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3년간 플리토에 몸담으며 '뉴아케이드(New Arcade)'라는 서비스의 PO를 지내왔습니다.
플리토는 언어 데이터 사업을 영위하며 다양한 번역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플랫폼 기업으로, 특히 뉴아케이드는 검증된 0.1%의 유저만을 선별하여 운영되는 데이터 구축 서비스입니다. '선별'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뉴아케이드는 배타적 정책으로 인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2023년에만 50억 원 이상의 매출과 수백만 개의 코퍼스 데이터 생산에 기여하며 플리토의 데이터 사업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고품질 데이터의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플리토는 뉴아케이드를 통해 유수의 글로벌 기업에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며 파트너십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프로덕트의 설계부터 운영까지 담당해 왔던 입장에서 어떻게 이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플리토는 일찍부터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에 대해 노하우를 쌓아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번역을 기반으로 한 코퍼스 데이터에 큰 두각을 나타냈는데 이는 '집단지성 번역', '플리토 아케이드' 등 기존 서비스의 흥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같은 강점은 국내외 빅테크 기업들에게 굉장한 매력으로 비춰졌고, 그들과의 수년에 걸친 파트너십을 통해 매우 다양하고 디테일한 니즈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는 이러한 자산을 프로덕트로 녹여내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오랜 설계와 개발 끝에 뉴아케이드가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전문적인 코퍼스 데이터의 경우 업계 내에서 대부분 엑셀 등을 통한 개별 작업으로 생산되어 왔기 때문에 뉴아케이드를 설계할 당시에는 비슷한 레퍼런스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자산인 다양한 번역 서비스 경험과 수많은 프로젝트 운영 노하우를 새로운 니즈와 접목하여, 온라인 인터페이스 상에서 고품질 코퍼스 데이터를 대량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전례가 거의 없는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번역가들은 대체로 프리랜싱 잡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데, 여기서 가장 주요하지만 제대로 충족되지 않았던 니즈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꾸준한 수주 보장, 유연한 시간 활용, 그리고 안정적인 지급입니다. 이들은 프로젝트를 찾아 갖가지 구인 채널을 헤매야 했으며, 건건이 별도의 계약을 체결해야 했습니다. 또한 할당되는 물량과 납기 일정에 의해 상당한 부담을 떠안아야 했으며, 지급 정산이 미뤄져 자금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일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뉴아케이드는 단번의 계약만으로 이후의 모든 프로젝트에 계속해서 참여할 수 있고, 할당량이나 시간에 대한 압박감 없이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또한 플리토 포인트를 활용해 즉각적인 지급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 누적되면 언제든지 출금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프리랜서들은 이전보다 꾸준히, 유연하게, 안정적으로 수익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언어에 따라 데이터 수요가 다르기 때문에 프로젝트 공급이 종종 중단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업이 계속해서 확장됨에 따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지속적인 작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뉴아케이드는 플랫폼 특성상 클라이언트와 작업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이때 작업자를 위한 경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가교 역할을 직접 수행하는 PM(Project Manager)을 위한 시스템입니다. 작업자들은 이미 엑셀이라는 로우-테크(Low-tech) 환경에 익숙한 만큼 기본적인 기능만 제공되면 충분히 적응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프로젝트 데드라인으로 인해 일분일초를 다투는 PM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새로운 방식의 프로덕트를 사용할 여력이 없습니다.
PO로서 이 지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습니다. 직접 뉴아케이드를 사용해 프로젝트를 운영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프로덕트 런칭 후 첫 두 분기 동안 플랫폼 담당 PM으로서 프로젝트의 요구사항에 따라 태스크를 세팅하고 작업자들과 소통하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PM이 느낄 수 있는 불편 지점을 파악하고, 작업자 모집과 운용, 프로젝트 진척도 관리, 데이터 퀄리티 관리 등에서 개선이 필요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우선순위에 따라 개발 가능한 형태로 구체화하여 스크럼팀과 논의하였고 프로덕트에 적용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뉴아케이드는 PM이 반나절의 온보딩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덕트로 거듭났습니다. 또한 그간의 프로젝트 진행 결과, 기존 방식 대비 프로젝트당 투입되는 리소스(내부 인원 및 생산 비용)를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검증되었고, 납품 데이터의 퀄리티 이슈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코퍼스 데이터 프로젝트는 요구되는 언어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현재까지 우리가 다뤄왔던 출발어-도착어 쌍의 가짓수만 백여 개에 달합니다. 생소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쿠르드어, 에스토니아어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들도 존재합니다. 예상되다시피 여러 언어권의 작업자를 모집하고 관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했습니다. 가장 먼저 기존 플리토 유저를 재검증하여 투입시켰고, 그다음에는 소셜 미디어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동시에 온갖 구인 플랫폼에 공고를 등록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자 PM들은 매일같이 링크드인에서 언어 능력자들을 서칭하여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작업자가 아닌, 그들을 불러 모으는 허브(Hub) 역할을 찾아 맡겨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능한 모든 방법을 테스트해 본 결과, 마지막 방법인 허브의 효과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허브를 '리크루팅 매니저'로 명명하며 그 관리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리크루팅 매니저는 플리토 본사와 계약을 맺고 담당 언어들에 대해 작업자를 집중적으로 구인하고 독려하는 일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기 위해 사업팀 내부에 리크루팅 매니저의 채용과 관리를 담당하는 직책을 신설하고, 해당 업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을 프로덕트에 구축하였습니다. 또한 리크루팅 매니저들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릴 수 있는 평가 및 리워드 체계를 설계하여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데이터 생산 속도는 열 배 수준으로 빨라졌고, 그 노고와 비용은 수십, 수백 배 이상 절감되었습니다.
프로덕트 개발의 본질은 상황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뒤집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불편이 너무 당연시되는 나머지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고, 문제를 발견하였어도 도저히 해결 방법이 없거나 혹은 그 어려움에 압도되어 해결할 엄두조차 못 내기도 합니다.
사실 뉴아케이드를 처음 설계할 때부터 위에 열거한 모든 문제들을 인식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서비스에 대한 시장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했고, 돈이 된다는 건 결국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뉴아케이드가 회사의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라면 그 어떤 것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주니어라는 틀에서 벗어나 경영진, 사업팀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비즈니스 상황을 예의주시했고, 프로덕트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반드시 스크럼 아이템으로 가져왔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부서와 직급을 막론하고 미팅에 초대하여 해결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지급 수단 문제를 해결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플리토는 페이팔을 주요 지급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할 수 없는 국가(태국, 터키 등)의 작업자들은 플랫폼을 통해 정산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는 플랫폼을 통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자 하는 회사의 취지 상 장기적으로 큰 문제였음에도 당장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지급 수단을 찾아 적용을 시도하였고,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해외계좌로 송금해 주는 상품을 개발하는 방안을 도출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업팀, 재무팀, 개발팀, 운영팀 등 여러 부서와 수 차례의 논의를 거쳤고, 협력을 통해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그냥, 적당히, 하던 대로 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프로덕트가 뛰어난 성과를 거두려면 이러한 관성을 뿌리쳐야 합니다. 때로는 욕을 먹더라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열정으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담당 PO로서 뉴아케이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당당히 자부합니다. 그 결과 플리토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프로덕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뉴아케이드를 통해 만들어진 데이터는 여러분이 이미 써보셨거나 사용하시게 될 다양한 인공지능 및 번역기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ChatGPT의 등장과 함께 생성형 AI가 모두의 삶에 스며들고 있는 이 격변의 시기에, 그것들의 원재료가 되는 언어 데이터를 직접 생산하며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흥미롭고 도움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기계의 학습 방식이 인간인 제 자신의 학습법에도 많은 참고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이미 플리토를 떠나온 지 한 달이 되는 때입니다. 한 달 동안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니, 3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음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반인공지능(AGI)이 도래할 때까지 사람을 통한 데이터 구축과 모델 업데이트는 꽤 오랜 기간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때까지 애정하는 뉴아케이드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활약하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플리토가 제공하는 고품질 데이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 플리토 데이터랩 방문
뉴아케이드를 통해 코퍼스 번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면? → 플리토 서포트 문의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발판 삼아 세상에 또 다른 가치들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저라는 사람의 본질에서부터 창발 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직접 가치를 만들고, 직접 매출을 일으키며, 직접 성장시킬 수 있는 오로지 저에 의한 일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같은 꿈을 꿔왔기 때문에 직원으로서도 남들보다 큰 열정으로 임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뚜렷한 신념과 열정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시는 모든 분들이 각자가 원하는 성과를 반드시 달성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