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4월 넷째 주

삐걱거리는 감정

by Baker Lee

4월 19일 월요일


카페 문을 열고 아직 어제의 흔적을 정리하기도 전에 손님이 들어와서 11잔을 주문했다. 아침에 이렇게 대량 주문을 혼자 받아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이럴 때는 허둥대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그럴 때마다 뭔가 빠뜨리고 흘리고 떨어뜨리기 일쑤다. 조금은 느긋하게 준비해도 되는데 급한 성격 탓에, 손님을 기다리게 하는 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초등교사 단이 왔다.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평일에 이렇게 느긋한 하루를 만끽할 수 있다고. 포스기에 기록되어 있기로는 어제도 방문했는데, 그때 오늘 먹을 크로플을 준비해 달라고 말을 했단다. 하지만 냉장고에는 준비된 크로플이 없었다. 역시나 민감독이나 종업원이 말은 그렇게 한다고 해놓고 또 까먹은 것이다. ‘그 둘은 믿을 수 없어요.’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부탁은 저에게 하세요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단은 크로플 대신 사브레 쿠키를 들고 노트북을 켜고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올초 내내 아무 일도 안 하다가 4월 들어 2건의 가족 촬영을 마친 포토 박은 사진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사진 작업을 하다가 그래픽 카드가 손상된 것을 알게 되었다. 포토샵 프로그램을 월 결제하면서 쓰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작동이 잘 안 된다는 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손상으로 작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중고로 컴퓨터를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한다. 이런.. 좀 번다 싶었더니 결국 기계 구입에 돈이 다 나가게 생겼다. 애플은 해가 거듭할 수도록 오래 쓰지 못한다. 우리가 처음 샀던 1세대 애플 컴퓨터는 아직도 잘 돌아가고 있는데, 모니터가 얇아지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정작 기계의 수명은 짧아진다. 가끔 생각한다. 돈 벌어서 컴퓨터 사는데 쓰고, 돈 벌어서 병원에게 갖다 바치는 중이라고.


4월 20일 화요일


새벽녘에 포토박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포토박만 홀로 서울로 올라갔다.


오전 독서모임 회원들이 왔다. 지난주 쿠키를 주문해놓고는 못 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주에게 ‘노쇼’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말을 해버렸다. 여느 카페 종업원이라면 ‘괜찮습니다. ㅎㅎ 다음에는 화요일마다 준비해둘 테니 편하게 오셔서 드셔요^^”라고 했을 텐데, 워낙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 마음의 소리가 거치지 않고 나와버린다. 이래서야 아는 사람 카페에 오고 싶을까 싶다.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좀 나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차 했다. 하루 온종일 후회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걸러서 얘기할 것은 걸려내야 한다.

커피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종업원은 주문을 하지 않았다. 베이킹 관련 재료들은 내가 알아서 주문하고 카페 관련 재료는 종업원이 알아서 한다. 지금까지 한두 번 커피 주문 시기를 놓쳐서 다른 곳에서 커피를 주문하기도 하고, 주문한 커피가 어찌 된 일인지 물류창고에 갇혀있어서 직접 그곳까지 찾으러 간 적도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결국 1시간 거리 도시로 나가 원두를 사겠다고 출발했다.


흰자를 없애려고 마카롱을 구웠다. 이번 주 원래 예정되어 있던 대안 장터도 문을 열지 않게 되었으니, 마카롱을 만들더라도 팔 수 있는 곳이 마땅치가 않다. 설이 와서 꼬끄를 팔면 어떻겠냐고 해서, 다른 용도로 사놓았다가 쓰지 않고 있던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진열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양한 색깔로 만들어놓을걸. 꼬끄로 흰자를 무찌르자.


4월 21일 수요일


어제 정산 마감한 포스기 영수증을 보고 준비금을 등록하고 장부를 정리했다. 루틴처럼 이루어지는 아침 일과이다. 포스기의 현금과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을 맞춰보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오늘은 1만 7천 원이나 차이가 났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찾는 과정을 거쳐 내가 어제 준비금 등록을 잘못한 것을 찾아냈고, 8,500원의 현금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 알고 보니 어제 마감하는 중에 돈이 남아서 포스기에 그 돈만큼 매출을 잡았다고 한다. 다시 반품처리를 했다.


오늘은 종업원이 오면 부탁할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으나 내가 퇴근할 때까지 오지 않아서 카톡으로 이야기를 했다.


나 ::

오늘 오시면 전할까 했는데 안 오셔서..

몇 가지 부탁 좀 드릴게요.

유리 깨진 거 나오면 바로바로 신문지에 싸서 버려주세요. 재료 가루 통을 다 쓰면 가루를 채우던지 유리병을 설거지해주세요. 티코스터는 얼룩이 있으면 바로 빨아놓거나 원래 있던 자리에 두세요. 저울도 마감 때 닦아주세요


종업원 ::

유리 깨진 건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저울은 오염되면 그때그때 닦는 것이고요, 재료 가루 통도 다 쓰면 그때그때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감 때는 마감 루틴이 있어서 그걸 하다 보면 오히려 빠뜨리게 되는 것 같아요! 일부러 안 한 건 아니고 마감 때 오히려 빼먹고 안 하게 되는 것 같네요. 마감 청소와 오픈 청소도 문서로 만들어서 분담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나 ::

루틴대로 하다가 빠진 것들은 사실 상관없고요, 빠진 것은 제가 오픈 때 하고 있으니 그건 괜찮습니다. 루틴으로 안 하는 것이 있어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종업원 ::

네 알겠어요. 더 신경 써서 잴 해볼게요


나 ::

네 감사합니다 ^


4월 22일 목요일


어제 종업원에게 부탁한 내용은 깡끄리 무시되었다. 며칠째 깨진 유리잔은 싱크대 위에 그대로 있고 소분 통은 어제 본 그대로 있으며 티코스터는 또 자리를 벗어나 그대로 쌓여있고 저울 위는 지저분했다. 이것은 반항인가 무신경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루가 가기 전에 민감독이 와서 그 신경 쓰이는 부분을 처리했다.)


일자리 창출 고용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모든 서류가 통과되어 영상 촬영을 도와줄 범이 근무하기로 확정되었으며, 청년 일자리 사업으로 설이 정식 직원이 될 예정이다. 모두 5월 1일부로 직원이 되며 월급을 받는 사람이 4명이 되는 것이다. 재정을 보고 있는 나로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인원이다. 한 사람을 고용함으로써 들어가야 할 부대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아무리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100% 지원은 아닐뿐더러 보험료도 부담해야 하니 돈의 압박이 상당할 것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영상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수입도 없는 상태이다 보니, 2명의 직원 월급도 제대로 못 줄 수도 있겠다 싶은데, 거기에 2명이 더 얹어져서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기업은 사람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사회적 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함이 맞겠지만, 그러려면 수입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런 연유에서 설이 이것저것 새로운 메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달고나 스콘을 해보겠다거나, 마늘빵 스콘을 해보겠다고 하거나, 먹태 안주를 내놓겠다거나 하는 것은, 이제 자신도 월급값을 하고 싶다는 뜻이겠다. 오픈한 지 1년이 되어 가는지라, 나는 이제 모든 일에 지쳐가고 있고 새로운 일은 하기 싫어졌다. 젊은 혈기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설의 의지를 꺾을 필요는 없겠다. 아낌없이 재료 사는데 법인카드를 들려주었다.


맥주 손님을 위한 안주가 거의 없는 형편인데 설의 제안으로 먹태를 사서 테스트 삼아 구워보았다. 오븐의 온도를 정하고 데코를 결정했다. 백종원에게 유튜브로 배운 마요네즈 양념도 선보였다. 먹태는 인터넷으로 구입하기로 하고 가격은 13000원으로 정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요즈음 맥주 손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4월 23일 금요일


이번 주 전국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가면서 카페 손님이 전반적으로 줄었다. 수채화 동아리 선생 영이 카운터 뒤를 가득 메운 직원 4명을 보고 주방이 꽉 찼다고 덕담(?)을 해주었다. 내 말도 그렇다. 1년 내내 주방만 꽉 찰 거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혈기왕성한 설은 오늘도 다이소에 들러서 캡 마개가 달린 비닐용기를 사 왔다. 우리가 만들어서 파는 자몽청을 담아놓고 음료 내기 전에 덜어내는 용도이다. 지금 담겨있는 통이 들기에는 너무 크고 덜어낼 때마다 청 액체가 자꾸 흘러나와 일하기가 나쁘긴 하다. 시험 삼아 담아놓고 잘 섞이게 흔들어서 덜어내니 훨씬 손쉬웠다. 내가 없는 동안 그걸 민감독에게 보여줬는데, 수제청이라는 느낌이 없어서 맘에 안 든다 했단다. 무슨 개똥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희한한 부분에서 고집스러운 논리를 들이댈 때는 이해를 잘 못하겠다. 일개 직원인 설은 다시 자몽청을 원상 복귀해두었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포토박이 귀환했다.


4월 24일 토요일


어제 황선생이 꽃다발을 카페로 가져왔다. 테이블마다 그 꽃이 놓여있었다. 나에게도 준다고 하얀 종이에 싼 꽃이 내 책상에 있었다. 가지고 가라는 연락은 받았지만 카페를 들르지 않고 집으로 갔다. 여전히 꽃은 있었고 조금 시들어있었다.


첫 손님으로 꼬마 남자아이를 안은 엄마가 왔다.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주문을 하려고 할 때 아이가 꽃이 꽂혀있던 컵을 테이블에서 들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에폭시 공사를 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지난번 케이크 뚜껑 깨지듯이. 이번에 더 안 좋은 점은 물이 담겨 있었다는 거다. 흥건한 물과 조각난 유리가 바닥을 굴렀다. 아이 엄마는 어쩔 줄 모르고 차값에서 깨진 유리컵 값으로 1만 원을 더 내려고 했다. 잠깐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을 하다가, 유리는 늘 깨진다고 돈은 받지 않겠다 했다. 너무 미안해하면서 아이한테 네가 한 짓을 보라고 자꾸 얘기하고 있길래 신문지를 주고 큰 조각만 담아 달라고 부탁하고 주문한 음료를 만들었다. 손님 덕분에 치우는 일이 조금 줄어들긴 했다. 깨진 유리값은 하고 간 셈이다.


어제 나눈 카톡이다.


민감독 ::

문화재단 예술인 파견 지원사업-예술로, 사업에 선정되었어요. 기업과 예술인을 매칭 해주는 사업이에요. 기업 선정되었고, 선정된 기업에 예술인 6명을 파견해서, 주 2~3회 회의를 통해 기업에 어떤 혜택을 줄까 의논하고 실행하는. 우리 기업으로 선정된 예술인 6명이고, 기업에 따로 돈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없어요. 그냥 예술인들이 주 2회 회의하러 와서 차 마시는 정도의 수익?


나 ::

회사 자금이 별로 없어요. 이대로 가면 월급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나는 온통 돈 걱정뿐이다.)


수익이 나지 않는 일에 신경 쓰고 서류 제출하고 품을 들여서 선정되었다고 하는 걸 보니, 참 태평하다 싶었다. 톡을 날리고 나는 잠을 잤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런 카톡이 와있었다.


민감독 ::

카페는 신경 써서 조금씩 매출을 늘리고(현재 조금씩 늘어나고 있죠. 신경 쓰는 만큼 조금씩 개선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방침과 주변 환경 영향도 있는데, 쨋든) 이후 영상 계약건도 소소하게 진행될 예정이니까 지금보다 악화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맡아서 진행하는 일들은 작년보다 공격적인 영업은 아니어서 매출에 크게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아요. 저는 올해, 유튜브 채널 운영과 문화예술단체 지원. 크게 두 분야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자체 영상제작 지원사업건은 더 이상 지원 신청하지 않고, 사회적 가치 실적 위주로 활동하게 될 것 같아요


봉사하는 걸로 올 한 해 목표를 잡았다는 얘기인가. 갑자기 열이 났다.


나 ::

카페만으로는 유지가 어려울 거라 생각이 드네요.


오전 7시에 보낸 카톡에 10시 넘어 시비를 걸어왔다.


민감독 ::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가요??


날아오는 시비를 무방비상태로 받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또 펀치가 날아왔다.


민감독 ::

뭔가 의견이??


나 ::

작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적은 매출을 준비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 정도도 안될 거 같아서 회사 유지가 될까 싶은 걱정이 앞 선거 지요. 대표가 이미 그렇게 정한 마당에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회사 유지가 힘들 경우 월급은 안 나갈 수도 있으니 서로 마음의 준비는 해야겠지요.


민감독 ::

저는 제가 하는 분야만 정한 건데 왜 대표가 정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각자 자기 분야 알 하서 하자고 말씀하셨던 건 포토 박인데. 아예 돈을 안 벌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할 만큼 하겠다는 건데 대표가 뭘 정했다고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무슨 수가 없게 만들었나요?


나 ::

지원과 유튜브 운영이 수익이랑은 상관없어 보여서 대표가 그런 방향으로 정했다니 (수익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겠다는 얘기였어요. 하고 싶은 만큼 알아서 하세요.


유리컵 치우고 손님 두 명 받으며 카톡 대화를 열 받으며 쓰다가 12시에 설이 출근하자마자 카페를 나왔다. 종업원이 운영했던 옛 카페에서 구닥다리 가구들을 가지고 와서 매장 안을 재배치해보겠다고 분주한 민감독과 종업원을 뒤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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