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ker Lee May 20. 2022

21년 10월 첫째 주

병원 탐방기

10월 4일 월요일


대체공휴일. 백신 맞고 근육통에 시달리느라 며칠 동안 못했던 아침 걷기 운동을 했다. 요가와 운동을 하고 있는데도 오른쪽 저림 증세가 나아지질 않는다. 정말 가기 싫은 병원으로 조만간 가봐야 할 거 같다.


어제 커피머신 오른쪽 추출구가 새는 것 같다고 사용을 하지 말라는 종업원의 톡이 왔었다. 제발 어떻게든 빨리 조치를 취해서 돈 많이 잡아먹는 이 커피 기계가 고장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커피머신을 새로 사기에는 형편이 좋지 않으므로.


10월 5일 화요일


오전에 케이크 시트 2개를 구워놓고 병원으로 갔다. 다리 저림은 어느 과에서 진료를 받을지 몰라 접수받는 직원에게 물었더니 신경과로 안내했다.


신경과 의사 왈, 작년에 내가 오른쪽 다리 때문에 진료받은 흔적이 신경외과에 있고 본인 생각에 신경외과로 가보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그쪽으로 나를 사뿐히 넘겼다. 다시 신경외과에서 기다리다가 진료를 받았다. 작년에 왔을 때도 뭔가 신통한 소리는 못 듣고 그냥 왔다 간 기억이 있어서 감이 좋지 않았다. 복숭아뼈 부근의 찌릿한 느낌이 여러 번 계속되더니 이제 발등과 발 부근이 전체적으로 저린 증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의사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통증이라면 잠깐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다리 전체 마비 증상이 있지 않으니 그 정도 증상으로 디스크 검사를 하는 건 맞지 않다는 것. 일반적인 근육통 관련 약을 먹어볼 거라면 약 처방은 해줄 수 있다고. 조금 더 지켜보다가 증상이 더 심해지면 다시 오기로 하고 약은 안 먹기로 했다.


역시나 찜찜한 설명을 들은 후  즉시 한의원으로 갔다. 한의원도 작년 비슷한 시기에 다리 때문에 진료받은 기록이 있어 그걸 참고하여 의사가 내린 결론은 나에게 몇 번 몇 번 허리디스크 증상이라 했다. 허리 디스크라면 병원에서 사진을 찍어봐야 하지 않는지 물었더니, 치료를 해보다가 심해지면 찍어보라고 한다. 내가 괴로운 부분은 무릎 아래 발과 발등 부분인데, 허리 쪽이 원인이라고 하니 엎드려서 허리부터 발까지 침을 맞았다. 두 가지의 다른 판단으로 혼란스러웠다. 대도시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진료를 받아야 뭔가 확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지방 작은 읍에 살아서 가장 불편한 것은 병이 생기면 믿음이 가는 의사를 만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들도 본인 지식을 이용하여 나에게 얘기해주는 것일 텐데 환자가 느끼는 이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 카페를 공사할 때 수도 배관 보수를 했던 분이 가족사진을 찍겠다고 포토박에게 연락이 왔다. 읍내 큰 교회를 아주 열심히 다닌 교인이면서, 취미로 사진도 찍는다던 그는 공사를 할 때부터 사진 스튜디오가 생긴다는 말을 듣고 손주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러 오겠다는 말을 계속했었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사진 예약을 대수롭지 않게 받으려고 했는데, 본인이 암에 걸려 얼마나 살 지 모르겠다고 말했단다. 사진 1컷 가격을 듣고는, 이렇게도 찍어야 하고 저렇게도 찍어야 해서 여러 장이 필요한데 그러면 돈이 많이 들 것 같으니, 어떻게 좀 싸게는 안 되겠냐며 가격 할인을 요구했고, 항암치료로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다는 말을 덧붙였다고. 암에 걸렸는데 사진 가격이 비싸다고 하는 사람을 찍어야 하는 일이라니. 찍는 사람도 참 안 내키는 일이다. 어쨌든, 예약은 했다.


10월 6일 수요일


읍 근처, 바다가 보이는 횟집은 전망이 좋은 카페로 바뀌었다. 읍내 한정식이었던 가게는 ‘전국 최대 규모’ 카페에서 ‘군 최대 규모 카페’라고 플래카드를 교체하면서 한창 공사를 하고 있다. 면 소재지에서는 아빠와 딸이 넓은 대지에 정원을 가꾼 카페가 절찬리에 운영되고 있다. 인스타에서 소개하는 카페는 규모가 크거나 해외 감성 인테리어를 꾸몄거나 전망이 근사한 곳들 뿐이다. 코시국 사람들은 집안에 박힌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점차 수도권을 벗어나 탁 트인 공간과 넓은 자연을 품는 곳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렇게 늘어가는 카페를 보며, 거기서 빵을 만드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넓은 공간을 빵과 케이크로 진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베이커리가 어깨 뭉침과 하지정맥을 보유하고 있을까.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카페를 찾아간다.    


10월 7일 목요일


셋째 초등학교 운동회날이다. 세 아이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설과 함께 카페를 종업원 최에게 맡기고 운동회를 보러 갔다.

흙바닥 운동장이 있는 학교에 줄줄이 만국기렸다. 교직원을 위한 자리는 앞쪽에, 학부모들을 위한 자리는 뒤쪽에 만들어두었다. 예전 같으면   있는 학부모들 모두 모여 함께 달리기도 하고 줄다리기도 참여했는데, 이제는 신청한 학부모 10명에 한에 구경할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의자도 듬성듬성, 수다를 떨기도 모호한 자리배치. 그래도 운동회가 열리는  자체에 의의를 두며 즐겁게 구경하였다.


전통적으로 운동회는 선생님들이 준비하고 경기 진행도 해왔었다. 그러다 작년, 전문 진행 업체를 불러 운동회를   선생님이 편리함을 맛보았다. 돈이 좋다는  알게  것이다. 결국 올해도 전문 진행 업체가 운동회를 지휘했다.  도시에서 왔던 작년팀과 달리, 이번에는 지역에서 몇십 년째 닳고 닳은 진행 업체가 왔다는 것이 다른 . 역시나, 진행 솜씨가 너무 촌스러워 짜증이 올라왔다. 운동회 내내 아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게임에 참여해야지, 응원해야지, 이기면 이겼다고 방방 뛰어야지, 지면 사회자에게 아부를 해서 보너스 점수를 달라고  방방 뛰어야 했다. 학부모에게도 댄스를 요구하는, 미칠듯한 꼰대 진행에 지쳐갔다. 이어달리기를 끝으로 운동회가 막을 내렸다. 지난 5년간 청팀은 매번 지기만 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졌다.


10월 8일 금요일


이틀 전에 주문한 청귤이 왔다. 잘 나가는 계절 음료인 청귤청이 점점 사라져 한 병만 남아있는 걸 보며, 지금도 설마 청귤을 팔고 있진 않겠지 하며 지레짐작으로 외면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청귤이 나오고 있다는 걸 이틀 전 알아버렸다. 처음 청귤 과즙 색깔이 연한 노란색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익어버려서 주황색에 가까운 진한 노란색이 되어 있었다. 오전 중에 도착해서 설과 함께 만들었다.


쿠키 주문이 들어와서 미리 반죽을 마쳤다. 내일부터 월요일까지 휴일이라 설과 범, 두 직원들은 쉰다.  


10월 9일 토요일


남자 친구 생일을 맞아 인근 시로 쇼핑 및 데이트를 나가는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질투가 우습다. 이미 남자 친구에게 준 생일 선물이 핸드크림이라는 걸 알고 손 잡을 때 대비한 것이냐며 심통을 부렸다. 이번 외출 건은 아빠에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내가 얘기하는 바람에 알게 된 일. 계속 이런 식으로 삐딱하게 말한다면 아마도 딸은 아빠에게 데이트 일정을 꼭꼭 숨기고야 말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1년 9월 다섯째 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