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백신
9월 27일 월요일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 카페 쇼케이스가 완전히 텅텅 비었다. 이렇게 케이크가 깨끗하게 팔린 건 정말 오랜만이다. 매출 현황을 보니, 일요일 매출이 몇 달 만에 최고를 찍었다. 이것이 다 ‘재난지원금’의 효과가 아닐까. 쿠키 반죽 얼려놓은 것도 다 떨어지고, 스콘 반죽해 놓은 것도 다 써버리고, 케이크는 하나도 없고 마카롱은 5개만 남아있는 상태. 죽도록 또 반죽기를 돌리고 오븐을 데우는 일만 남았다. 이런 월요일이 가장 바쁘다.
오른쪽 다리의 저림, 어깨 뭉침과 거북목 현상이 고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어제 우연히 본 자세 요정 유투버의 영상은 정말 획기적이었다. 몸이, 몸이 너무너무 가벼워진 것이다. 매일 저녁 자세 요정과 함께 늙은 몸을 돌봐야겠다.
9월 28일 화요일
설이 겨울 메뉴로 생강청을 제안했다. 일부 단골의 경우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데 그들의 입맛에 맞을 만한 메뉴로 딱이라 생각을 했다고. 생강을 편으로 썰어서 설탕에 재는, 일반 청 만드는 것과 동일한 과정인데, 울퉁불퉁한 생강 껍질을 칼 끝으로 잘 까서 그걸 또 편평히 썰어내는 작업이 한순간 머릿속을 지나간다. 아.. 너무 힘들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사서 먹는 거다. 내가 바로 그걸 만들어서 팔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어르신 4명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설이 포스기에 달고나 카페 라테로 계산을 했다. 이 똑같은 상황을 내가 언젠가 본 기억이 난다. 일종의 기시감. 그때도 어르신 4명이었고 주문과 다르게 계산을 했었다. 그때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말하지 않았는데, 주문이 다 나가고 계산도 끝난 후, 궁금증이 가시지 않아 물어보았다. 결론은 단순한 설의 계산 착오였다는 놀라운 사실! 이미 손님은 떠났고, 돌려줘야 할 차액은 포인트로 넣어두었다. 다음에 그 손님들이 오면 계산 실수를 이야기해 줘야 한다.
9월 29일 수요일
음료를 주문할 때마다 샷 추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갔던 유가 그동안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고 다른 음료를 추천해달라 했다. 당연히 본인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매번 가져갔던 그 커피 음료는 직장 상사의 것이었으며, ‘그’ 혹은 ‘그녀’의 말을 전하고 있다는 걸, 게다가 직장이 그렇게 가깝지도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 본인이 마실 음료도 함께 구입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마실 시간이 없어서’ 자신의 음료는 살 수가 없다는 말이 오늘따라 짠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설이 특히나 유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겼다.
그동안 쌓인 계란 흰자가 나를 자꾸 압박한다. 조금만 더 냉장고에 자기를 내버려 두면 몸도 마음도 상해버릴 거라고 협박하고 있는 거 같아 마음을 다 잡고 마카롱 만들기에 돌입했다. 마카롱은 반죽기가 있어 힘이 덜 들기는 하지만, 말리고 굽는 과정이 길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좋은 오븐 하나만 있으면 여러 판을 한꺼번에 구울 수 있어 편리하기에, 지원해주는 사업비로 비싼 오븐을 사겠다고 지금까지 미련하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올해 지원사업은 모두 촬영용 컴퓨터 구입으로 끝나버려서 더 이상 비싼 오븐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문득, 비싼 오븐 말고, 지금 쓰고 있는 저렴한 오븐이 하나 더 있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래, 결심했어! 오븐 하나 더 놓을 장소도 있으니 새로 오븐을 사야겠다.
9월 30일 목요일
2차 백신을 맞았다. 밤에 온 몸이 욱신욱신 거리는 몸살을 느꼈다. 약을 먹고 잠을 잤다.
10월 1일 금요일
지역 청년커뮤니티 활성화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팀이 있다. 올해 초 쿠키 대량 생산의 연결고리를 했던 훈이 그곳에 있고 거기서 기획한 텀블러 사용 할인 이벤트에 읍내 다른 사업장들과 함께 우리 카페가 참여하게 되었다. 오늘부터 보름 동안만 텀블러를 가져오는 고객에게 500원의 추가 할인 혜택을 준다. 텀블러는 다들 가지고 있지만, 그걸 챙겨서 들고 나와 음료를 받아 마시고 다시 집으로 가져가서 깨끗이 씻어 놓는 일까지 끝내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그런 일련의 과정까지 마쳐야만 진정한 제로 웨스트에 힘쓰는 환경운동가일 것이다. 기획팀에서 할인행사를 알리기 위해 세워두는 입간판도 제공하고, 테이블에 올려두는 메모판도 2개를 주었다. 싸구려 같지 않아 맘에 들었다.
오후부터 또 근육통 같은 감기 증세가 찾아왔다. 약을 먹고 잠을 잤다.
10월 2일 토요일
설이 없이 오전 근무를 할 때는 최소한의 베이킹만 하고 카운터 일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은 쉬어가는 하루를 만들고 있다. 카운터 안쪽에 놓인 바 의자에 앉아 장부를 정리하거나 일기를 쓴다. 오늘도 어김없이 어제 수입지출을 정산하려고 커피를 한 잔 만들어 바 의자에 앉았다. 장부와 통장을 넣어둔 가방을 올려놓을 데가 없어 바로 뒤쪽 쓸모없는 팥빙수 기계 옆 상판 위에 두었다. 장부 정리를 끝내고 다시 장부와 통장을 가방에 넣기 위해 몸을 반쯤 뒤로 돌려 가방을 집어서 가져오다가 손등을 팥빙수 기계 모서리에 콕 찍히고 말았다.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두변으로 하는 삼각형을 만든다면 바로 꼭짓점에 위치할 그곳에 빨간 점이 생겼다. 흉물처럼 남아있는 기계에 다치고 보니 더 꼴 보기 싫어졌다. 공짜로 가져가라고 당근 마켓에 올려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물건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