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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17. 2023

모든 여성이 생리전증후군에 시달린다는 거짓말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호르몬의 거짓말 》을 읽고

#호르몬의거짓말 #로빈스타인델루카


[페이스 20기] 1618엄마 나비 /  모든 여성이 생리전증후군에 시달린다는 거짓말


"조심하라고 얘기했잖아!"


물감을 식탁에 엎어버린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순간 아차, 하고 사과했다. 조심하라고 한 번 더 이야기하면 충분할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변명을 한답시고 무심코 덧붙였다. 


"엄마가 월경 전이라 좀 날카로웠나 봐."


나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은 걷어내고, 아이에게 필요한 말만 차분하게 하고 싶다. 여지없이 실패한 날에는 슬금슬금 몸을 숨길 구석을 찾는데, 그중 하나가 생리전증후군이다. 사실 월경 전에 나는 불안해진다. 언제 월경이 시작될지 몰라서. 준비 없이 흘러나오기라도 한다면 매우 골치가 아파진다. 호르몬으로 인한 감정 변화라기보다, 신경 쓸 게 너무 많은데 하나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늘어서 그렇다. 이 책에 따르면, '평균 '3퍼센트에서 8퍼센트의 여성'이 생리전불쾌장애에 시달리고 있다.'(p.84) 나를 포함한, 적어도 92퍼센트의 여성은 생리전증후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생리전증후군을 자주 탓해왔다.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아이는 모든 면에서 엄마에게 이런저런 시련을 안겨준다. 따라서 '좋은 엄마'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여성은 자신의 행동을 생리전증후군 탓으로 돌린다. 남들한테 이 상태는 일시적인 것이며 진짜 자기 모습이 아니라고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p.119) 나는 호르몬이라는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좋은 엄마' 프레임을 손에 꼭 쥐었다. 


'좋은 엄마'는 이상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여성은 '예의 바르고, 차분하고, 우아하고, (뭣보다도) 군말 없이 남들을 보살피고 남들을 위해 희생'(p.122) 할 때 인정받는다. 생리전증후군은 견고한 틀에서 숨이 막힐 때 즈음 김을 뺄 수 있는 허가증이다. 이 허가증을 쓰면 이상적인 여성상을 깨뜨리지 않고도 규칙을 어길 수 있다. 하지만 이 핑계는 양날의 칼과 같다. 여성들이 아무리 문제 제기를 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날'이냐며 여성의 이야기를 깔끔하게 무시할 근거를 만들어준다.


이 책에서는 생리전증후군 외에도 임신, 산후우울증, 완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의료업계는 '여성의 호르몬에 '다양한 몸과 마음의 병의 근원'이라는 딱지를'(p.156) 붙여 놓았다. 임신 중에 과도하게 검사를 받게 하거나, 산후기분장애가 발생하는데 사회적·환경적 요인을 쏙 빼놓고 호르몬에서만 원인을 찾거나, 완경기 여성에게 심혈관 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는 호르몬 요법을 만병통치약처럼 광고한다. 여성의 호르몬을 이용해 누군가는 이득을 얻고 있다. '언제나 인간 문제는 팩트 여부가 아니라 팩트를 만들어내는 권력에 달려 있다.'(p.17) 


월경주기가 곧 돌아온다. 이번에는 월경을 내 기분의 핑곗거리로 삼지 말아야겠다. 이상적인 여성상에 나를 가두지 않고, 반드시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한 걸음 벗어나 본다. 조금 더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작업이다. 만약 '오늘 그날이야?'라는 무례한 질문을 받는다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이 질문은 여성 호르몬의 신화에 기대어 논점을 돌리려는 얄팍한 시도다. 나는 '왜 갑자기 월경 이야기를 꺼내지? 지금 일을 어떻게 나눌지 이야기하고 있잖아.'라고 답하는 내 모습을 그리며 슬며시 웃었다.



*네이버카페 엄마의꿈방 페미니즘스터디 페이스 20기 과제로 쓴 글입니다*



#오늘그날이야? #동양북스 #페미니즘 #엄마의꿈방 #페이스 #여성주의 #생리전증후군  #임신 #산후우울증 #완경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회색 천 위에 책이 왼쪽으로 비스듬히 놓여 있다. 책 왼쪽에는 파란색 꽃이 여섯 송이 놓여 있다. 책 표지는 형광 연두색이고, 책 표지 위쪽 가운데 '여성호르몬에 관한 진실 그리고 거짓말' '"정말 왜 이래, 오늘 그날이야?!" '로빈 스타인 델루카 지음ㅣ황금진 옮김ㅣ정희진 해제'가 있다. 그 아래에는 발목에 쇠공이 묶인 여성이 미로의 입구에 서 있다. 미로 아래에는 '여성은 정말 한 달에 한 번 바보가 되는가' '호르몬의 거짓말' 'TEDx talks 100만 뷰, 22개 언어로 번역된 화제의 강연 "The good news about PMS"' '편견을 과학으로 믿는 이들을 위한 최적의 여성주의 입문서_여성학자 정희진 추천'이 있다. 그 아래 출판사 로고인 '동양북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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