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시티뱅크
미국 정부가 시티뱅크를 도산시킬 수는 없어.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살생부가 돌았다. 미국 정부가 은행권 구조조정을 위해 정리대상과 회생대상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왼쪽이냐 오른쪽이냐에 따라 생과 사가 결정되는 말그대로 상생부였다.
정리대상 후보에 시티뱅크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 거론됐다.
뉴욕 특파원 출신의 당시 머니투데이 증권부장이 시티뱅크 투자를 언급했다. 금웅위기 초기 20달러 선이었던 시티뱅크 주가는 살생부가 회자되면서 99센트까지 떨어졌다. 1달러도 안됐던 것이다.
시티뱅크 주가는 현재 40달러 선이다. 결론적으로 시티뱅크는 정리대상 명단에서 빠졌다. 미국 정부는 오히려 시티뱅크에 3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투입해 회생시켰다. 당시 시티뱅크에 상당금액을 투자했던 선배는 적잖은 돈을 벌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직전 수준의 주가만 회복할 때 팔아도 20배의 수익이 가능했던 것이다. 천 만원을 투자했다면 2억 원, 1억 원을 투자했다면 20억 원이다. 당시 그 선배는 수 억원 정도를 투자했던 것으로 들었다.
살생부 유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부실대출이 많았는데 미국 정부가 막대한 구제금융을 실시한 이유는 분명했다.
시티뱅크는 FRB, 즉 미국 중앙은행으로 알려진 주식회사의 대주주다. 2005년 출간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송홍빈의 화폐전쟁에서 밝혀진 대로 FRB는 달러를 발행해 미국 정부로부터 국채를 사주는 비즈니스모델로 달러 발행금액의 6%에 달하는 수수료를 챙기는 회사다. 미국 정부가 시티뱅크의 도산을 방관하는 것은 달러 패권을 거스르는 결정이란 게 당시 선배의 판단이었다.
월저바보 출간 이후 달러의 패권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선배의 논리에 상당 부분 동의했다. 상당 기간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법에 대해 알아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투자할 여력이 별로 없었고 일말의 불확실성 때문에 배팅을 주저했다. 그렇게 또 한번의 기회를 놓쳤다. 확신보다 중요한 게 행동이란 사실을 당시 뼈저리게 깨달았다.
시티뱅크의 부실도 따지고 보면 달러 패권 때문이다. 달러를 비즈니스 모델로 한 때 세계 1위 은행까지 올랐던 시티뱅크가 달러 패권 때문에 도산위기에 처했다는 건 무슨말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남 아파트 투자를 위해 영끌하는 건 왜일까. 내가 샀을 때보다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상품 가격이 오른다는 개념을 우리는 당연시 하지만 그 것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없던 개념이다. 미국에서도 대출로 집을 사는 영끌족들이 판을 쳤다. 대형은행들은 모기지 대출을 부추겨 실적을 쌓았다. 언제 무너질 지 모를 모래성은 달러 패권 위에서 결국 무너졌다. 집값의 거품이 빠지자 집을 팔아도 대출을 못갚는 신세가 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이 터지면서 대형 은행들이 연쇄 도산한 게 금융위기의 본질이다. 달러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하는 시스템의 산물이란 게 IMF 외환위기와 공통점이다. 애덤 스미스와 케인즈가 공범이고, 역대 매국 대통령과 FRB 의장들이 종범이다.
물건 값이 오를 것이기 때문에 그 물건을 사야한다는 개념은 케인즈가 만든 신기루다. 현재 전세계 주류 경제학을 지배하는 개념이지만 그 부작용으로 세계 경제가 현재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류 또한 적지 않다.
케인즈는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소비가 생산을 자극하고 생산량의 증가, 즉 GDP의 증가가 곧 경제성장이다. 소비를 늘리려면 물건값이 시간이 지나면서 상승해야 한다. 현재 FRB가 적정 물가상승률이라고 생각하는 2% 수준으로 매년 상승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다. 물건값이 오른다는 건 현재 사는 게 가장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내년이면 그 값이 올라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선 화폐량을 꾸준히 늘려야 한다. 그래야 상품 가격이 오르고, 그 말은 그만큼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는 의미다. 현재 달러 패권은 케인즈가 만든 반석 위에 설계됐다.
사용을 위한 목적이든 투자 목적이든 소비가 저축보다 무조건 좋다. 열심히 일해 번돈은 시간이 갈 수록 가치가 떨어지는데 부동산을 사두면 가격이 오른다. 차를 내년에 사는 것보다 당장 오늘 사는게 분명히 더 싸다. 부동산 중개업소나 자동차 대리점을 가는 게 은행을 찾는 것보다 현명하다.
70년대 생인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케인지언 환상 속에서 살았다. 중세시대엔 짬뽕값이 100년간 거의 변동이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똑같은 양파와 더 작은 오징어를 넣은 짬뽕값이 20배가 오른 것일까.
지금도 오스트리아 학파는 인플레이션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오히려 발행량이 한정된 건전한 화폐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화폐량을 한정한다는 건 곧 디플레이션을 의미한다. 디플레이션이 되면 사과 하나를 샀던 돈으로 두개를 살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커지고 그들은 행복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케인즈의 환상속에서 산 우리들의 귀엔 영 어색한 논리다. 하지만 케인즈의 환상속에서 우리는 부자가 됐는지, 충분히 행복한 소비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반대의 논리를 힘들더라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눈여겨 보면 오스트리아 학파가 강조하는 발행량이 한정된 화폐, 즉 건전한 화폐의 속성을 가진 자산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내가 시티뱅크란 이름을 다시 떠올린 건 2020년 이 은행이 비트코인 가격이 30만 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을 때다. 보고서가 유출돼 언론에서 앞다퉈 다뤘는데 이는 사실상 FRB가 비트코인을 대체 자산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항복선언문이었다. 2008년 시티뱅크 투자를 권했던 선배가 아니었다면 나는 당시에도 보고서의 주체보다 30만 달러라는 목표치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 내가 비트코인 투자를 결심했던 순간이었는데 그 건 30만 달러란 가격이 아니라 보고서의 주체가 시티뱅크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굴욕감을 줬던 달러 패권이 저물고 있다는 시그널을 감지하고 나는 일종의 복수심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