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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er Lee Jul 18. 2022

22년 1월 넷째 주

명절을 기다리며

1월 24일 월요일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서울 올라가기 6일 전. 1년에 딱 두 번, 맘 놓고 쉬는 기간이 명절.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려지는 건 내가 너무 지쳤다는 증거. 아무것도 하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카페 명절 대비를 해야 하니 케이크 시트를 만들었다. 정말 정신이 어디로 갔는지, 케이크 반죽을 하다가 녹인 버터를 섞지 않고 그대로 오븐에 넣어버렸다! 이런 실수는 난생처음. 마음은 벌써 서울로 달려가고 있구나. 쯧

 

1월 25일 화요일

 

우중중한 아침에 출근하니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우울한 날에는 다들 카페에서 만나나 보다.  미리 반죽해 둔 쿠키를 굽고 있는데, 그 냄새를 맡고 주문이 하나 들어왔다. 쿠키를 식히고 있는데 또 다른 손님이 한 봉지를 또 주문했다. 이로써 두 번 굽고 두 봉지가 그대로 팔렸다. 재료와 시간에 비해 마진이 크지 않은 쿠키. 굽는 날은 냄새 때문에 금방금방 팔린다.


매일 와서 바닐라라테를 주문하던 청소년 윤은 이제 건강을 챙기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생과일주스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동안 매출이 없어 드문드문 구입을 했던 과일. 떨어지기 전에 빠릿빠릿 사놔야 한다. 라테보다 만드는 공정이 몇 가지 더 들어가니 조금 귀찮아지긴 했다.


집 터에 흙을 다져 넣었다.


1월 26일 수요일


회계사에서 연말정산에 대한 안내자료를 보내주었다. 간소화 절차에 따라 내 자료를 다운로드하러 홈텍스에 들어갔다. 배우자 정보를 제공하는데 동의하기 위해 인증서가 필요했다. 스마트한 기기에 조금 느린 옛날 사람이라 은행에서 발급하던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남편 인증서 유효기간이 이틀 지나있었다. 내 인증서도 곧 끝나가고 있고. 이참에 스마트한 인증서로 갈아타야 할 때. 다시 새로운 길을 물어물어 가야 한다. 아.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린다.


단골장이 왔다. 3일만 있으면 설 연휴 시작이라고 엄청 기다리고 있었다. 본인도 이러고 있는데 직원들은 또 얼마나 휴일을 기다리고 있을까 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 심정, 내가 알지. 유난히도 명절이 기다려지는 날들. 명절이니까 직원한테 돈을 더 얹어서 주라고 툭 말을 내뱉는다. 카페 사정이 뻔한 걸 아는 설은 ‘제발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라고 해봐야 세명이지만- 상여금을 챙겨주려고 이미 맘을 먹었고, 그렇게 월급명세서를 작성해놓고 있으며 곧 입금해줄 생각인데, 그렇게 앞서 말을 해버리니까 김이 팍 새 버렸다.


점심을 먹으려고 근처 돈가스 집에 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서 밥을 먹고 다시 차로 돌아왔는데, 이런, 시동이 켜져 있었다! 시동을 켠 채로 밥을 먹고 온 것이다. 스마트 키가 차에 없을 때는 경고음이 울리고 난리가 나야 정상인데. 어떻게 열쇠가 차에 없는데 계속 시동이 켜져 있었을까. 지난주에 목격한, 시동을 켠 채 사라진 차 주인처럼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 무슨 사정 인지도 모르고 남을 흉보면 꼭 그렇게 내가 하고 있는 걸 발견한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1월 27일 목요일


상여금을 준다는 말에 설이 너무 부담스러워했다. 혹시나 혼자만 받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회사라는 제3의 존재가 있다는 걸, 가끔 설이 잊는다. 내가 주로 돈 관리를 맡고 있으니 내 뜻대로 주고 싶으면 주고 말고 싶으면 마는 구조는 아닐지라도, 조금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과하게 고마워한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1월 28일 금요일


무슨 알고리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튜브에서 추천하는 할미 언니 영상을 보게 되었다. 직장인들이 월급을 통장에 그냥 고이 모셔두는 행태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파킹 통장’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무지한 ‘나’에게 가하는 따가운 채찍질. 그 영상에 홀려 나도 모르게 저축은행 앱을 다운로드하였고, 절차에 따라 통장을 개설하려고 신분증을 찍었고, 5분 만에 통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은행에 숨만 쉬고 있던 돈을 빼서 거기에 넣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재테크의 ‘재’자도 모르는 50대 아줌마에게 기적 같은 실천력을 안겨준 할미 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제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2년 거치 상환해야 하는 천만 원 빚이 있는 회사. 그냥저냥 생각 없이 지나다 보면 상환 시점에서 또다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눈에 들어온 ‘노란 우산 공제’. 카페 개업 초반에 끊임없이 가입 전화가 오던 그 노란 우산 공제에  가입하는 게 좋을 거 같다. 적금처럼 적립을 하고 나중에 적립한 돈을 담보로 대출도 가능하니 한번 해볼 만하다. 단, 절약할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절약해서 돈을 마련해야 하겠지.  


1월 29일 토요일


명절 준비 마지막 날. 어제 설이 친구 생일 케이크로 치즈 케이크 하나를 예약했다. 원래 오늘 작업 계획은 딸기 생크림 하나 치즈 케이크 하나를 만들어 둘 생각이었는데, 치즈가 하나 더 늘어서 과감하게 생크림은 생략하기로 결정했다. 작업이 있으니 서둘러 카페에 왔는데, 쇼케이스에 초콜릿 케이크만 남아있는 것을 보자 아무래도 딸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


다시 마트에 가서 비싼 딸기 한 팩을 사고 돌아와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방문한 키위 농장주 손과 일행에게 커피를 주고, 드문드문 방문하는 사람들의 주문을 처리하면서 완성!


이제 치즈케이크를 만들 차례. 미리 실온에 둔 크림치즈와 달걀 외에 계량해야 할 설탕과 전분을 꺼냈는데, 아뿔싸! 전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재료를 사야 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했으나 계속 잊어버려서 필요한 시점에 이렇게 나를 허탈하게 하다니. 카페를 비울 수가 없을 거 같아 종업원최에게 부탁할까, 아니면 미안하지만 단골장에게 부탁할까, 이럴까 저럴까 생각하다가 손님들이 한차례 빠지고 윤이 와서 키위주스를 마시고 있는 틈을 타 재빨리 카페를 나와 근처 마트에 가서 후다닥 전분가루를 사고 돌아왔다. 아마도 5분은 걸리지 않았을 터. 다행히 윤은 자리에 있었고 주차된 차도 없었으며 누가 왔던 흔적은 없었다. 이제 케이크를 만들 차례. 그런데 이번에는 반죽기 날이 또 부러지는 것이 아닌가. 이걸 구입한 지가 1년도 안되었는데 또 이렇게 절단이 나다니. 운전을 험하게 해서 타이어 마모가 심해진 것처럼, 너무 빨리 반죽기를 돌리다 보니 그렇게 자꾸 죽어나가는 것인가 하는 반성을 잠깐 했다. 예전에 설이 임시방편으로 붙여놓은, 전에 쓰던 반죽기 날을 꺼내 갈아 끼우고 조심조심 돌려서 2개의 치즈케이크를 완성했다. 아, 이번 설 명절 준비는 너무 힘들었다.  


퇴근을 한 시각 오후 3시. 집에 도착하여 셀프 염색을 할 요량으로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앉은 시각 오후 4시 30분. 갑자기 서울로 출발하자는 포토박. 분주하게 짐을 싸기 시작. 그리고 오후 5시 출발. 하나도 막히지 않은 채 서울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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