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깊어지고
7월 19일 월요일
아침 출근길, 타이어 공기압에 문제가 생겼다고 경고등이 떴다. 읍내 타이어 가게에 들러 체크를 했다. 조수석 앞쪽 타이어에 구멍이 나 있었다. 서비스를 받고 카페로 출근. 중학생 둘째 딸은 방학을 했고, 오늘부터 내 차를 타고 아침부터 읍내로 나왔다가 학원에서 공부하고 다시 나랑 같이 들어가는 고된 시간이 시작되었다. 딸은 더 하겠지만, 나도 방학이 반갑진 않다.
7월 20일 화요일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하면서 모임 인원이 4인으로 줄었다. 4차 유행이 될 조짐이 있어서 그런지 카페에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사람이 오나 안 오나 쇼케이스에는 어느 정도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어야 하고, 팔리나 안 팔리나 베이커리는 일을 해야 한다. 어제 만들어 둔 케이크 시트로 티라미수 케이크 2개를 만들었고, 냉동실에 있던 쿠키 반죽을 해동시켜 사브레 쿠키를 포장해두었다.
작년 카페 오픈할 때, 건물주이기도 한 위층 문중 사무실에서 축하금을 주었다. 그 돈으로 1인용 소파 2개와 2인용 소파 1개로 된 4인용 소파 세트를 마련했었다. 몇 주 전 2인용 소파에 앉아보니 앞부분이 푹 꺼져있었다. 재봉 회원들과 가끔 밥 먹으러 가던, 주인이 게으르네 어쩌네 하며 내 일기에 썼던 그 경양식집의 소파랑 똑같이 망가져있었다. 사람들이 등받이 깊숙이 앉지 않고 끝부분에 엉덩이만 살짝 걸쳐두다 보니 거기만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취미로 목공일을 하고 있는 범에게 하루 날 잡아 트럭을 가져와서 싣고 집으로 가서 하루 재택근무를 하며 보수 공사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고, 흔쾌히 지난 주말 가져가서 어제 집에서 고친 후, 오늘 다시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짱짱하니 아주 완벽하게 수선이 되었다.
황선생이 다듬은 설계안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장실과 부엌이 1미터씩 늘어났다. 수납공간이 많이 확보되었고, 화장실 변기와 샤워실을 분리하여 따로 문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고 다시 몇 가지 보완한 후, 입체적인 설계도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7월 21일 수요일
새벽 4시, 눈이 떠졌다. 어제저녁 8시부터 시작한 ‘내 나이 백신 예약’이 생각나 주사 맞을 날짜를 확정했다. 오늘부터 막내딸이 방학에 들어갔고, 첫째 딸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 집에서 30분 거리의 관광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곳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픽업을 해줄 것처럼 말했었지만, 누가 그렇게 귀찮은 일을 하겠는가. 어쨌든, 그건 없던 일이 되었고, 그래서 군내 버스를 타고 출근하기로 했다. 면사무소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8시 45분에 있으며, 아마도 근무지에는 9시 넘어 도착할 것이다. 포토 박은 10분 거리 면사무소로 데려다주고, 끝나면 다시 데리고 오는 픽업 서비스를 해야 한다. ‘이게 내 알바냐’며 불만이 많겠지만, 30분 거리가 아닌걸 감지덕지해야 할 것이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사람들은 집 속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점심을 먹으러 간 국숫집은 앉을자리 없이 사람들이 빼곡히 있었다. 빈익빈 부익부. 우리 카페만 빼고 다들 어디론가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나 보다.
민감독의 고등학교 미술부 선배인 화가 창이 강원도에서 온 거라며 옥수수를 몇 개 주고 갔다. 그냥 놔두면 굴러다니다가 버릴 것이 분명하므로, 받은 즉시 손질하여 소금을 듬뿍 넣고 삶았다. 재작년까지 옥수수를 심고 수확하여 먹던 농부 신분이었다는 게 까마득한 옛 일이 되었다. 그때, 금방 딴 옥수수를 소금 조금 넣고 삶아서 먹었을 때의 그 인위적이지 않은 단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오늘의 옥수수는 강원도에서 딴 후 며칠이 지난 상태라, 단맛이 많이 빠져있어서 조금 심심한 편. 짭짤함이 더 강했지만, 덕분에 카페는 한동안 옥수수 냄새로 그득했다.
7월 22일 목요일
설과 범이 민감독과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두 팀이 차례로 들어왔다. 미가 주문한 팔빙수 셰이크와 바닐라라테를 가져다주고 아. 아 2잔과 달고나 라테 2잔을 시킨 다음 팀의 음료를 준비하는데, 미가 카운터로 왔다.
“스푼 주세요”
“스콘이요? 잠시만요, 데워드릴게요”
“……..”
오븐 온도를 높이고 집게로 스콘을 들어 오븐 안에 집어넣는데, 미가 계속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스콘이 아니고 스푼이요”
“ 아~~ 네”
“스푼이었는데, 그걸 데운다고 해서 ㅎㅎ”
오븐과 카운터 사이를 괜히 땀나게 왔다 갔다 했다. 오븐은 꺼지고 스콘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문중 사무실 어른들이 왔다. 그동안 아이스크림과 쌍화차와 맥주를 즐겨 먹었는데, 팥빙수 셰이크가 출시된 이후 어르신들 최애 음료로 등극했다.
7월 23일 금요일
여름휴가를 계획했다가 어그러진 사람들이 많다. 그 와중에도 갈 사람들은 다니고 있긴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면 즐겨야 할 시간. 카페에서 슬기로운 여름을 보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몇몇 있다.
오후 3시 스튜디오 공간에 이젤이 들어섰다. 중학생 아이들 셋과, 그들을 가르치겠다고 어른들 수채화 수업 선생이 등장했다. 오후 스튜디오 공간은 그렇게 시끌벅적한 중등 수채화 모임이 생겼다.
한시도 쉬지 않고 저녁마다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왔던 약사 원이 유치원 선생 아와 함께 다음 달에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원어민 선생을 데리고 카페에 와서 프리토킹을 하고 있다.
방학을 맞은 초등 선생 단은 뜨거운 여름 햇볕을 모자로 막으며 카페까지 10여분 걸어와서 음료 두 잔을 시간차로 주문하며 혼자만의 휴식 시간을 평일에도 맘껏 즐기고 있다.
7월 24일 토요일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여름 한 복판에 들어섰다. 이곳에 정착한 지 9년째 되어 가고 에어컨 없이 산 지도 9년째 되어간다. 매번 여름마다 ‘내년에는 사야지’ 하고 다짐을 하는데, 정작 진짜 더운 시기는 길어봐야 2주. 그때만 넘기면 또 살만해서 에어컨 생각이 사그라든다. 다시 끔찍한 더위가 몰아치는 그 2주가 올 때까지.
카페로 출근하는 나는 더울 일이 없고, 출근하는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부가 된 포토 박은 뜨거운 불 앞에서 매 끼니 땀과 전쟁을 벌인다. 주부 우울증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
어제 한 건물 안에서 테이크아웃 종이 캐리어 뭉치를 발견했다. 그 건물에 있는 학원에서 사용한 것들이었다. 한동안 우리 카페에 미리 결제를 해놓고 커피를 주문해서 마셨던 곳이었는데, 이제 다른 카페로 단골을 옮긴 모양이다. 여러 군데 다양하게 맛보는 것은 손님의 특권이니 뭐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캐리어가 아까웠다. 조금 창피했지만, 두 손 가득 끌어안고 차에 담아두었다가 오늘 카페에서 정리를 했다. 로고가 붙어있지 않은 무지 캐리어로, 우리가 쓰는 거와 똑같았다. 정말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시켜먹었구나 싶다가도, 그걸 우리가 팔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원가 몇 원하는 거지만 재활용하게 되어 기쁘기도 했다.
음료를 만들 때 용량을 다 기억하지 못해서 한쪽 벽에 메모를 붙여놓고 있다. 새로운 메뉴가 추가되고 뭔가 내용이 바뀔 때마다 덧붙여지고 덧붙여지더니, 종이가 지저분해졌다. A4 한 장에 다시 정리를 하여 깔끔하게 붙였다. 정신이 다 맑아지는 기분이다.