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5월 둘째 주

주인의식이 남다른 직원

by Baker Lee

5월 10일 월요일


이제야 휴가가 완전히 끝난 기분이다. 이것저것 장을 보고 카페에 도착하니 범이 책상 앞 선반을 하나 만들고 있었다. 월요일이면 루틴처럼 하는 케이크 시트를 만들고 당근 케이크를 만들었다.


손님에게 음료를 갖다 주고 테이블에 올려놓다가 설이 잔을 놓쳐 아이스 아메리카노 유리잔을 깨 먹었다. 손님은 지난번엔 자신이 유리잔을 깼는데 이번에 또 깨졌다며 테이블에 마가 낀 거 같다고 말했다.


오픈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에게 음료를 찾아가라고 얘기하는 대신 직접 우리가 서빙을 하고 있다. 오픈 때는 뭔가 사람들이 많을 거 같고 서빙하는 동선이 너무 넓어서 진동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종업원이 사두긴 했으나, 그렇게 까지 사람이 붐비는 것도 아니니 진동벨은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 선반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일반 카페에서는 보기 힘든, 직접 갖다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주문량이 많을 때는 들고 가는 게 사뭇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손님들이 직접 들고 가는 시스템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 굳어진 이 시스템을 바로잡고 새로 정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적립 포인트 요율을 바꾸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5월 11일 화요일


점심 법인카드 사용에 관한, 남들이 보기엔 좀 쪼잔해 보이는 사안은 설의 희생으로 일단락되었다. 설은 청년을 위한 고용지원 월급 외 활동비로 30만 원을 더 받게 되어있다. 결론적으로 기존 직원보다는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같은 임금 지원이지만 범은 회사에서 부담하는 액수가 더 많고 덤으로 주는 활동비가 없다. 다른 회사에서 근무할 때, 다양한 형태의 임금 지원을 보아온 설은 지원해주는 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등이 있으며 조금씩 다른 수준이다 보니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근로자들 간에 알게 모르게 불만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같은 경우, 30만 원을 더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닌 사람도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묘한 분위기 같은 거 말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설이 활동비를 범과 나누겠다고 한다. 회사에서 개인에게 지급되는 활동비를 나눠라 마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이 최종 결정권인 셈이다. 개인 이기주의가 몸속에 그득한 나에게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월 12일 수요일


카페에는 정수기 물을 담아두는 통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작은 사이즈이고 하나는 큰 사이즈. 나는 큰 사이즈 통 뚜껑이 잘 안 열린다는 이유로 작은 사이즈에만 물을 채워서 사용하고 있다. 설이 큰 통에 물을 받고 있었다. 물을 채워 넣으면 손님이 많이 올까 하는 마음에. 주인의식이 남다른 직원이다.


단체주문용 새로운 메뉴로 머랭 쿠키를 제안했으나, 업체에서는 우리 메뉴는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간식이 안된다는 이유일 수도 있고, 맛이 없을 수도 있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잠깐 쉬는 타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 저녁에 모임이 있으니 케이크를 충분히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민감독의 주문이 있었다. 이번 주 내내 세 개의 케이크가 자리 잡고 있지만, 당근 케이크는 3일째 아무도 먹지 않아 방치 중이고 나머지 케이크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주중에는 좀 덜 만들고 주말에 집중해보는 쪽으로 해야겠다.


딸기 시즌이 끝나간다. 대부분 카페는 이제 수박으로 갈아타게 되는데, 작년에는 하지 않은 수박 메뉴를 준비해봐야 할 거 같아 주인의식이 남다른 직원에게 메뉴를 검색해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우리 메뉴판에 대한 고민도 해주었다. 싸구려 아크릴판에 놓인 메뉴판이 세련된 인테리어에 어울리지 않는 건 사실이다. 메뉴판을 만드는 작업도 그에게 알아보라고 넘겼다. 새로운 메뉴판을 위한 보드판은 내가 알아서 주문을 해두었다.


안타깝지만 민감독과 나의 월급을 삭감하기로 했다. 일시적일 수도 있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오래 지속될 수도 있는 조치이다. 4대 보험료도 그에 맞춰서 조정하려는데, 그에 따른 서류가 필요했다. 월급을 올리는 경우에는 상관없지만 낮아지는 경우 근로자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고. 한꺼번에 신청을 했지만, 유독 국민연금은 자기들 나름의 양식으로 다시 보내줘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홈페이지에서 양식을 프린트하고 각자 서명을 한 것을 다시 스캔을 떠서 팩스로 보냈다. 카페에는 팩스가 없어서 그걸 하느라 모바일 팩스 앱을 다운로드하여 사용했는데, 역시나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 몸이 또 고생할 뻔했다. 어쨌든 모든 서류가 들어갔고 몇 달간 우리는 직원보다 못한 월급으로 살아야 한다.


5월 13일 목요일


모내기를 준비하는 논에는 물이 가득하다. 일찍 서두른 농부는 모판에 씨를 담고 물 주기를 시작했다. 도로 주변은 예초기를 멘 사람들이 풀을 깎고 있어 조심조심 운전을 해야 한다. 하루 사이에 기온이 훌쩍 올라가 겨울에서 바로 여름으로 넘어가 버렸다.


1주일 건너뛴 바느질 모임이 있는 날이다. 시댁에 보낼 베개커버 2개를 만들었다. 이제 눈이 너무 침침해서 재봉틀 바늘에 실 끼우는 게 너무 힘들다. 오늘은 특히나 실이 자꾸 빠져서 실 끼우는데 시간을 다 잡아먹은 것 같다. 눈 두 덩이가 자꾸 아프고 눈알이 피곤한 것은 시력이 나빠졌는데 안경을 쓰지 않은 탓일까, 스마트 폰을 너무 들여다본 탓일까.


5월 14일 금요일


갑자기 여름으로 바뀐 날씨. 에어컨 리모컨이 있는 장소를 설에게 알려주다가 에어컨 필터 청소를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에어컨을 틀면 아마도 1년 내내 그 먼지 속에서 가동을 하게 될 거 같긴 하다. 아무도 하지 않으니 나만 있었다면 내가 다 해야 할 일이었을 텐데, 설이 사다리를 타고 뚜껑을 열어 필터를 꺼내 주고 에어컨 겉면도 걸레로 닦았다. 필터를 물로 씻어 그득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햇볕에 말렸다. 설이 퇴근 전에 다시 원상복귀시켜주면 내일부터는 상쾌한 에어컨 바람이 불 것이다.


5월 15일 토요일


직원들이 쉬는 주말. 한가한 오전, 이것 저것 카페 안을 정리하다가 문득 티라미수 케이크 만들 때 커피시럽 대신 설탕 시럽을 넣은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만들다 보니 깜빡한 것. 남은 재료로 만든 여분의 케이크를 맛보았는데, 역시나 뭔가 빠진 듯한 이 찜찜한 기분이란. 한 개는 쇼케이스에 진열을 해두었고, 한 개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담에 실수 없이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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