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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20. 2023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지 않냐고

이슬아의 《새 마음으로 》를 읽고

#새마음으로 #이슬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야 하냐고. 문득, 문지현 작가님의 웹툰 <꿈의 기업>이 생각났다.(5부 38화) '꿈의 기업'은 특정 기계에 들어가 자신이 꾸고 싶은 꿈만 꾸면서 지낼 수 있는 '장기 꿈 체험' 서비스를 개발한다. 무료로 식사까지 다 해결해 주는 이 서비스에, 도시에 살던 빈민층이 대부분 참여한다. 굳이 꿈으로 도피할 필요가 없던 부유층이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택배기사가 없어 배달해야 할 택배가 쌓이고, 기름을 나를 트럭 운전사가 없어 주유소에 기름이 동난다. 



에피소드를 떠올리다가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지 않냐고. '내가 직접 하지 않은 다양한 노동에 빚을 지며 살아가고'(p.60)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결국 나에게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슬아 작가님의 인터뷰집 《새 마음으로》가 참 좋았다. 이 책은 언제나 내 주변에 계셨지만,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이웃 어른'들이 어떻게 노동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응급실 청소 노동자, 농업인, 아파트 청소 노동자, 인쇄소 기장, 인쇄소 경리, 수선집 사장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화장실 5개를 포함해서 응급실의 모든 청소를 도맡는 이순덕 님. 새벽 5시부터 나와서 휘어진 오이를 골라내고, 버섯 대가 너무 긴지 버섯갓이 너무 커지지 않았는지 살피고, 동시에 옥수수, 고추, 참깨, 감자 등 여러 가지 작물도 키우는 윤인숙 님. 공사장 막노동부터 여관방 청소, 20층짜리 아파트의 전단지를 수거하고 한 층씩 계단과 복도를 쓸고 닦는 아파트 청소를 거치며 긴 세월 서로를 살려 온 이존자 님과 장병찬 님. 인쇄기의 엄청난 소음을 견디기 위해 귓속의 솜털이 없어질 때까지 귀마개를 끼고 일해 온 김경연 님. 공정을 살피며 납기를 맞추고 1원의 오차도 없이 회계를 정리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인쇄소의 회계를 맡고 있는 김혜옥 님. 열아홉 살 때부터 공장에서 미싱 일을 하고, 서울로 올라와 재단사에게 배운 재단 기술로 혼자 세 남매를 키워 낸 이영애 님. 



이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에서 녹아 나오는 전문성, 직업적 자부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힘들고 고달픈 순간도 있지만, '어쨌거나 생을 낙관하며, 그리고 생을 감사'(p.155) 하는 분들. 내가 어떤 노동에 기대어 살고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알고, 구체적으로 존경하고 감사할 수 있어 좋았다. '이웃 어른'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일궈내 온 생명력이, 그분들의 노동에 담겨 나에게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맨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답하고 싶다. 새 마음으로, 새 마음을 먹으며 삶을 꾸려온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고.



#헤엄출판사 #인터뷰집 #북스타그램 #서평 #대체텍스트


(대체텍스트, 사진 설명) 주름진 흰 천 위에 책이 왼쪽으로 45도 정도 기울여져 놓여 있다. 책 위에 하나, 책 왼쪽에 띄엄띄엄 유리구슬이 네 개 있다. 책 표지에는 오래된 미용실이 사진으로 찍혀 있다. 왼쪽에는 커다란 화초가 차지하고 있고, 미용실 벽에는 눈 쌓인 절벽 사진이 들어 간 한 장짜리 12월 달력이 붙어 있다. 달력 오른쪽에는 수묵화 족자가 걸려 있다. 그 아래에는 회색 소파가 있다. 책 표지 위쪽 중앙에는 제목인 '새 마음으로'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가 있고, 아래쪽 중앙에는 '헤엄 출판사'가 분홍색 글자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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