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오브원더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알았다. 자식 잘 키우고 싶은 엄마들이 자기 어릴 때는 손도 안대던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열풍의 시절. 남들 하는거 한창 신경쓰던 젊은 새댁이었을 때라 남들하는거 많이 따라했다. 책 많이 읽어주면 나중에 한글 빨리 깨우치는 줄 알고(그때는 그게 좋은 줄 알고) 몇시간이고 읽어주었다. 괜히 아이가 똑똑해지는 것 같고 말도 잘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영어도 이렇게 책으로 읽어주면 좀 쉽게 영어를 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영어 그림책 사랑은!
분명 첫 시작은 아이의 조기영어교육이었는데, 10 여년 지난 지금 돌아보면 유아기때 약간의 천재성을 드러내고 사라져버린 아이의 영어감각과 우리집 책장을 가득 메운 영어그림책이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림책 읽어주다 내 영어발음이 엄청 좋아졌으며(실력 아니고 발음만!) 그림책 작가도 꿰뚫게 되었으므로.
뉴욕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어린이 서점이 있다. 북스오브원더. 출입문 위에는 독서 삼매경에 빠진 오즈의 마법사 등장인물들이 있고, H.A.Ray 가 탄생시킨 캐릭터 호기심 많은 조지는 서점 천장에 매달려 바나나를 먹고 있다. 희귀본과 최신책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이 서점에서는 일요일 마다 스토리텔링을 해주며 한달에 한번 작가를 볼 수 있는 특별행사가 열린다.
특별행사가 열리는 날에 맞춰 서점에 갔다. 그날은 7명의 작가들이 모인단다. 익숙한 이름이 두명 눈에 띄었다. 사인회 전에 스토리텔링 시간도 있었는데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듣지 못했다. 한창 사인회가 진행중이었다. 사인받을 책들은 서울집 책장에 쌓여있는데 지금 우리 손에 없으니 사인받을 작가를 한 명 선택하고 책을 구입했다.
옛이야기를 아름답고 웅장한 그림으로 표현하는 폴 오 젤린스키. 사실 작가 이름은 알지만 얼굴은 잘 모른다. 테이블 위 이름표를 힌트삼아 왼쪽에서 세번째 앉은 사람에게 책을 내밀었더니 옆의 두번째 사람에게 건넨다. 헉! 제일 왼쪽에 앉은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워 순서를 잘못 본거다.
작가 쫌 안다 싶었는데 그런 실수를 하니 갑자기 떨리기 시작. 아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고 사인을 해주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여기까지 날아와 당신에게 사인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입고 있는 조끼 그림이 멋지다고 혹 당신 그림으로 만든 옷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입이 안 떨어졌다.
사진 찍힌 딸의 굳은 표정 만큼 나 또한 굳은 혀를 어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