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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May 15. 2022

You ate my everything

휴대폰의 QWERTY 영문 자판을 투박한 엄지로 재빨리 누르다 보면 자주 쓰이는 알파벳의 옆자리 문자가 잘못 찍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예를 들어 h 대신 g라든가 i 대신 o가 찍히는 것 말이다. 그런 교차 오기 중 빈번한 것이 r과 t의 관계인데, 얼마 전에 "You are my everything" 을 눌렀는데 "You ate my everything" 찍혀 나와 있었다. "넌 나의 모든 것" 닭살 멘트가 " 날 잡아먹었어" 호러 멘트로 탈바꿈한 것이다. 우스운 꼴이 됐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강렬하면서도 오히려 더 적확한 표현이 아닌가 싶어졌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한 몸이 되고자 연인의 사체를 조금씩 뜯어먹는다는 다소 엽기적인 설정의 《구의 증명》 같은 처절한 연애소설도 있는데, 꼭 물리적으로 아니어도 나의 모든 관심과 애정과 시간과 노력을 장악한 상대가 사실상 내 전부를 '먹어치웠다'라고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닐 싶다. 일전에 쓴 노래 중에 다비치가 부른 <You Are My Everything>이란 곡의 벌스 2에 "그런데 여전히 넌 내 안에 살아있어 / 사랑한다 내게 말하던 / 그대 숨결 내 귓가에 아직 남아 있어"라고 쓰곤 후렴에서 "touch me", "kiss me" 해가며 "you are everything in my life"로 간절한 호소의 클라이맥스를 찍었더랬는데, "you ate everything in my life(니가 내 삶을 몽땅 삼켜버렸어)"로 치환해도 전연 위화감이 들지 않겠다. 노랫말이란 게 의미만큼이나 순풍 타듯 혀에 착착 감겨 넘어가는 연음이 중요하기에 "유리띵~"에 비해 "유에잇테 브리띵~" 딱딱한 음운이 하나 더 들어가는 흠만 빼면 말이다. 여기서 잠깐. 주어먹는 행위가 과거의 특정 시점이 아니라 지속된 기간에 걸쳐 자행된 것이니 문법적으로다가 단순 과거 고 have+p.p 완료 시제를 써서 "유 해드 이튼 에부리띵~"이라고 해줘야 쓰겠다는 깐깐한 지적은 정중히 사양하겠다. 중요한 건 퀸의 <투 머치 러브 윌 킬 유>처럼 영혼까지 담보 잡힐 각오로 올인 베팅하는 진짜 찐 사랑꾼의 히든카드가 뻑수가 될 수도 있다이쪽 판의 오랜 진리일 것이다.  나온 김에 이쯤에서 오랜만에 명곡 한번 들어볼까?


다비치 <You Are My Everything>


오타 얘길 하다가 작사법에 영문법을 거쳐 도박판까지 흘러갔으니 이만 딱히 더 할 말은 없어 급 마무리는 하겠으나, 좌우지당간 아와 어는 확실히 다른 법이어서 '학실'한 발음으로 유머집 《YS는 못 말려》까지 히트 쳤던 과거 모 대통령의 “제주도를 대표적인 강간(관광)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웃지 못할 촌극도 요즘 같아선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할 노릇이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게 많은 시절이다. 음성인식 기술 발전으로 웬만한 중얼거림도 AI가 야무지게 텍스트 변환해주는 세상에 투박한 엄지 독수리 타법부터 재고해야 하는 걸까. 아님 박완서 선생의 당신 수수한 표정 같은 육필 원고나 폴 오스터의 50년 된 타자기처럼 아날로그의 스킨십을 잡고 놓지 말아 볼까. 원고지에 필사해 본 지도 오래됐는데 그러고 보니 요즘 친구들은 '화이트'도 모르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나마 수정액 '화이트'도 찐득하니 찌꺼기 남는 액상형에서 테이프형으로 상위 호환되어 OMR 카드 시험장에서나 필요한 유품으로 취급되지 않는지. 펜 안 쥐어 버릇한 지 오래라 담당 뇌 시냅스들이 애진작에 뉴미디어형 보직으로 재배치됐을 테니, 제법 예뻤던 내 손글씨도 디지털 폰트에 '먹혀'버려 언제부턴가 재연하기가 영 어설퍼졌다. 아하, 그래서 사람들이 캘리그래프라는 데 또 빠지는 건가 보다. 그리고 그걸 다시 사진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반복 순환 반복. 알을 티로 잠시 삐끗하는 바람에 불현듯 모눈종이에 습자지, 먹지까지 쌍팔년도 문방사우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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