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쿠키 지옥
4월 12일 월요일
어제 급하게 포토박을 찾는 전화가 왔었다. 수요일 예약했던 사진 촬영 팀이 내일 해도 되겠냐는 문의였다. 저녁시간에는 종업원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어떤 손님들이 스튜디오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걸 막지 못해서 페인트 칠을 해놓은 바닥이 지저분해졌다는 것이다. 하필 촬영 전날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놔누다니.
아침에 와서 확인해보니 바닥뿐 아니라 바닥과 벽이 맞닿은 곡선 부분에도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포토박의 구시렁 타임이 있었지만, 어쨌든 예약팀은 제시간에 와서 계획한 사진만 찍고 퇴장했다. 그러는 와중 다른 손님이 가족사진을 예약하고 돌아갔다.
비가 내리는 월요일의 쇼케이스는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베이킹 자리에 너저분하게 늘어져있던 쓰레기를 치우고 오븐을 보니, 토요일에 구워두었던 프레즐 머랭 쿠키가 일부 사라진 채 그대로 놓여있었다. 분명 설에게 다 식은 다음에 포장을 해 둘 것을 부탁했는데 그걸 잊은 듯하다. 꺼내서 하나를 먹어보니 눅눅해지지 않아 포장을 해두었다.
설에게 지난주 많은 분량의 쿠키 반죽을 하도록 했는데, 그게 상당히 신체적인 무리가 온 모양이다. 베이킹이 새삼 힘들다는 것을 몸소 깨우친 것. 나의 힘듦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겨서 좋다가도, 너무 시켜먹다가 힘들다고 그만둬버리는 건 아닐지 살짝 고민이 되었다. 적당히 살살 일을 넘겨야겠다.
4월 13일 화요일
독서모임 회원 주가 오늘 와서 먹겠다고 미리 예약한 쿠키를 어제 만들어놨는데, 오지 않았다. N0-Show 가 이런 건가. 쿠키가 썩지는 않으니 언젠간 오면 꼭 사라고 말하리라.
수채화 모임에서는 꽃을 가지고 와서 그림을 그린다. 날짜가 달라지면서 가지고 오는 꽃들이 매번 바뀐다. 그렇게 카페로 온 꽃들은 하루 이틀 카페 곳곳에 놓인다. 그러다 사흘 나흘이 되면 꽃은 시들고 바닥에는 쓰레기가 쌓인다. 1주일을 못 가서 꽃들은 쓰레기통으로 간다. 하루 이틀의 눈요기를 위해 꽃은 희생한다. 카페의 모든 음료들은 보기 좋은 사진을 위해 희생한다. 외향의 껍데기, 속 빈 강정, 화려한 치장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주말 쿠키 주문을 위해 굽기 시작했다. 목요일 홀 케이크 주문을 위해 케이크도 만들었다. 이런저런 작업이 겹치면 베이킹 작업대는 어디 한 군데 빈 곳 없이 물건으로 가득 찬다. 케이크 시트를 자르기 위해 도마를 치워놓고, 자른 시트를 담은 후 쿠키를 자르기 위해 다시 도마를 갖다 놓는다. 이것을 치우고 저것을 들여놓고 다시 저것을 놓고 이것을 치우는 일의 반복이다. 뭐 하는 게 없는 것 같아도 베이킹 살림이 늘고 작업이 비대해진다. 내 역량을 초과하고 있다.
부동산 한 곳에 집을 내놨다. 중개인이 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는데, 오지 않았다.
4월 14일 수요일
종업원이 참여하는 주말 클래식 기타 동아리 모임의 한 회원이 어제 직접 만든 막걸리를 회원들에게 나눠준다고 두 병을 카페에 맡겨두었다. 그걸 찾으러 한 회원이 왔는데, 페트병이 조금 부푼 것을 보고 뚜껑을 살짝 열었더니 가스가 새어 나왔다. 발효가 계속 진행 중이었다. 또 다른 회원에게 줄 다른 병도 점검차 뚜껑을 여니 막걸리가 부글부글 새어 나와 넘쳤다. 급히 싱크대로 가는 와중에 바닥에 막걸리가 흘렀다. 하마터면 막걸리 폭발이 일어나 감당할 수 없는 청소를 할 뻔했다. 아, 제발 그런 선물은 카페에 맡기지 말고 직접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지난주 설에게 작업시켰던 쿠키 반죽이 주문량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을 지금 깨달았다. 이제 겨우 50개 분량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돈이 안 되는 중노동의 작업이다. 다시 반죽을 위해 버터를 사고, 밀가루를 사고 계란을 사야 한다. 소매를 걷고 오븐 장갑을 끼고 오븐에서 쿠키판을 빼려다가 팔뚝을 데고 말았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오랜만에 오븐에 데었다. 일이 점점 하기 싫어지나 보다.
오랜만에 코로나 확진자가 읍내에 나왔다. 확진자 가족 중에 중학생이 있었고 그래서 학교와 학원은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루 종일 카페가 한가했던 이유이다.
4월 15일 목요일
다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필요한 쿠키가 무려 147 봉지였다. 설에게 내일 오전부터 나와서 일을 해야겠다고 전했다. 바느질 모임이 있었지만, 역시나 잠깐 재봉틀을 돌리곤 다시 작업대로 복귀했다. 항상 일이 몰아칠 때는 한꺼번에 몰려온다. 별로 반갑지 않은 케이크 주문이 들어왔다. 아, 내일도 하루 종일 서서 일을 해야겠구나. 오늘은 장부 정리도 하지 못했다.
달고나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한 손님에게 회원 가입을 권유했다. 곧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한동안 못 올 텐데 라며 가입서를 작성했다. 아기 낳고 다시 오세요.라고 했더니 한숨을 쉰다.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의 시간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육아의 길에 들어가는 여인의 한숨이랄까. 난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룰루랄라 하며 순진하게 하루를 살았는데,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미리 알고 걱정을 한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란 것을, 겪지 않고는 알 수 없으니 그녀의 아쉬움에 그저 위로의 눈길을 보냈다.
4월 16일 금요일
어제 일일 매출이 60만 원을 넘었다. 쿠키 주문자가 와서 미리 결재를 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 건이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매출이 나온 건 처음이다. 정말 설이 포스기 화면 아래 적어두었던 '일일 매출 60만 원' 글자가 실현이 되었다. 단, 그것이 설과 나의 중노동이 낳은 대가라는 점이 아쉬울 뿐. 그 대가를 오늘 치르기 위해 설이 아침에 일찍 출근했다. 아직도 남은 반죽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양의 작업을 마친 후 잠시 뻗어버린 설. 매출 60만 원은 이렇게 올리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해줬다. 그러다 우리 죽는다고. 어서 사진 촬영과 영상 촬영이 작년처럼 활성화되어야 편하게 먹고살 수 있다고.
매년 이 날 비가 왔었다. 오늘은 비가 없지만, 하늘에는 구름이 많다. 하늘로 간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이제 눈물은 흘리지 않나 보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아이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보고 있을까.
4월 17일 토요일
어제 설의 영혼을 갈아 넣은 쿠키 반죽이 냉동고에 그득하다. 이제 계속 구워서 봉지 숫자를 맞춰야 한다. 남은 시간과 오븐에서 구워지는 쿠키의 양을 계산해보지 않은 결과, 배달할 시간까지 정해진 물량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데드라인 2시간 전에 알아버렸다. 이럴 수가!! 머리를 굴리자. 사이즈를 크게 만들고 봉지 안에 넣을 쿠키 양을 한 개 줄이고 한 번에 많이 구워보는 전략을 썼다. 배달 출발하기 5분 전에 마지막 쿠키가 구워져 나왔고, 미처 식지 못한 쿠키가 봉지 안에서 뜨거운 입김을 불어냈다. 마지막 4 봉지는 결국 입을 다물지 못하고 출발했다. 아, 어제 종업원에게 굽는 법을 알려줄 것을. 미덥지 못해도 이렇게 급하게 하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을. 왜 나는 사서 고생을 하는가. 이런 와중에 민감독은 다른 종류의 간식도 생각해봐야 할 거 같다고 해서 밥맛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홈페이지 관리와 구축을 하는 읍내 회사에서 포토박에게 사진 촬영 의뢰가 들어왔다. 펜션 홈페이지에 들어갈 사진이었다. 전경 사진도 필요하고 야경 사진도 필요하고 숙소 내부도 찍어야 할 일이다. 하루 일당 150만 원에 부가세 별도라고 통보했다. 분명 비싸다고 찍지 않을 것이다.
4월 18일 일요일
일하지 않는 일요일이지만, 미리 결재를 해놓고 커피를 배달시켜먹는 지인 명의 주문이 있어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카페에 들렀다. 매주 일요일은 민감독과 종업원이 책임지는 날이다. 전날 그들이 마감을 하고 다음날 그들이 오픈을 하는 날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카페 주방이 너무 지저분했다. 전날 청소를 다 끝내지 않고 그냥 퇴근해버린 것이다. 내가 손 닦는데 쓰는 수건은 뭐에 썼는지 싱크대 밑에 내팽개쳐져 있고, 손님이 먹은 찻잔이 그대로 쟁반에 담겨 선반에 놓여있었다. 커피 찌꺼기를 담은 쓰레기통은 가득 찬 채로 있었고 쓰레기 봉지는 쓰레기통 옆에 그대로 놓여있었으며, 내 베이킹 작업대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먹은 반찬통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와서 문을 열고 이 광경을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그렇게 다음날 누가 문을 열지 계산을 하면서 제대로 정리를 해 놓지 않은 것은 그냥 그들의 습관 문제이다. 습관적으로 치우지 않는 것을 몇 번 얘기를 하면 잔소리 듣는 애들처럼 늘 변명이 돌아왔다. 점점 대화가 사라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