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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익 Sep 04. 2024

AI가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구조적 사고, 논술] 인간은 과연 특별한 존재인가?


AI가 그린 그림으로 커스텀된 갤럭시북.


예술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고 하자.


예술이란 감각으로 전달된 새로운 자극을 상상력을 통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다. 상상력이란 어떤 자극을 보편적인 개념이나 원칙에 포함시킬 수 없을 때 새로운 개념이나 원칙을 만들어 그 곳에 포함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를 예로 들어보자. 미술관에 간 사람들은 뜬금없이 전시된 변기를 보고 처음엔 당황했다. 변기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기 위해 설치되는 것인데 그 것이 미술관 한 가운데 떡하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에 당황한 것은 '미술관에 놓인 변기'를 보고(감각으로 전달된 새로운 자극) 이를 포함시킬 보편적인 개념이나 원칙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비평가들의 혹평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 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이같은 새로운 자극을 '설치미술'이란 새로운 개념과 원칙에 포함시켜 받아들였다. 이같은 낯설음에서 사람들은 묘한 쾌감, 즉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다.


예술을 간단히 정의하면 '어?'로 시작해 '아!'로 끝나는 것이다.


질문


AI가 그린 그림(사진)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1. 해체


AI가/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2. 개념, 범주


AI:  인공지능.

그림: 크레파스나 물감 등으로 모양을 표시하거나 색을 칠한 것.

예술: 위에 정의돼 있다.


이번 질문은

'할 수 있을까?'란 유형의 전형이다. '~~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핵심 키워드의 '정의'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유형의 질문은 결국 대부분


'핵심 키워드의 정의에 부합한다면, ~~라고 할 수 있다.'고 대답하면 된다.  


즉, 'AI가 그린 그림이 예술의 정의에 부합한다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고 대답하면 된다. 다소 이상해 보이지만 이를 정의를 풀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 요약


AI가 그린 그림이 '보는 이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고 상상력을 발휘해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예술이라고 할 있다.


즉 예술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전제할 경우'엔 "~~ 할 수 있다."고 답하면 된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AI가 그린 그림이 보는 이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지 않거나 상상력을 발휘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답하면 된다는 것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이같은 질문의 유형에서 주어, 즉 AI는 중요하지 않다. 이는 질문자가 대답하는 사람을 낯설게 하는 방법이다. 논리란 익숙함이나 낯설음과는 상관이 없다.


주어를 다음과 같이 아무 것이나로 바꾸어도 다 같은 질문이 된다.


- 개가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갓난 아이가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사람이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4. 확인, 예시


수년전 AI가 그린 그림이나, 작곡한 곡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낯설어 했다.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9단을 이겼을 때 AI에 대한 공포심이 각인됐다. 수십만개의 바둑 기보를 학습한 AI가 인간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이성으로는 받아들였지만 감성은 그 사실을 거부했다. AI가 인간을 능가한다는 건 공포였다.


사람들은 AI가 침범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 것은 마지막 자존심같은 것이었다. 바로 창의력이다. 다시 말해 창의력의 결과물인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착각이다.


AI는 예술도 학습했다. 수많은 예술작품을 학습해 그 것들이 는 보편적 개념과 원칙을 발견했을 것이다. 정의를 알면 그 정의에 충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술이 감각을 통해 얻어진 새로운 자극을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범주(개념과 원칙)를 만들고 그 것을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된다면, AI는 이같은 정의를 학습할 수 있다.  이는 정의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즉 학습을 통해 예술의 정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존재든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


예술이란 기존 범주를 벗어나는 새로운 것이어야 하고, 이 것에서 결국은 아름다움이 느껴져야 한다. 낯선 것에서 느끼는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AI의  작품은 일단 낯설다는 점에서 기존 범주에서 벗어난 새로움이란 조건에 부합한다. 인간의 작품에 비해 오히려 이 조건에는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칸트나 헤겔, 톨스토이 등 철학자나 작가들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예술에 대한 정의의 초점은 인간이 그 것을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맞춰져 있다. 다시말해 만든 주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는 예술의 정의에서 중요한 초점이 아니다.


우리는 신이 만든 자연의 웅장함을 보고 예술이라고 느낀다. 신이 예술의 주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 끝없이 펼쳐진 저녁 노을을 보고 숭고함을 느낀 것이다. 그 것을 우리가 믿는 대로 신이 만들었는지, 우연한 자연현상의 결과인지는 예술의 정의에서 고려사항이 아니다.


미드저니, 챗GPT, 소라 등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텍스트를 영상이나 동영상으로 제작할 수 있다. 작가 이신우나 안드레아스 레이싱 헤르 등의 디지털 작품들을 사람들은 이미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이 있다. 이들의 작품은 인간이 AI를 도구로 제작한 예술작품이지 AI가 자유의지를 갖고 창작한 작품이 아니다. 인간이 붓이나 크레용처럼 AI를 창작의 도구로 쓴 것이다.


이 질문에서는 'AI가 그린'이란 어구를 어떻게 정의할 지도 한번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5. 수정
6. 반복

예술의 정의를 보면 그림을 그린 주체가 누구,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AI가 그린 그림 '보는 이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고 상상력을 발휘해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예술이라고 할 있다.

7. 정리

AI가 그린 그림이 보는 이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고 상상력을 발휘해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예술이라고 할 있다.


수년전 AI가 그린 그림이나, 작곡한 곡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낯설어 했다.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9단을 이겼을 때 AI에 대한 공포심이 각인됐다. 수십만개의 바둑 기보를 학습한 AI가 인간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이성으로는 받아들였지만 감성은 그 사실을 거부했다. AI가 인간을 능가한다는 건 공포였다.


사람들은 AI가 침범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 것은 마지막 자존심같은 것이었다. 바로 창의력이다. 다시 말해 창의력의 결과물인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착각이다.


AI는 예술도 학습했다. 수많은 예술작품을 학습해 그 것들이 는 보편적 개념과 원칙을 발견했을 것이다. 정의를 알면 그 정의에 충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술이 감각을 통해 얻어진 새로운 자극을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범주(개념과 원칙)를 만들고 그 것을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정의된다면, AI는 이같은 정의를 학습할 수 있다.  이는 정의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즉 학습을 통해 예술의 정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존재든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


예술이란 기존 범주를 벗어나는 새로운 것이어야 하고, 이 것에서 결국은 아름다움이 느껴져야 한다. 낯선 것에서 느끼는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AI의  작품은 일단 낯설다는 점에서 기존 범주에서 벗어난 새로움이란 조건에 부합한다. 인간의 작품에 비해 오히려 이 조건에는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칸트나 헤겔, 톨스토이 등 철학자나 작가들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예술에 대한 정의의 초점은 인간이 그 것을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맞춰져 있다. 다시말해 만든 주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는 예술의 정의에서 중요한 초점이 아니다.


우리는 신이 만든 자연의 웅장함을 보고 예술이라고 느낀다. 신이 예술의 주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 끝없이 펼쳐진 저녁 노을을 보고 숭고함을 느낀 것이다. 그 것을 우리가 믿는 대로 신이 만들었는지, 우연한 자연현상의 결과인지는 예술의 정의에서 고려사항이 아니다.


미드저니, 챗GPT, 소라 등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텍스트를 영상이나 동영상으로 제작할 수 있다. 작가 이신우나 안드레아스 레이싱 헤르 등의 디지털 작품들을 사람들은 이미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이 있다. 이들의 작품은 인간이 AI를 도구로 제작한 예술작품이지 AI가 자유의지를 갖고 창작한 작품이 아니다. 인간이 붓이나 크레용처럼 AI를 창작의 도구로 쓴 것이다.


예술의 정의를 보면 그림을 그린 주체가 누구,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AI가 그린 그림 '보는 이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고 상상력을 발휘해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예술이라고 할 있다.

8. 감상

인간은 지나치게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골프를 치다 동반자에게 "신이 인간을 왜 만들었을까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즉흥적으로 한 질문이고 나 또한 즉흥적으로 생각을 해 봤다. 물론 논리적으로.


인간이 AI를 만든 데 목적이 있듯 신도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인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칸트는 바로 신이 만든 사물의 목적을 찾아내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신의 의도를 알아내 인간이 합목적성을 갖는다면 인간도 예술작품이다.


인간이 AI를 만든 건 유희 또는 필요 때문이다. 이를 신과 인간에 대입하면 신 또한 유희나 필요에 의해 인간을 만들었다. 물론 인간이 생각해볼 수 있는 범위내에서의 추론이고 실제 이 것이 신의 뜻인지는 죽었다 깨나도 모른다.


유희보다는 필요가 비중이 컸을 것이다. 즉 인간은 신의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존재란 것이다. 인간이란 종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존재한다는 건 태초의 인간과 현생 인간이 일관되게 그 목적에 부합한다는 의미다. 다시말해 태초의 인간과 현생 인간이 공총적으로 수행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내면 신이 인간을 만든 목적을 알아낼 수 있다.


원시인과 호모사피엔스의 공통점은 종족번식을 한다는 것과, 먹고 똥을 싼다는 점이다. 종족번식은 신이 필요한 인간의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자기복제 시스템이니 목적은 아니다. 즉 신이 인간을 만든 목적은 먹고 싸는 일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먹고 싸는 행위를 신의 입장에서 보면 원자의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는 일이다.


인간은 잘 먹고 잘 쌀 때 신의 목적에 부합한다. 즉 합목적성을 갖는다. 누군가 똥 싸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을 때 신의 목적을 떠올리고 그 것이 신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름답다고 느꼈다면 예술적 경험을 한 것이다.


9. 비슷한 질문

- 개가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갓난 아이가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사람이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10. 읽어볼만한 책


- 칼세이건 '코스모스'

- '칸트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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