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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Jun 23. 2022

비 듣는 밤

<비 듣는 밤>

이런 밤은 잠의 신 힙노스에게 굴종하기 아쉬운 밤이다. 그와 늘 함께 다니는 쌍둥이 형제 타나토스가 죽음의 신임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빗소리에 취해가는 의식이 잠의 테두리를 빙빙 선회하며 농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쏴- 하는 소란한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단순한 소리 이상이다. 그것은 살갗을 서늘히 훑는 바람과 인중에 촉촉이 닿는 습기의 합을 밑으로 하고, 기분 좋게 비릿한 비 내음을 진수로 삼는 천연의 로그함수다.


1964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빗방울이 지면에 떨어지면서 튀어나온 흙 속의 냄새 분자들이 에어로졸 형태로 풍기는 이른바 '페트리코'가 비 내음의 정체로서…


 … 됐고. 


아무렴 소리란 것이 공기를 매개로 한 파동이 고막의 진동으로 치환된 것일진대, 온도와 습도, 냄새마저도 결국 다 기체 분자들의 상호작용인 것을, 먹으면 졸린 것처럼 자명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럼에도 왠지 그런 기계적인 논해만으론 이 신비한 나른함을 설명할 길이 없다. 분명히 서늘한데 포근함은 어째서이며, 분명히 소란한데 평안함은 또 무엇인가? 왜 난 어려서부터 비 오는 밤만 되면 아득바득 창문을 열고 맞바람을 아가며 고뿔에 걸리려느냔 어머니의 핀잔과 염려를 샀던가? 그렇게 습윤한 대기의 떨림을 초여름 차렵이불처럼 휘감은 어린 나는, 어느 처마 밑 정처 없어 거적데기 하나 꼴랑 걸친 떠돌이 아이가 되어, 낙숫물에 귀를 온전히 맡긴 채 상상 속 녀석에겐 절대 허락되지 않은 소중한 현실  포단을 턱 끝까지 당겨 덮곤 했다.

돌이켜 보면, 그게 이유였나 싶다. 오지만, 맞지 않음. 듣지만, 들리지 않음. 깼지만, 어느새 잠듦. 그렇게, 적당히 날 잊음.

그땐 맞던 것들이 이젠 틀려도 이상할 것 없는 세상이다. 그땐 하지 않아도 됐었을 고민들이 이제 한가득 귓속을 울린다. 오늘도 거리에, 비가 몹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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