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5월 첫째 주

밥에 기분 상하다

by Baker Lee

5월 3일 월요일


서울이다. 날씨가 엄청 좋은 날, 모든 학생들 어린이들 연인들이 롯데월드로 몰렸다.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하루 종일 그곳에서 줄을 끝도 없이 서서 기다리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된장.


5월 4일 화요일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 홀로 숙대입구에 있는 구복 만두에서 샤오롱바오를 처음 먹어보고 어쩌다 생긴 쿠폰을 사용하고자 스타벅스를 들렀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사주 풀이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셈에 약한 건 사주에도 나와있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셈 계산은 민감독이 훨씬 나으니, 일 잘 벌리고 셈 밝은 그녀를 믿어보라 했다. 와우!!


5월 5일 수요일


서울은 가는 곳마다 QR코드를 찍는다. 읍내 카페에서는 QR코드보다는 수기로 작성하거나 KT에서 돈 주고 사용하는 방문자용 전화번호를 쓰고 있다. 처음에는 카페를 방문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니까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제를 하면 어떤 회원이 왔는지 기록에 남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점차 방역이 강화되었고, 방문한 사람 전부를 기록해야 하는 지침으로 바뀌었는데, 사실 그게 잘 안된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QR코드 등록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읍내와 달리 서울은 모든 방문지마다 정말 철저하게 잘 기록을 하고 있었다.


5월 6일 목요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미 문은 열려 있고 정직원 둘이 카페를 차지하고 있다. 연휴 끝인지, 연휴 시작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손님들이 오느냐 아니냐로 판가름이 나겠다. 오전 내내 직원들만 있는 카페인 걸로 봐서 이곳은 어제부터 연휴가 시작되었나 보다.


작년 딸기 케이크와 초콜릿 케이크를 많이 주문해서 주변에 나눠줬던 양이 전화를 했다. 아는 사람이 딸기 케이크를 4개 주문했는데 가능하냐는 내용이었다. 기본적으로 홀케이크 주문은 적어도 2일 전에 해야 한다고 메뉴에는 적혀있다.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당장 내일 4개의 케이크라니.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과감히 포기를 했다. 토요일 주문 1개만 받고 전화를 끊었다. 하루 종일 그걸 받았어야 했나 하는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미련이 남을 거면 수락을 했어야 하고, 이미 벌어진 일은 가차 없이 잊어버려야 하는 것을 여태껏 겪고도 늘 이 모양이다.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플로리스트 신에게 쓰지 않는 오븐이 있다고 해서 설이 직접 가서 가져왔다. 냉장고 옆 공간에 오븐을 올려두었다. 혹시나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 필요할까 싶어서 가져다놓긴 했는데, 오븐 상태를 체크해봐야 소용이 있을지 없을지 판가름이 나겠다.


휴가 내내 스튜디오 안을 지키고 있던 깨진 거울 조각을 담은 상자와 거울 틀을 치웠다.


5월 7일 금요일


IT 쪽에서 일했다는 범은 카페 컴퓨터 시스템을 점검했다. 2G와 5G 두 개의 와이파이가 있는데 하나는 손님을 위해서 비번을 없앴고, 하나는 우리끼리 쓴다며 비번을 걸어두었는데, 보안상으로 볼 때 그것은 아주 쓸 잘 떼기 없는 짓이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2G와 5G는 어차피 같은 와이파이이기 때문에, 하나의 문은 활짝 열어두고 하나만 잠근다고 해서 보안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 결국 둘 다 비번을 두던지, 없애던지의 선택만 남은 거다. 보안이 뭔지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만 있어서 벌어진 일이겠다. 똑같은 비번으로 바꾸었다. 한동안 비번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시달릴 거 같다. (그를 대비하여 비교적 쉬운 조합으로 만들었다.)

인턴 시절 설과 나는 정직원이 되면 점심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결론은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걸로 정했는데, 그 계획과는 달리 함께 직원이 된 범과 11시 반에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어제는 둘이 점심을 먹으러 갔고 오늘은 민감독까지 셋이 밥을 먹으러 갔다. 난 오전 내내 케이크를 만들고 그들이 나갈 때는 케이크 아이싱 작업을 시작할 때였다. 누군가 있어서 마음 놓고 작업을 할 줄 알았더니만, 결국 바쁜 때는 나만 남아서 베이킹과 카페 일을 같이 하고 있었다. 직원이 있어서 편해졌다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 어제 케이크 4개 주문을 받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설이 점심을 법인카드로 먹어도 되는지 물었다. 민감독이 그런 말을 했나 본데, 나는 금시초문이며 이런 재정 상황에 밥까지 사 먹여주고 있다는 말에 기겁을 했다. 집에 돌아와 은행계좌를 살펴보니 정말 셋이 먹은 밥값이 계산되어 있었다. 이건 무슨 경우인가. 이렇게 복지가 훌륭한 회사였던가. 그럼 주말도 없이 주 6일을 일하고 있는 나는 딴 회사 직원인가. 저녁마다 카페를 보고 있는 종업원과 민감독은 또 다른 회사 직원이었던가. 스스로에게 박하고 직원에게 훌륭한 대표라니. 나도 그런 좋은 이미지의 베이커 Lee가 되고 싶다. 내가 대신 직원 둘을 데리고 점심 1시간을 온전히 쓰면서 법인카드로 밥을 먹고 싶다는 유치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5월 8일 토요일


큰딸이 어버이날이라고 마미 북을 선물해주었다. 포토박에게는 물론 대디 북을 주었다. 나의 모든 것을 적어서 다시 자식에게 선물하는 콘셉트의 책인데, 채울 내용이 너무 많아 엄두를 낼 수가 없다는 게 단점. 책을 보면 몇 쇄를 찍었는지 살펴보는 습관이 있는데, 자그마치 55쇄를 발행한 베스트셀러였다! 재미있는 점은 대디 북은 54쇄를 찍었다는 거. 1쇄에 보통 3천 부 정도 찍는다고 치면, 3천 명의 엄마가 아빠보다 더 많이 받았다는 얘기다.


오전 내내 나만 덩그러니 카페를 지켰다. 다들 어버이날이라 놀러 나갔나 보다. 설이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사다 주겠다는 고마운 전화를 했다. 아들 생일로 주문한 케이크를 어제 줬는데 깜빡하고 냉장고에 두고 그냥 가버려서 가지러 오는 길에 나를 챙겨주었던 것. 카네이션 풍선 만드는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고 얻은 카네이션 풍선도 덤으로 선물로 주었다.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나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거 같다. 감동스러운 어버이날이다.









keyword
이전 10화21년 4월 다섯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