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의 《쓰레기TMI》를 읽고
2020년 겨울, 우리 가족은 연달아 코로나에 걸렸다. 그때는 확진되면 꼼짝없이 열흘 동안 집에 있어야 했다. 동거 가족이 확진될 때마다 격리 기간이 덩달아 늘어났다. 구청에서 보낸 안내장에는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도 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곰이 동굴 밖으로 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듯이, 우리도 집에 들어앉아 날짜를 세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베란다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드디어 이십 일이 지나고, 격리 기간이 끝났다. 마침 아파트 분리수거 날이었다. 남편과 나는 현관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하나씩 옮겼다. 종이가 가득 찬 상자부터 플라스틱을 담은 커다란 쇼핑백, 스티로폼 박스까지, 현관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최대한 배달 음식을 시키지 않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식재료 위주로 주문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플라스틱은 죄다 씻어 밟아 부피를 줄였는데도 여전히 산더미였다.
“엄마, 나도 할래!”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 쌓인 현관을 보며 첫째 아이가 눈을 빛냈다. 나는 어떻게 옮기지 하며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아이는 되려 설레 보였다. 가끔 같이 분리수거를 했는데, 그게 아이에게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나 보다. “그래, 카트 가지고 올게. 넷이 다같이 갈까?” 비닐이 잔뜩 들어있는 가벼운 봉지 두 개는 첫째에게 맡겼다. 둘째도 덩달아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나갔다. 아이 키보다 높게 쌓인 박스가 쏟아지지 않게 조심조심 마대 앞까지 카트를 밀었다. 플라스틱이 담긴 쇼핑백을 내려놓자마자 두 아이는 각자 페트병과 귤이 담겼던 작은 통을 꺼냈다. 그러고는 ‘플라스틱’이라고 쓰여있는 마대에 들고 있던 재활용 쓰레기를 던지며 동시에 외쳤다. “뽈라스틱!”
분리수거는 한참 걸렸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 정도로 모이다니. 다른 주민들도 재활용 쓰레기를 양손 가득 들고나오고 있었다. 마대를 가득 채워가는 재활용 쓰레기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엄마, 그런데 이 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는 거야?” 첫째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나도 잘 모르는데? “음… 엄마가 알아보고 알려줄게!”
책장에 묵혀뒀던 책을 꺼냈다. 읽어봐야지 하다가 미뤄뒀던 책 《쓰레기 TMI》였다. 〈한겨레21〉이 한 가지 주제로 제작한 잡지 시리즈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재활용·음식물 쓰레기가 처리되는 경로, 일반 쓰레기가 소각·매립되는 과정, 세계 각국의 쓰레기 처리 방법, 그리고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와 관련된 부분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하루 플라스틱 생활폐기물 배출량은 1만 1,054.1톤(p.18) 이다. 365일로 환산하면 약 4백만 톤에 이른다. 그중 2019년 가정에서 분리수거 해서 선별장으로 옮겨진 플라스틱은 577,478톤(p.19)이다. 선별장 직원들은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을 손으로 골라낸다. 그렇게 재활용 업체로 전달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이 중 40.63퍼센트인 234,629톤밖에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재활용 비율이 낮은 걸까? 우선 플라스틱의 종류부터 살펴보았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원료에 따라 분리배출 마크를 총 일곱 가지(*)로 나누어 붙인다. 플라스틱 분리수거와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같은 재질끼리 모아서 녹여야 재활용할 수 있는 재생 원료가 된다. 일곱 가지 중 PVC(폴리염화비닐)과 OTHER(기타)는 일반 쓰레기다. PVC 소재는 신용카드와 휴대폰 케이스, 인조 가죽 같은 말랑말랑한 제품에 쓰인다. OTHER는 둘 이상의 플라스틱 성분이 섞였거나, 종이·금속이 코팅된 복합 플라스틱을 말한다. 즉석밥 용기나 치약 용기, 안경, 렌즈 등이 OTHER에 속한다.
(*) PETE(페트), HDPE(고밀도폴리에틸렌), PVC(폴리염화비닐), LDPE(저밀도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PS(폴리스티렌), OTHER(기타)
따라서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하는 PVC와 OTHER를 제외하고 분리수거를 하면, 선별장에서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을 골라내는 데 도움이 된다. 선별장 직원들은 ‘비·헹·분·섞’(p.156)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구고, 라벨 같은 이물질은 제거해 분리하고, 일반 쓰레기와 섞지 않는 원칙이다. 재생 원료로 만들려면 깨끗해야 하는데, 아홉 번 넘게 세척해도 염분이 남아있어 그냥 버려야 하는 재활용품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선별장에서 재활용 업체로 무사히 건너간 플라스틱은 80도쯤 되는 거품 섞인 물로 불린다. 재활용 업체는 플라스틱을 여러 차례 잘 씻은 후 작게 조각낸다. 조각 상태여야 재생 섬유나 페트병 같은 재활용 제품으로 다시 만들 수 있다. 재생 섬유는 이불 속이나 자동차 내장재, 쿠션 등의 충전재로 널리 쓰인다. 일부는 열분해하여 석유·화학원료나 수소 연료로 재활용된다.
며칠 뒤, 나는 첫째와 나란히 앉았다. 《쓰레기 TMI》책의 ‘한눈에 보는 재활용’ 부분을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생활 폐기물 처리 과정을 단계 별로 간단하게 그려 놓은 흐름도다.
“여기 집 모양 있지? 우리가 분리수거하는 거야. 그다음엔 다시 쓸 수 있는 플라스틱만 골라내는 곳으로 보내. 살아남은 플라스틱은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 이제는 깨끗이 씻어서 작게 잘라. 그래야 쿠션에 들어가는 푹신한 실이나 음료수 병으로 만들 수 있거든.”
아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 격리 이전에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제대로 씻어서 버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격리 기간 동안 오래 보관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씻었는데,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니.
분리수거만 하면 제대로 환경 보호한다고 안심하지 않기로 했다. 1950년부터 세계에서 생산된 90억 톤의 플라스틱 중 재활용된 것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 (p.25) 나머지 90퍼센트는 동식물의 몸을 거쳐 지구에 남겨진다. 매년 83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에 버려지고, 12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 위를 떠돈다. (p.83) 호주 뉴캐슬대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매주 신용카드 한 장 분량의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있다(p.85)고 한다.
‘비·헹·분·섞’ 원칙에 따라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쓰레기를 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OTHER라고 표시된 제품은 최대한 덜 사야겠다. ‘재활용 어려움’이라고 표시되어 있거나, 포장재를 과도하게 쓴 제품인지도 잘 살펴볼 거다. 스웨덴의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더 많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p.157) 막연한 기대가 아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동. ‘소확행’을 실천했을 때 행복은 비로소 시작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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