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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er Lee May 06. 2022

21년 9월 둘째 주

카공족

9월 6일 월요일


설이 모닝 청소를 하고 있는 중에 온 손님 욱이 나보다 먼저 카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 회원가입도 하고 차를 두 잔이나 마시면서 카공족처럼 노트북과 책을 꺼내 놓았다. 손님도 없고 넓고 쾌적한 이곳은 홀로 와서 공부를 하기에는 손색이 없다.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건 장사가 안 되는 건데, 조용한 곳을 찾는 손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긴 하다. 일을 마치고 나가면서 욱은 다시 와도 되냐며 굳이 물어보고 퇴장했다. 이건 꼭 초등학생이 엄마한테 ‘나 똥 싸도 돼?’ 하고 묻는 거 같다. 언제나 대답은 ‘그래’라고 할 수밖에 없는 뻔한 질문. 정말 욱은 오후에 다시 와서 차와 케이크를 먹었다.  


점심 무렵에 온 색소폰 동호회 남자 4인방 손님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연주 동영상을 크게 틀었다. 카페 배경으로 깔린 연주음악이랑 이상한 조합을 이루었다. 다행히 손님이 오니 음악을 꺼주었다.


작년 추석 즈음에도 단골장이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이런 명절이 다가오면 명절 전 대략 2-3주가량 손님 왕래가 많이 줄어든다고. 자동차 부품 회사랑 명절은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런 경험 통계치는 믿을 만하다. 코로나 여파가 이어지고 곧 명절이 다가오는 이중 강타를 맞은 카페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9월 7일 화요일


한 가닥 떨어져 나간 거품기 날을 굳이 써보겠다고 반죽기를 돌리니 바로 문제의 그 한 가닥이 다시 떨어져 나갔다. 소비자는 맘껏 신나게 기계를 돌리다가 부품을 또 구입하고 또 신나게 쓰다가 또 부품을 사는, 부품 소비로 먹고사는 회사의 덫에 걸려들었다. 그것이 바로 경제 선순환 구조가 된다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미 그 반죽기 날을 버리려고 맘먹고 있는데 설이 그걸 잡고 씨름을 하더니 결국 잘 껴서 고정을 시켜놓았다! 다시 또 빠지면 이번엔 진짜 버리는 걸로~


비가 오락가락, 날은 우중충하고 바람이 불어 긴 팔을 꺼내 입었는데, 일하다 보니 옷이 덥다. 카페에서 차 마시는 사람 차림으로 일하러 왔던 거다. 아직은 여름이 가지 않았다. 여전히 에어컨도 켜 놓아야 한다.


어제 왔던 욱이 다시 와서 카공족이 되어있었다. 조용했던 어제와는 달리 포토박과 황선생 거기에 단골장까지 모여 있었기 때문에 오전 카페가 조금 시끄러웠다. 남자들이 의외로 수다스러우면서 게다가 볼륨마저 높다. 그런 와중에 개와 함께 산책하던 임이 들어왔다. 언젠가 꼭 반려견과 사진을 찍고 싶어 스튜디오가 낯설지 않도록  산책 길에 항상 들른다는 임. 사진 찍을 그 ‘언젠가’가 과연 올 것인지 의문이다.  


건축사 사무실을 다녀온 황선생과 포토 박이랑 함께 황선생의 최애 음식 메밀국수를 먹으러 가는 길, 어떤 카페 창문에 ‘임시휴업’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우중충한 하늘 아래 그 네 글자가 남일 같지 않아 우울하고 쓸쓸하게 보였다. 그에 걸맞게 비가 처량하게 왔다.


9월 8일 수요일


오랜만에 맑게 갠 하늘. 이제 정말 가을 같은 날이다. 흰자가 많이 쌓여가는 와중, 정말 오랜만에 마카롱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만들어서 그런가 마카롱 꼬끄 윗면이 터지고 갈라지며 난리가 났다. 그런 실패작들은 늘 의욕을 떨어뜨린다.


손님이 줄어드니 케이크가 자꾸 쳐진다. 오래되어가는 스콘과 치즈 케이크를 쓰레기통으로 보내버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손님에게 ‘시원한 거 드릴까요, 따뜻한 거 드릴까요?’라고 물어보았다.

 

9월 9일 목요일


명절이 다가오면 항상 초록 향 냄새가 도로에 그득하다. 풀들이 잘려나가며 내뿜는 비명. 예초기를 맨 일용직들이 도로에 많이 보인다.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단골장이 명절날 직원들에게 보너스도 주고 선물도 줘야 하지 않겠냐며 나에게 압박을 가했다. 안 그래도 과일세트를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옆에서 또 그렇게 부추기면 하고 싶던 것도 하기 싫어지는 묘한 반발심이 생긴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으니 신경 끄라고 하고 싶었으나,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묵묵부답했다.

 

바느질 모임인데 회원들이 다들 일이 있어서 달랑 한 명만 왔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새로 생긴 버거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어제에 이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사람에게 ‘차가운 거 드릴까요, 뜨거운 거 드릴까요?’를 또 물어보았다. 뭐 이런 되지도 않는 실수를 매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후에는 카공족 2호 욱이 와서 공부를 했다. (그는 오늘 하루 동안 아메리카노 2잔, 오미자차 한잔,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 그동안 카공족 1호로 공부하던 오가 시를 써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오후 5시 반 이후 손님이 전혀 없었다.


9월 10일 금요일


다시 비가 조금씩 내린다. 출근 전 즐겁게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카드로 돈을 충전받았다. 지난주 토요일 종업원 최 대신 오후에 일을 했던 설이 오늘 쉰다. 오랜만에 여유 없이 속력을 내어 차를 몰고 조급하게 도착했다. 누군가 먼저 일을 하고 있는 상황과 내가 가서 오픈 전에 정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상황은 많이 다르다.


인근 지역으로 출장을 나가는 단골장이 내가 도착하자마자 들어와서 뜨거운 커피와 차가운 커피 2잔을 테이크 아웃했다. 베이킹은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모든 케이크는 준비가 완료되어 스콘만 구웠는데 결정적으로 단골장이 다녀간 이후 손님이 뜸했다. 12시 반을 넘기자 연령대 폭이 상당히 있는 6명의 여인들이 음식 냄새를 풍기며 입장했다. 6잔의 다양한 음료 주문을 받고 준비를 시작할 때 케이크를 추가 주문했다. 음료와 세 가지 종류 케이크를 담아 주었는데, 일행 중 한 젊은 여인이 케이크가 너무 맛있다며 티라미수 한 조각을 다시 주문했다. 홀케이크 주문도 가능한지 물어보았는데, 이틀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오랜만에 케이크에 관심 있는 손님을 만났다.


오른쪽 종아리 안쪽에서부터 발까지, 쑤시는 듯한  찌릿함을 느꼈다. 아침마다 30분씩 걷고 있는 것으로 조금은 건강에 신경 쓰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게 또 무슨 날벼락인가 싶다.  


9월 11일 토요일


바닐라라테 아이스를 즐겨 먹는 성이 왔고 이어 2호 카공족 욱이 자리 잡았다. 음료를 가져다주며 보니, 물리과목을 인강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아마도 수능 준비를 하는 재수생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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