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투자를 위해 이혼을 결심하다.

5. IMF

by 김창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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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는 국가의 불행이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자존감을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본의아닌 1년 3개월이란 공백은 커리어에 큰 상처를 입혔고, 내성적이고 자존심이 센 편이었던 나는 쉽게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그 것은 연쇄적으로 내 삶을 괴롭혔다.


나는 자연스럽게 달러 패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엔 달러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었다. 외환부족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한 나라, 한 지역, 전세계를 휘청거리게 했던 것일까 궁금했다. 그 것은 병의 원인을 알고 싶은 환자의 심정같은 것이다.


IMF 외환위기는 외채에 의존했던 우리경제의 체질적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체질을 그렇게 만든건 세계화란 거대한 틀 때문이었다. 달러 패권은 지속적으로 달러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야 하는 데 그 시스템 때문에 개발 경제를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단기외채를 빌려 기업들은 연구개발에 투자한 게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다. 동맥경화에 걸린 경제는 체질이 악화되고 결국 거품은 꺼진다. 부동산은 헐값이 되고 만기가 도래한 빚을 갚지 못해 기업들이 연쇄 도산했다. 달러가 급격히 빠져나가고 경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돈을 갚으려고 해도 달러가 없어서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라는 법이다. 달러 부족으로 3년간 중병을 앓은 아시아 국가들은 앞다퉈 달러 사재기를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만든건 조지 소로스 등 헤지펀드 대부들이지만, 그 들이 공격한 국가들에서 이익을 본 건 미국 정부, 정확히 말하면 달러를 보유한 금융자본들이다. 헤지펀드 CEO와 백악관이 모의를 한 건 아니겠지만 세계화의 틀에서 각자가 해야할 일들을 잘알고 그것을 치밀하고 충실하게 이행해 서로에게 이익이 됐다. 암묵적 공모였던 셈이다.


어쨌든 달러는 외환위기 이후 막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이 3조 달러, 일본이 1조 달러, 우리가 4000억 달러 등 아시아 국가들이 6조 달러 가량을 외환보유고란 이름으로 금고에 넣어두어 했는데, 이는 미국내에서 유통되는 달러량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다.


문제는 이 막대한 돈이 사실상 휴지조각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외환보유고는 대부분 미국 국채다. 이 것을 쓰기 위해 시장에 파는 순간 채권 가격이 떨어져 나머지 채권이 헐값이 된다. 중국이 3조 달러를 보유하고도 이를 쓰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은 6조 달러 규모의 쓰레기를 우리와 중국, 일본에 팔아 삼성전자와 소니, 샤오미가 만든 제품을 마구 싸 쓰는 셈이다.


달러는 전례없는 힘을 갖고 있다. 대영제국 시절 영국의 파운드화도 이같이 막강한 힘을 갖지는 못했다.


달러의 힘은 나같은 개인의 삶 하나쯤은 쉽게 흔들었다. 원석 도매업을 했던 아버지 사업은 어음 부도로 휘청거렸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석공업체들의 일본 수출길이 막히면서 만기에 결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1년 3개월 동안 나는 의지할 곳도 취업할 곳도 찾지 못했다. 이른바 SKY라고 하는 명문대 경제학과를 나온 엘리트의 현주소였다. 여의도에 가면 KBS와 MBC, SBS 송출탑이 그렇게 높아보였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오를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복귀한 신문사에서도 나는 마음을 붙이질 못했다. 남아있던 동기들은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고. 뒤이어 들어온 후배들은 내가 선배인지 동기인지 불편해했다. 20여년이 지나고 나서 그 당시 시간의 단면을 잘라보면 참 별일 아니었던 일들이 사사건건 마음에 상처가 되고 결국 멘탈을 붕괴시켰다.


달러 패권은 꿈많고 별 것 아닌 것에 웃던 한 엘리트의 인생을 갈기갈기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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