(사진설명) 사진 하단에 회색 보도블럭에 서 있는 사람의 잿빛 원피스 치마가 보인다. 좌측 하단에서 가운데까지 뻗은 왼손이 <불과 나의 자서전> 책의 왼쪽을 잡고 있다. 책은 사진의 정가운데 약간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위치해있고, 그리스/로마 양식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흑백으로 표지 가득 그려져 있다. 책의 좌측 위에서 아래까지 청록색의 얇고 긴 직사각형이 있고, 그 안에 'PIN024', '김혜진 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이 검은 글씨 세로로 적혀있다.



#불과나의자서전 #김혜진 #핀시리즈


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 현대문학 / 2020



"엘사가 뭔지 알아?"


작년 언젠가 남편이 물었다. 내가 '겨울왕국 주인공 아니냐'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남편이 약간 어두운 얼굴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을 같은 반 친구들이 그렇게 부른대'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정신이 멍했다. 고작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집으로 경계를 세우고, 차별하는 마음이 스며든 건가.



그 우려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김혜진 작가의 중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의 초등학생 수아는 친구들에게 '남민'이라고 불린다. 남민은 '남일도에 사는 난민'(p.136)이라는 뜻이다.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곳'(p.25).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 불이 휩쓸어 버리지 않고서는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p.167)이 없는 무시무시한 곳. 주인공 홍이의 부모는 남일동을 벗어나기 위해 몇 번이고 이사를 하지만, 행정구역 개편이 된 이후에야 겨우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이 사는' 중앙동에 편입된다.



남일동에 오래 살았음에도, 남일동 주민을 얕보고 비하하고 차별하는 마음은 홍이의 마음속에도 자리를 잡는다. 주해는 남일동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마을버스 노선을 놓으려고 구청을 밥 먹듯 드나들며, 홍이에게 되묻는다. 홍이의 연민과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어디서 오는 것이냐고. '중앙동에 살면서 남일동을 바라보는 위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냐고.'(p.183, 작품해설)



나와 다른 사람 사이 분명하게 경계를 세우면서, 철저하게 분리하는 혐오는 내 마음에도 꿈틀거린다. 서울역을 지나가다 노숙자를 지저분하다고 여기고 다른 길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사정은 안타깝지만, 그와 나는 다르다고 되뇌었다. 그 밑에는 노숙자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의 '불행'과 나의 '행복'을 비교하지 않고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걸까?



'한 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p.168) 나는 책을 덮었을 때, 내 마음속에서도 보았다.



#현대문학 #중편소설 #북스타그램 #서평 #대체텍스트 #사진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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