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를 받다
4월 5일 월요일
올해 초, 예비 사회적 기업이 신청할 수 있는 설비 지원사업에 신청을 했었다. 고가의 커피머신, 베이킹용 오븐, 영상편집 용 컴퓨터, 사진 포토샵 용 컴퓨터 등 대략 2천만 원 가까운 금액으로 지원서를 넣었다. 오늘 그것이 실제로 이 기업에 필요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심사를 하러 담당자들이 방문했다. 국가 정책적으로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그걸 맡아서 관리하고 일하는 공무원들의 역량이 그에 부합한 지는 항상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4월 6일 화요일
커피 머신 옆에는 따뜻한 물과 정수물이 나오는 디스펜서가 있다. 따뜻한 물은 구멍이 커서 커피 물 받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데, 정수물은 거기서 그대로 받을 경우 속 터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대부분 물통에 물을 받아놓고 그걸로 아이스를 담을 때 사용한다. 문제는 물을 받기 위해 물통을 놓은 채 다른 일을 하다 보면 물 잠그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고 물이 넘쳐 테이블 상판을 적시고 바닥까지 흥건히 고이게 된다. 물 받는 시간이 너무 더디다 보니 가끔 그런 일이 벌어진다. 이미 민감독은 세네 번 바닥을 적셨고, 나도 두세 번 바닥을 닦은 경험이 있다. 오늘 내가 그 횟수를 하나 더 추가했다.
잠깐 딸기를 다듬고 오려고 했는데 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몰두를 해버렸다. 그러다가 어디서 쫄쫄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되었다. 물을 받기 전에 윗 사무실 어르신들이 회의를 하러 왔고 물이 넘치자 음료를 주문했다. 평소 같으면 주문을 먼저 처리했을 텐데, 물이 흥건한 테이블을 우선 닦아야 할 거 같아서 정신없이 처리를 하고 난 후 음료를 드리니 “바쁘요??” 한다. 늦게 나온 음료에 대한 불만이겠다. 나이 드신 분들이 뭐든 더 급하게 서두른다는 걸 또 깜빡했다.
민감독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담아놓고 그대로 외근을 나가버렸으며 설은 달고나를 만들면서 소다 대신 분당을 넣고는 왜 부풀지 않는 거냐고 의아해했다. 모두들 깜빡깜빡하는 날이다.
딸들이 입다가 내팽개친 옷을 입고 다니는 걸 설에게 들켰다. 오늘 입고 온 흰색 맨투맨 티 소매에 커피가루가 잔뜩 묻어버린 터라 빨아도 지워지지 않을 거 같아서, 퇴근 후 버릴 옷 담아둔 상자에 던져버렸다. 딸이 입던 거 들켜서 버린 건 절대 아니다.
이번 달에 두 번의 가족 촬영이 예정되어있어서 스튜디오 흰색 면 페인트 칠을 하느라 포토박이 출근했다. 오픈하고 처음 덧칠을 하는 셈이다. 일이 얼추 끝나갈 무렵, 황선생이 보와 함께 카페에 왔다.
황선생은 서울에서 인테리어일을 하다가 모든 일을 그만두고 이곳에 내려와 있던 분으로, 어쩌다 한 두 번 아는 사람들 건축이나 인테리어 일을 조금씩 도와주다가 결국 몇 년 동안 집을 몇 채 짓고 있는 중이다. 자기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내려와서 다른 일을 하려고 하다가도 다시 처음 그 일로 돌아가는 건, 포토 박도 마찬가지. 농사를 짓겠다고 내려왔지만, 결국 10년이 못되어서 다시 20대 때 하던 사진 일로 돌아와 있으니. 집을 짓겠다고 생각을 하고 다시 진지하게 황선생과 상담을 했다. 이제부터 생각해야 할 것들. 하나, 예산을 정한다. 우리가 쓸 수 있는 금액을 정해놓고 시작한다. 둘째, 어디에 지을지 결정한다. 집 건너 밭에다 농가주택으로 새로 지을 것인가, 기존 집을 허물고 지을 것인가 하는 선택지가 있다. 4월 동안 고민해봐야 한다.
한국사회적 기업진흥원에서 2020년 창업팀 중 우수팀으로 선정되어 상을 받게 되었다.
4월 7일 수요일
전문 인력 지원사업에 적당한 지원자를 찾지 못했다. 지난주 면접을 봤던 사람은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았다며 직원 되기를 거부했다. 촬영과 편집을 도와줄 전문 인력은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아서, 대안으로 민감독을 도울 직원을 찾아보던 중, 범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귀농을 결심하고 집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이후 우리는 그 집을 구매했는데, 그때 그 집에 있던 사람이 바로 범이었다. 범은 실제 집주인은 아니었고, 집주인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이후 빈 집이 된 그곳을 관리하는 목적으로 잠시 거주했었던 것. 그렇게 인연이 된 그 가족은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학부모 관계로 이어져 오고 있다. IT 쪽 일을 했다는 경력을 전해 들은 민감독이 함께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의사를 전했으며, 시험 삼아 주말에 있을 촬영에 동행하자고 했다.
보궐 선거날이다. 투표권은 없다.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4월 8일 목요일
막내딸 절친 엄마 주가 왔다.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해서 포장을 하다가 케이크 돔 유리 뚜껑을 완전 박살 내 버렸다. 손님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어제의 꿈자리가 이렇게 현실로 나타나다니. 지난번에는 플라스틱 뚜껑도 깨 먹었는데, 요즘 뭔가 실수가 잦다. 남 실수 보고 뭐라고 탓할 처지는 못되겠다.
오전 청년마을로 프로젝트의 인건비 지원사업에 대한 실사가 있었다. ‘국가에서 하는 사업이다 보니’가 입에 붙은 한 담당자는 근무자의 업무 영역 안에 그 청년 근로자가 실제로 익혀서 배워나가서 자립할 수 있는 업무가 필요하다고 했다. 단순 카페 영업을 덧붙이는 것은 ‘서류상’으로 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곳은 문화예술을 지향하지만, 그와 더불어 카페 영업이 중심이 되는 일인데, 그걸 단순 근무자로 취급하는 것은 카페 일이 그저 단순 노동으로 비하하는 발언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미래의 근무자가 카페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일하다 보니 카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텐데, 그럴 경우에는 여기서 경험을 쌓는 것이 청년에게 도움이 될 일이 아닐까. 어쨌든 선정이 될 가능성이 많으며 서류상 약간의 보완만 하면 될 것이다. 정부 지원을 받게 되면 청년 근무자는 민감독과 나 보다도 훨씬 좋은 조건의 금액과 근무를 하게 된다. 청년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만큼 청년이 귀하다. 이런 읍내에서는.
지난번 쿠키 대량 주문이 다시 들어왔다. D-Day는 다음 주 토요일이다. 오늘부터 쿠키 반죽을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설에게 반죽을 하도록 시켰다.
4월 9일 금요일
작년 오픈할 즈음에는 우유 스팀을 못해서 매일 아침 문을 열면 꼭 카페라테를 만들어먹었다. 한 달 정도 하다 보니 하트도 그릴 수 있게 되고, 맛도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한동안 라테는 먹지 않고 영업을 이어왔는데, 설이 오고부터 음료 만드는데 손을 놓기 시작하니까 가끔 만들어야 할 라테가 잘 되지 않았다. 다시 카페라테로 아침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오늘 아침 만들어보았다. 나쁘지 않게 연습이 되었는데 문제는 장 트러블이 생겼다는 것. 이것은 지난달 쿠키 대량 주문이 들어오고 멘붕에 빠져 반죽을 하던 그때, 그 고통스럽던 설사병이랑 똑 닮았다. 이것은 우유 때문인가, 쿠키 주문 때문인가. 이럴 때는 손님이 오는 게 부담스럽다. 언제 화장실을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단골 장은 더더욱 곤란하다. 다행히 포토박이 있어서 이야기 상대를 해주었다. 맘 편히 화장실을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고 있는 임이 하얀색 커다란 개와 함께 산책을 하던 중에 카페에 들렀다. 이번이 세 번째이다. 개가 카페에 들어오는 건 조금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오픈한 지 얼마 안돼서 손님이 아무도 없는 상태이니 서로 간의 암묵적 합의 하에 잠시 같이 들어오는 걸 허용해주었다. 주인은 곧 1살이 된다는 이 큰 개에게 온통 빠져있다. 엄마 품을 떠난 자식들 대신 보살펴 줄 대상자가 나타나 너무나 신난다는 임은 사진을 찍어주며 너무 행복해했다.
젊은 커플이 와서 음료를 마시며 보드게임을 한다. 할리갈리의 차임벨이 울리고 그 사이사이 쏟아지는 웃음보. 그래, 얼굴만 봐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 때가 있지. 만남이 뜸해지는 코로나 시대에 그래도 봄은 오고 젊은이들은 연애를 한다. 카페스러운 시간이다.
4월 10일 토요일
비는 오지 않지만, 주중에 비해 바람이 차다. 느낌상 기온이 내려간 것 같은 토요일이다. 거리는 한산하고 오픈한 지 1시간이 되어 가는데 손님은 하나도 없다. 크로플을 굽고, 프레츨 머랭 쿠키를 만들며 오전을 보냈다.
포토 박은 작년 한 해 카페를 준비하느라 놀려두었던 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추 심을 때 꽂아두었던 말뚝과 옥수수 따 먹고 방치해둔 옥수숫대가 남은 그 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