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원 Jan 18. 2022

다양성의 가치

다양성은 곧 다양한 시선

다양성이란 가치를 좋아하고 지지합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면, 다양성이 우리를 생존하게 했습니다. 지구상 다양한 생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왔기 때문에 우리 인간 또한 그 다양성의 그물망 안에서 제자리를 찾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다양성의 법칙은 미시적 분자 수준으로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유전자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종 전체의 생존확률이 보장되고, 완벽하지 않기에 생겨난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가 가능했습니다. 우리의 불완전함이 우리를 생존케 한 축복이 되었습니다.

획일과 구분은 명쾌하고 편리합니다. 이건 이래야만 하고 저건 저래야만 된다고 규정짓고 나면 생각하기도 쉽고 판단도 빨라집니다. 일방적인 이분법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행복 외의 모든 감정을 삭제시킨 곳이 있으니 그곳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입니다. "이 땅에 낙원을 약속하는 자들이 지옥을 만든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말입니다. 편하지 않은 것은 불편합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혁신을 일으킵니다.

생명다양성, 문화다양성은 전부터 깊이 고민해온 주제입니다. 전문가들의 어깨 너머로 얼핏 곁들은 수준이지만 고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다양성이란 곧 다양한 시각입니다. 동전의 앞면을 볼 수도 있고 뒷면을 볼 수도 있습니다. 저 산을 A코스로 오를 수도 있고 B코스로 오를 수도 있습니다. 나의 오른쪽에 서 있는 당신의 왼쪽은 다시 나입니다. 방송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하는 예능, 영화 같은 다큐, 배꼽 잡는 드라마. 장르의 도식적인 경계 구분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한밤의 TV연예'는 시사교양국에서 제작했던 프로그램이고, '응답하라' 드라마는 예능 출신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아이돌 대중가수가 뮤지컬 디바가 되었고, 평생 극무대에만 섰던 노배우가 OTT로 TV부문 골든글로브를 받는 세상입니다. 경계와 구분, 편견과 배타를 시대는 조금씩 넘어서고 있습니다. 다양한 입장의 다채로운 관점들이 모여 전에 없던 새롭고 풍부한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깔깔대고 다가 생각해볼 꺼리도 찾으며 우리네 삶의 일면을 반영하고 공감하는 게 방송의 순기능입니다.

뻔한 클리셰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지지합니다. 물론 뭐든지 다양해야만 한다고 집착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다양은 아닐 겁니다. 혼자서 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조화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시선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조화 말입니다. 자연이 그러합니다. 구획선이 따로 없는 컨티뉴어스한 빛의 스펙트럼이 합력하여 아름답고 조화로운 무지개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함께 어울리는 공생의 세상기원합니다. 한번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완벽할 수 없기에 일신우일신합니다. 최소한 시도라도 해봐야 합니다. 작은 빗방울들이 모여 끝내 대양을 이룹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의 구부러진 선》 속 신화와 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