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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Mar 19. 2022

어크로스 더 멀티버스

존 레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1967년 어느 날,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존 레논은 침상에 누워 하루를 조용히 마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소소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폭포수처럼 쏟아진 아내의 잔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고, 혼이 쏙 빠진 존은 아내가 잠든 틈을 타 순간 떠오른 심상을 재빨리 가사로 옮겨 적었다. "천만다행이지 않아요? 노래 제목을 <왜 나만 보면 짖는 거야?>로 짓지 않은 게."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린 정신승리의 우주여행, 철학적 시구와 읊조리는 멜로디가 울림을 주는 명곡 <Across the Universe>는 그날 밤 그렇게 탄생했다.


Across the Universe


Words are flowing out like endless rain into a paper cup

They slither while they pass, they slip away across the universe

종이컵 속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낱말들은 떠다니다 미끄러지듯
우주 너머로 사라져요


Pools of sorrow, waves of joy are drifting through my opened mind

Possessing and caressing me

슬픔의 웅덩이도 기쁨의 파도도
날 소유하고 애무하는 모든 것들이

열린 마음을 타고 표류하네요



자. 여기까진 존 레논 쪽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아내는 첫 번째 부인 신시아 파웰이며, 당시는 오노 요코를 만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 딱 1년 전이었다. 존과 신시아는 리버풀 예대 재학 시절 17살의 나이에 캠퍼스 커플로 만났다. 신시아가 임신을 하자 둘은 결혼했고, 존의 결혼 사실은 비틀즈 활동 초기 비밀에 부쳐졌다. 글로벌 최정상 아이돌의 숨은 부인이라니. 일화에 따르면 비틀즈의 미국 투어에 따라나선 신시아를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서 구름 떼처럼 모인 소녀팬들 사이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고 한다. 존은 종종 폭력을 휘둘렀고 공공장소에서 뺨을 때리기도 했다. 사유를 노래한 음유시인은 동시에 세계적인 외도의 주인공이기도 했으며, 둘 사이에 낳은 친자 줄리안을 죽을 때까지 외면했다.



우리의 기억은 주관적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한다. 일방의 기억은 시간에 따라 편집되고 재구성된 후 실제 그러했다는 믿음으로 강화된다. 인도 여행 후 영적 세계에 (그리고 오노 요코에) 흠뻑 빠진 존으로서는 신시아의 어떤 말도 (어쩌면 가사와 육아에 관한 정당한 문제 제기도) 좋은 핑곗거리가 됐을 것이다. 때마침 꽂힌 아내의 잔소리는 명상훈련의 훌륭한 촉매가 되어줬고, 시공간을 초월해 무한한 불멸의 사랑을 품은 존의 열린 마음은 (가사가 그렇다) 어느덧 사건의 지평선 앞에 쌍소멸 하는 블랙홀처럼 주변 모든 것을 삼켰다. 낫띵스 고나 체인지 마이 월드. 이 얼마나 단호하면서도 아스트랄한 후렴구인가. 나 또한 얼마나 많은 공감과 용기를 이 마법의 문장에서 얻었던지. 세상 그 무엇도 쓰러뜨리지 못할 스스로에 대한 믿음.


하지만 신념과 아집은 깻잎 한 장 차이던가? 마음을 열었다면서도 결국 닫힌 자아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후렴은 마치 듣기 싫은 소리를 피해 귓구멍을 틀어막고 아아아 소리 지르마구잡이 일곱 살짜리처럼 모순적이다. 넌 짖어라 난 내 갈 길 가련다. 가사가 나온 그날 밤 존의 유체이탈적 심리상태는 피오나 애플의 리메이크 뮤직비디오에서 완벽히 형상화된다. 헤드폰을 깊숙이 눌러쓴 가수는 영화 <킹스맨>의 교회 난투 씬 같은 소란스러운 배경을 뒤로하고 혼자만의 우주를 세상 평온하게 노래한다. 귀를 닫으면, 평화는 찾아온다.



유니버스를 신나게 건너는 존 레논에겐 좀 미안하지만, 

오늘날 이론물리학자들에 의하면 우주가 하나(uni)뿐이지 않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인플레이션 이론을 포함한 다중우주 설명에 의하면 많게는 10의 몇백 승 개의 서로 다른 멀티버스의 존재가 계산된다. 단순히 수가 많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매 순간 둘로 나뉘는 평행우주가 끝도 없이 생성 가능하다. 신시아의 잔소리에 명곡을 휘갈기는 레논과 육두문자 잠꼬대로 응수하는 레논이 동시 발생한다는 얘기다. 허황된 SF 같지만 진지한 현대 물리학의 논의들이다.


메타버스란 건 또 어떤가? 

AR VR MR 온갖 가상현실들이 소리 소문 없이 주위를 둘러싸더니 기껏 '이보그' 정도의 공상만화 용어를 구사하다간 유발 하라리 예언 속의 신 기계인류 '호모 데우스'에게 쌈 싸여 먹히게 생겼다. 육신은 썩어도 업로드된 의식 자체로 되살아난다는 영화 <트랜센던스>를 생각해보라. 아톰(atom/원자)에서 비트(bit/디지털 소자)세상 근원이 바뀌는 미래 세계. 따로 빨간 약을 먹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매트릭스의 진실에 바짝 다가섰는지 모른다. 진실이라... 진실이 도대체 뭔데?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아도 어딘가 시스템 안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있 정보?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어쩜 우리는 존 레논의 기대와 달리 across the universe 있는 모든 상식을 기초부터 갈아엎어야 할지도 모른다. EVERYTHING's gonna change our world. 물론, 우리의 알량한 기억 쪼가리들을 포함해서.



그래서 결국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기억을 부정해야 할까? 어차피 먼지 되어 사라질 부질없는 편린들일까? 난 그 답을 존과 신시아의 사랑스러운 한때에서 찾는다. 풋풋한 열일곱 존이 신시아에게 직접 그려 선물한 귀여운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라. 저 스트로크, 터치, 삐뚤빼뚤한 하트 밑에 가득 깔린 떨림.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성탄절이 아녔으면 좋겠어" 와우, 이거야말로 정말 진짜배기이지 않은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유지태의 반문도,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권상우의 절규도, 우리 마음 깊은 구석 자리 잡고 있는 감정의 유통기한 그 해묵은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유통기한도 먼저 제조일자가 있었기에 존재하는 것을, 왜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을 따지는가? 기왕에 변해버릴 거라면 반대로, 지금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을까? 한쌍의 원앙처럼 (부부금슬의 상징인 원앙은 실제로는 천하의 바람둥이다) 사랑은 늘 뜨겁고, 감정은 항상 변하며, 기억은 언제나 기억하는 이의 몫으로 남는다.


사랑에 있어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사랑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영원한 사랑진실임과 동시에 거짓이다. 문제는, 지키지 못할 영원을 약속한 섣부름이 아니라 '순간의 영원'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유일한 찰나'를 의심하고 올곧이 누리지 못했음이다.


사랑은, 하고 있을 때 영원하다.

사랑은, 간직한 자에게 기억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지금 바로 이 우주다.

Jai Guru Deva Om.

(오, 선각자여 깨달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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