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4월 다섯째 주

월급을 깎다

by Baker Lee

4월 26일 월요일


사회적 기업이라는 가치 실현에 중점을 두는 사람과 가치보다는 기업 유지가 중요하다는 사람 간의 생각 차이라고 결론 내고, 서로 각자 맡은 분야에서 할 만큼 알아서 하는 걸로 매듭지어보려 했지만, 주말 내내 마음은 계속 무거웠다.


그러는 와중, 어제저녁 또 하나의 카톡이 왔다. 설의 제안으로 마련한 황태채 안주 주문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는 민감독의 톡. 오븐 먼저 180도 예열하고 가운데 칸에 넣어서 5분 굽고 냉동실에서 고추 꺼내 마요네즈 간장을 만들라고 알려줬다. 오븐에 황태 냄새가 가득할 거 같아서 꼭 오븐 문은 열어두라고 일렀다.


아침에 가보니 오븐은 열려 있는데 비린내가 장난 아니었다. 이 상태로 케이크를 구우면 괜찮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오븐이 하나뿐이니 대안은 없다. 포스기 영수증을 체크해보니, 황태 안주를 포스기에 등록해놓지 않아서 지난번 팔았던 한치 안주로 계산을 했다. 1천 원 손해 봤다. 출근한 설에게 메뉴를 수정해달라고 부탁했다.


설은 내일부터 금요일까지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한다. 토요일은 경기도에서 앙금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정식 출근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이며, 아마도 제일 먼저 매장 문을 오픈하게 될 것이다. 오픈 때 해야 할 일들을 몇 가지 알려주고 현관문 키도 건네주었다. 한가한 매장 덕분에 설은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당근케이크 위에 장식할 당근을 만들었다. 앙증맞은 당근이 냉장고에 넣어두어도 먹을 만한지 실험한 후 케이크 위에 장식을 해둘 것이다.


매일매일 금전출납부를 쓰고 있고, 매달 품목별 수입과 카드와 현금 수입을 정리해두었는데, 이제 지출 내역도 정리를 해야겠다. 도대체 얼마를 쓰고 얼마를 버는지, 수치상으로 다들 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말이다.


4월 27일 화요일


아침에는 의례히 전날 커피 그라인더에 있던 나머지 찌꺼기들을 없애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만들어 흘려버린다. 난 그걸 버리지 않고 내가 마신다. 반반 나눠서 오전에 반 컵, 오후에 반 컵. 하루 마시는 커피 양이 많아지면 잠을 못 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전에는 그렇게 내가 마시고 남은 에스프레소 1샷이 항상 커피 머신에 있다.


황선생이 읍내 서점 리모델링을 위해 의뢰자 현과 미팅을 했다. 현의 주문은 카페라테였는데, 실수로 나중에 마실 내 에스프레소 1샷에 다시 2샷의 에스프레소를 내려서 라테를 만들었다. 현은 한 모금을 마시더니 우유를 더 부어달라고 요청했다. 커피가 2샷 반이 들어가서 너무 찐한 라테가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 사실을 깨닫고 멀쩡한 한 잔을 다시 만들어서 주었다.


4월 28일 수요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황과 현의 리모델링 미팅이 있었다. 주말에 있었던 가족사진을 인화한 것이 주문한 액자와 함께 도착해 있었기 때문에 사진 정리를 위해 포토박이 출근했다. 리모델링 미팅이 끝난 황선생과 어김없이 오전에 온 단골 장이 아직 먼 미래 같은 우리 집 짓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5월에 직원으로 들어오는 범은 전문인력 지원사업이 아닌,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으로 입사한다는 걸 오늘 알았다. 그러므로 아직 전문인력 직원은 뽑을 수 있지만 지원자가 영 나타나지 않아 포기했는데, 지원담당 부서에서 되도록이면 사람을 고용하도록 부추기는 모양이다. 이미 사업으로 내려온 돈이니 반려하는 것이 귀찮은 일거리가 되니 그런 것 같지만, 우리한테는 사람 하나가 돈 잡아먹는 하마라 섣불리 수긍을 할 수 없는데도 민감독이 사람 뽑으라는 그 말에 또 흔들리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좀 더 확실한 재정 상태를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


3-400만 원씩 적자가 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회사는 유지가 힘들 거 같다. 얕은 생각으로 대출을 받아볼까 했는데, 언니가 극구 말렸다. 임원들의 월급을 하향 조정하고 유지를 하도록 노력해야지 빚으로 회사가 굴러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3월과 4월 지출 내역과 수입 내역을 숫자로 보여주고 긴축 재정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 그 생각에 밤에 잠을 못 잤다.


4월 29일 목요일


잠을 설친 탓에 몸이 너무 찌뿌둥했다. 카페에 출근하여 머랭 쿠키를 굽는 동안, 3월과 4월의 지출과 수입, 현재 잔액에 대한 내역을 공유하고 앞으로 재정이 안정될 때까지 두 사람 월급은 대폭 삭감해야겠다고 회사 톡방에 올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다들 긍정은 하지만, 이제 앞으로 뭘로 수익을 더 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생각을 못하고 있다.


4월 30일 금요일


내일부터 5일 동안 서울을 간다는 생각에 이번 주의 우울함을 날려버릴 만큼 즐거워졌다. 매년 설과 추석 명절마다 서울을 올라갔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작년에 가질 못했다. 이번에는 직원 설이 생겨서 조금 마음 편하게 휴가를 간다. 민감독과 종업원은 명절에도 가족과의 만남보다는 카페 문을 여는 것을 더 좋아라 하는 편이라 미안함이 좀 덜하다. 영업시간을 10시까지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도 처음에 정한, 정확히 말하면 민감독과 종업원 최가 주장하여 결정한 12시 마감을 지키면서 1시까지 카페에 있는 걸 보면, 정말 집보다 더 카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카페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


내가 없는 동안 새로운 케이크는 팔 수 없겠다. 대신 스콘 반죽, 초코무스 케이크 한 판 그리고 전에 만들어두었던 쿠키 반죽이 냉동실에 있으니, 알아서 꺼내 굽기만 하면 판매는 가능하도록 준비는 해놓았다. 오늘은 머랭 쿠키를 두 번 구워볼 생각이다. 매번 오븐에 한판씩만 넣어서 만들었던 머랭 쿠키를 한 번에 두 판을 오븐에 넣어보았다. 열이 고루 닿지 않을까 봐 한번에 한판만 넣었었는데 구워보니 오히려 정말 하얗고 이쁜 머랭 쿠키가 만들어졌다! 이제 두 판을 한꺼번에 구울 수가 있겠다.


재봉 모임이 있었다. 한동안 주방장갑을 만들다가 오늘부터는 방석커버를 만들 계획이었으나 다들 휴가를 앞둔 상황이라 열심히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5월 1일 토요일


스튜디오 한쪽에는 암실로 사용할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암실 인화작업을 하는 수업도 해볼 생각을 거창하게 품었던 것. 그러나 이제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1년이 지나면서 암실은 자연스럽게 창고가 되어 갔다. 재봉 모임 공유재산인 오버록 기계가 들어가 있고, 이런저런 행사가 끝나고 남은 자료들이 상자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요 근래 카페 내 테이블을 다시 세팅하느라 남게 된 의자들은 서로 겹쳐져서 들어앉아있다. 창고 같은 암실을 정리해보려고 그 의자들을 서울로 가져가기로 했다. 서울 가는 길, 이른 아침에 카페로 갔다.


암실 문 앞은 민감독의 사무공간이다. 이런저런 짐들을 늘어놓는 바람에 암실 문이 활짝 열리지 않았다. 게다가 암실 내 공간이 워낙 좁아서 의자를 들고 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포토박이 암실 안에서 의자를 건네주고 내가 문 밖에서 받았는데, 받은 의자를 잠시 책상에 올려놓았더니, 그 의자가 기우뚱 넘어지면서 벽면에 세워놓은 전신 거울 뒤쪽을 쳤다. 거울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고 그야말로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결국 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깨진 유리조각을 빈 박스에 담아 정리를 했다. 깨진 유리가 담긴 상자는 포토박 책상 의자 옆에 밀어 넣었다. 서울 다녀온 후 치우기로 했다. 때마침 출근한 민감독이 참사 현장을 보았다. 기분이 더러워지고 마음마저 산산조각 난 상태로 휴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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